기사보기

Magazine

[531호 2022년 6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AI 탑재한 아바타, 가상공간에서 최강국되는 지름길”

이수만 (농공학71-78)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AI 탑재한 아바타, 가상공간에서 최강국되는 지름길”
 
이수만 (농공학71-78)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유학 가서 컴퓨터 엔지니어링 공부
80년대 말에 디지털 녹음기 사용
 
한류 개척자·창시자보다 
퍼스트무버로 기억되고 싶다
 
음악과 춤이 만난 킬러 콘텐츠
글로벌 문화 생태계 장악할 무기
아이디어맨들과 네트워킹이 가장 중요


2000년대 중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K-POP’ 열풍은 이제 글로벌 팝 음악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보아, HOT,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에스파 등 수많은 아이돌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가 K-POP을 중심으로 한 한류의 진원지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는 자사 콘텐츠를 활용한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 등 한류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10일 서울 성수동 SM엔터테인먼트 본사에서 만난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앞으로 미래는 가상현실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협업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즐기는 세상이 될 것”이라며 “우리 회사의 콘텐츠를 팬들에게 오픈해 좀 더 흥미로운 메타버스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6월 18일이 생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생일을 거하게 챙기거나 하지는 않아요. 올해도 가족끼리 식사 정도 하겠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사시는 편이시죠?
“일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이를 갖고 한계 짓는 경향이 큰 편인데 저는 나이를 밝히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코로나로 인한 규제가 좀 풀리자마자 해외를 다녀오셨죠?
“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왔죠. 2년 전 사우디의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도시 건설 사업인 ‘키디야 프로젝트’의 어드바이저로 추대가 됐거든요. 아시아에서는 제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 사업은 사우디가 석유 외의 다른 수익 모델을 찾는 구상의 일환이죠? 
“그렇죠. 제가 구축한 CT(Culture Technology) 시스템을 활용해 사우디 팝음악을 프로듀싱하고 사우디의 유능한 인재들을 글로벌 스타로 만드는 일을 돕게 될 것 같아요. 음악 행사와 페스티벌은 물론 현지 제작사와 협업을 통해 영상 콘텐츠 제작 등 문화 산업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기대가 큽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국내외에서 ‘한류의 개척자’ ‘한류의 창시자’로 통하는데요. 이런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드세요.
“여러 사람이 ‘나를 정말 그렇게 보는구나’ 실감하게 되죠. 인정을 받는 만큼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개인적으론 한류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퍼스트 무버’로 한류를 개척하시면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늘 힘들죠. 문화라는 게 싹을 틔우는 것도, 유지, 발전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로운 문화가 태어날 때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에 머물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까요. 시끄러운 음악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지만, 락이나 헤비메탈이 나오자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무르익게 되는 거죠. 모두가 향유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우리나라 음악이 외국으로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부터였어요. 그러다 1990년대 중반 기획사를 차리고 2000년에 중국에 진출했는데요. 당시 우리 가수들 모습이나 한국 국기가 그려진 배지를 중국 젊은이들이 착용하고 다니면서 한류가 사회적 문제로 조명이 됐죠. 기존의 생각을 깨고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지난한 고통의 연속입니다.” 

-변화를 선도한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군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과거의 관습을 고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누군가 ‘어떤 걸 도와줄까’라고 물으면 ‘그냥 우리를 자유롭게 내버려두기만 하면 잘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다녔어요.” 

-갖가지 규제나 한계를 이겨내고 한류로 세계 시장을 개척한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레이프 가렛(Leif Garrett)이라는 가수가 내한했어요. 제 콘서트 티켓보다 표 값이 비싸고, 공연장에 가보니까 분위기가 굉장히 열광적이에요. 화가 나더라고요. 우리나라 가수들은 왜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할까. 왜 우리 가수는 외국으로 나가지 못할까. 왜 우리 곡은 외국에 안 알려질까. 그런 생각을 오랫동안 해 왔습니다. 그래서 1997년 해외로 나가겠다고 마음먹고 결국 2000년 중국을 가게 된 거지요.” 


대담 : 신예리 (영문87-91) JTBC 교양팩추얼본부장


-더 큰 시장에서 우리 음악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가장 큰 시장에서 가장 큰 스타가 나옵니다. 비틀즈도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대스타가 됐죠. 미국은 정계와 백악관, 헐리웃이 손을 잡고 대중문화를 성장시켰어요. 영국의 팝음악을 흡수해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오고 이후 세계적인 스타들이 미국에서 탄생합니다. 이처럼 음악이 성공하자 영화를 정책적으로 밀었죠. 서부 활극을 전 세계에 전파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릅니다. 제작과 배급을 잘 발전시켜 대중문화의 헤게모니를 갖게 된 거죠.”

-요즘은 글로벌 대중문화의 한 축을 한국이 담당하고 있잖아요.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엔 그 비중이 더 커질 걸로 기대되는데요. SM의 걸그룹 에스파가 아바타랑 같이 활동하는 걸 보면서 기술 발전에 발맞춰 K-POP 그리고 한류는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궁금해집니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잖아요? 이런 흐름을 도외시하고 문화가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본래 엔지니어예요. 모교에서 농업기계를 공부했고, 유학 가서는 컴퓨터 엔지니어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죠. 석사 논문 주제가 ‘Robotic system with Computer-vision’이거든요. 1985년에 PC를 이용한 ‘로봇 눈’ 실험에 대해 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최첨단 분야를 연구하셨는데 그 길을 접고 음악에 투신한 게 후회되진 않으세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런데 여전히 공학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전에 구글에 강연하러 초청받아 간 적이 있는데 누굴 만나고 싶냐고 묻길래 박사님들을 뵙자고 했어요. 그쪽에서 의아해하길래 제 전공 배경을 말씀드렸더니 이해하더군요. 그분들과 로봇 기술의 발전 정도에 대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최근의 디지털 기술 발전에도 굉장히 민감합니다.”

-트렌드를 발 빠르게 수용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네요. 
“1980년대 후반에 제가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녹음기를 처음 썼어요. 아카이라는 일본 회사의 제품이었는데요. 이 기기를 사용해 처음 만든 곡이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입니다. 디지털 녹음기로 시작해 디지털 콘솔, 컴퓨터 음악 프로그램도 제가 거의 최초로 활용했어요. 신해철 후배가 노하우를 알려달라 해서 전수해주고, 이 친구가 그런 첨단 기기를 활용해 다양한 음악을 발표했습니다. 신디사이저를 사용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10분의 1 가격으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디지털 기기를 우리나라 음악 산업에 처음 도입하신 분이라고도 소개해야 할 것 같네요.
“엄밀하게 처음이었는지 확인하긴 어렵지만, 당시 이런 첨단 기기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드물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얼마 전 ‘Play to Create’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와 MOU를 맺으셨잖아요. K-POP 팬들이 거기서 즐기면서 2차 창작을 하고 그걸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비전을 제시한 걸로 들었습니다.
“저희가 만든 창작물은 킬러 콘텐츠라고 불러요. 다른 누구도 그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를 가질 수 없죠. 에스파도 그렇고요. 그런데 팬들이 노래도 따라하고 춤도 따라하는 챌린지라는 걸 요즘 많이 하잖아요? 이게 2차 생산물이죠. 이같은 리크리에이티드(recreated) 콘텐츠가 만들어지게 할 수 있는 건 킬러 콘텐츠인 IP를 갖고 있는 회사라는 게 자명하지 않습니까. 그런 창작이 하나의 놀이로 자리잡도록, 더 나아가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을 할 수 있게 생태계를 구축하는 거죠. 이게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정착하기까지 5년밖에 안 걸릴 거라 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창작에 대한 욕구가 있으니까요. 

음악과 춤을 크리에이트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성공한다, 우리나라는 워낙 이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으니까 세상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킬러 콘텐츠를 많이 만들면서 도와줘야 될 것입니다. 우리 회사 가수들 초상권도 쓰게 해 줘야 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거기서 더 발전된 형태의 생산물이 나올 거라고 보고 그쪽으로 매진할 생각입니다.”

-거기에 블록체인이나 NFT(Non-Fungible Token) 등 신기술을 접목해 그걸로 또 다른 상품이 될 수 있게 하신다는 구상이시죠? 
“에코시스템, 생태계라고 말할 수 있죠. 크리에이터들을 보호해야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NFT가 그런 역할을 해줍니다. 그래야 우리도 양질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고요.  우리 고유의 콘텐츠를 보호하면서도 또 발전시켜야 되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어서 새롭고 재미있고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의 나라가 돼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아바타도 더 빨리 확산돼야 합니다. 아바타에 인공지능이 탑재되면 국민 수가 그만큼 늘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민 수를 늘리는 방법이 별로 없는데 아바타를 우리나라가 빨리 받아들이고 발전시킨다면 좋지 않겠어요?”

-관련해서 서울대 학생들한테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어떤 건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네트워킹이 가장 중요한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전 세계의 석학들 또는 전 세계의 아이디어맨들이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일하는 네트워킹이 필수적인 시대인 거죠.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 버추얼 커뮤니티를 만들어 협업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뮤직 네이션 SM타운이라는 가상 국가 선포식을 이미 2012년에 오프라인에서 개최했고, 올해 1월 1일에는 온라인에서 전 세계 팬들과 함께 SM타운 공연을 가졌죠. 앞으로 디지털 여권을 출시할 건데 NFT의 기능이 있어서 시민권처럼 물려주고 물려받을 수 있죠. 이 메타버스 패스포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공간이 협업의 장소가 될 겁니다. 이처럼 전 세계에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네 명이든 모여서 창조적인 일을 하고, 가상 국가까지 만들게 된다면 좋은 미래가 아닐까요. 

제가 1997년에 했던 말이 있죠. ‘혼자 꿈을 꾸면 하나의 꿈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면 그것은 바로 굉장한 미래의 시작’이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정리=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