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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호 2022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수혜국에서 공여국 된 조국, 제 인생의 길잡이 됐죠

최병헌(국제대학원12-15) 유엔 WFP M&E 담당관



수혜국에서 공여국 된 조국, 제 인생의 길잡이 됐죠
 
최병헌(국제대학원12-15) 유엔 WFP M&E 담당관
 
수단에서 분쟁지역 주민 지원
지원사업 평가 및 모니터링도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이하 WFP)은 202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전 세계 기아 퇴치를 목적으로 1960년 출범하여 2020년 기준으로 84개국, 1억1550만명에게 식량과 현금, 교육, 직업 훈련까지 지원하고 있다.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WFP에 근무 중인 서울대인도 있다. 2018년 6월부터 WFP 수단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최병헌 동문이 그 주인공. 모니터링 및 평가 담당관으로서 WFP의 지원 활동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휴가를 받아 국내에 머물고 있는 그를 2월 16일 본회 회의실에서 만났다.

“모니터링 및 평가 담당관은 투입된 예산과 인력에 대비해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조사, 분석하고 사업 관계자들과 결과를 공유합니다. 수혜자의 규모 같은 객관적인 수치뿐 아니라 지원 사업이 수혜자에게 끼친 주관적인 영향까지 설문 조사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자료를 수집하죠. 공여국 관계자들에게 보낼 사업 결과 보고서의 근거 자료가 되기도 하고요. 일일이 제 손을 거쳐 완성된 자료들이 어디선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쓰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수단은 ‘WFP의 사관학교’로 꼽힌다. 식량, 현금, 영양 지원 등 WFP가 추진하는 모든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자 분쟁으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분쟁은 ‘다르푸르 사태’. 수단 북부 지역 다르푸르에서 심각한 가뭄이 계속되자 아랍계 유목민이 남하해 남부 농경 지역 기독교계 흑인과 충돌한 것이 발단이 됐다. 사막화로 인한 경작지 부족, 그로 인한 유목민과 토착민의 갈등, 인종과 종교 갈등, 종족 간의 갈등을 악용한 수단 중앙정부의 탄압,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2003년 2월부터 2010년까지 사망자 40만명, 실향민 200만명을 발생시켰다.

“에티오피아와의 국경 근처엔 티그레이 지역 내전을 피해 탈출한 난민들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티그레이 분쟁’은 2020년 11월 에티오피아 정부군이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TPLF)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이면서 시작됐죠. TPLF는 수도 메켈레에서 축출된 뒤 무장투쟁을 벌였고, 이 분쟁으로 약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분쟁이 발생하고 3개월 동안 1200건이 넘는 성 기반 폭력이 벌어졌고, 4개월만에 1900명이 학살당했어요. WFP의 지원 사업은 단순히 주린 배를 채워주는 일이 아니에요. 비극을 겪는 이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는 일이죠.”

수단 구호 현장에서 최병헌 동문과 동료들.

WFP는 제로 헝거(Zero Hunger)를 목표로 단순히 식량을 배분하는 것을 넘어 식량 안보를 개선하며, 사회 기본 시설과 생계 복구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원 사업의 66%는 분쟁 지역과 그 인접 지역에서 이뤄지며 그밖에 가뭄, 홍수, 지진,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 현장의 이재민에게도 식량을 제공한다. 트럭 5600대, 선박 20척, 100대에 육박하는 항공기를 동원해 식량을 포함한 구호 물품을 전달한다.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9살 때 케냐로 이민 갔었습니다. 미국 워싱턴주립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자랐죠. 고등학생 때 모의 유엔 활동을 경험하고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먼 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 오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죠. 어떻게 하면 이런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격상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2018년부터 WFP를 통해 연 5만톤의 쌀을 지원할 뿐 아니라 저류시설, 관개시설을 지어주고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일도 하고 있죠. 조국이 본을 보여준 것처럼, 저도 세계의 기아를 퇴치하는 데에 일조하고자 현직에 종사하게 됐습니다.”

최 동문은 모교 국제대학원에서 수학하는 동안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에 대해 많이 배우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국제협력 전공으로, 국제 정부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개별 국가와 다자 기구로 하여금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게 할지 고민했다고. 1년에 한두 번, 2주에서 3주씩 국내에서 보내는 휴가를 제외하면 WFP 수단 사무소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최병헌 동문. 고단할 법도 한데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함께 배려하며 일하는 지금이 즐겁다고 말한다.

“국적이 다양한 만큼 생각도 다양합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 아래 뭉쳐 성과를 낸다는 게 무척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좋은 일하려고 모인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사려 깊고 친절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도시가 봉쇄됐을 땐 ‘잘 지내냐, 뭐 필요한 건 없냐’ 물어봐 주기도 하고요.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는 뉴욕, 제네바, 로마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위험하고 사회기반 시설이 취약한 곳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해요. 국제기구에 진출하는 서울대인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