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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 2020년 8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작년 민원만 800만건…운동화 신고 뛰며 해결해야죠”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작년 민원만 800만건…운동화 신고 뛰며 해결해야죠”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1. 고2 때까지 반에서 중간 등수를 왔다 갔다 하던 학생이 6개월 만에 전교 1등을 했다. 친구들이 경악한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선생님들도 깜짝 놀랐다. 그해 부산 여자 자연계 수석으로 모교에 입학했다.

#2. 치과의사를 하던 아이 엄마가 어느 날 사법고시에 도전한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법학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서른 두 살 아이 엄마가 사법고시를 치른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자로 가득한 법전 한 페이지를 읽는 데 하루가 걸렸다. 그러나 도전 2년 6개월 만에 1, 2차 동차 합격을 했다.

전현희(치의학84-90) 동문의 이야기다. 치과의사-변호사-국회의원으로 도전을 계속해온 그가 지난 6월 29일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지난 8월 5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만난 전 동문은 남색 정장에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동창신문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운동화 패션이 눈에 띕니다. 예전부터 신으셨나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와서 신기 시작했어요. 발이 편해야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어서요. 열심히 걷고 뛰어다니려고요.”



-여름 휴가 계획이 있으세요?

“8월 중순쯤에 잡았어요. 이사를 해야 해서 어디 가진 못하고 짐 정리를 하려고요.”

-지난 총선에서 근소한 표차로 낙선을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힘들었죠. 4년 동안 주민들 섬기면서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니까. 굉장히 마음이 아팠죠.”

-총선 후 바로 권익위원장에 임명이 되셨어요. 항간에는 권익위 업무와 공통분모가 없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임명권자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판단했다고 생각해요. 와서 보니 제가 그동안 해왔던 일, 신념과 잘 부합되는 곳이어서, 적합한 부처에 임명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권익위가 준사법기관의 역할을 하지요. 제가 법조인 출신이고, 변호사 시절 해왔던 공익 소송,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고충 해결 업무를 정부 기관에서 하는 거 잖아요. 또 국회의원 시절 첨예한 사회적 대립의 조정, 해결 활동을 열심히 해 왔는데, 그 업무가 권익위 주요 일이기도 하고요. 권익위 업무 중에 제도개선도 있습니다. 제도개선은 정무적 감각과 정치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제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부처라 생각합니다.”

-취임하신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권익위와 인권위를 혼동하는 등 국민들에게 잘 와닿지 않는 부처란 느낌이 있습니다.
“국민권익위라는 명칭이 조금 추상적으로 들리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권익위 업무만큼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부처가 드물어요. 민원 해결이 주요 업무니까요. 사회적 갈등의 조정, 불합리한 제도 개선, 우리 사회 청렴지수 높이는 반부패 활동 등 모든 활동이 국민에게 직접 도움 되는 일이지요.”

-신문고 등을 통해 권익위가 모든 정부 부처의 민원을 받지요? 해당 부처로 넘기는 경우가 많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권익위가 판단해서 문제가 있는 민원이면, 조정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옳은 지적입니다. 지난해 800만 건의 민원이 들어왔어요. 국민들은 권익위에 민원을 내면 권익위가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하지요. 당연하고, 그래야 합니다. 각 부처 협조를 받아서 권익위가 책임지고 800만 건에 대해 어떡하든 답변을 줘야 한다, 그런 점을 강조하고 있고 그렇게 시스템을 바꾸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권익위의 신문고보다 청와대의 국민청원을 더 많이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는 국민들이 대통령께 직접 호소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권익위에도 그런 기능이 있는데, 좀 더 관심 가질 수 있도록 보완하고 있습니다.”

-비리, 부정부패를 제보하는 분들에게는 포상금이 있습니까?
“부패신고로 인해 공공기관의 수입이 늘어나는 경우 최대 30억원까지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어요. 수입 증대가 없어도 제도개선과 같이 공익 증진에 기여한 경우에는 최대 2억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고요. 최근 10년간 170여 억원의 부패신고 보상금과 포상금을 지급했습니다.”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4년여가 흘렀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난해 인식도 조사 결과를 보니 일반 국민의 87.7%, 언론인 79.2%, 공무원 96.6%가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응답했더군요. 지난해 하반기까지 부정청탁 5,863건, 금품 등 수수 2,805건, 외부강의 등 초과사례금 270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이 중 621명이 형사처벌이나 과태료를 받았고, 770명이 수사 또는 재판 중에 있었습니다. 법 시행 초기에는 금품 등 수수와 관련된 신고가 많았으나, 18년 공공기관 채용비리 실태조사를 계기로 부정청탁 관련 신고가 증가했습니다.”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가 3년 연속 상승하며 역대 최고점수(2019년 180개국 중 39위, 59점)를 기록하고 있지만, OECD 국가로 한정하면 하위에 있습니다. 취임사에서 ‘뼈를 깎는 반부패 개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공공과 민간 두 분야로 나눠 말씀드리지요. 먼저 공공 부분의 경우 공직자들의 행위 기준을 변화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강화해 나갈 생각입니다. 공직자가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고, 민간인에 대한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등 공직자의 행위기준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또 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 공직 공무원과 같이 취약직군에서 행동강령 준수, 겸직금지 등 부패 불공정 예방 제도가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운영실태와 위반행위를 점검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저해하는 민간 분야 부패 관행에 대한 적극적 대응도 필요합니다. 권익위와 정부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를 통해 법조계, 고위공직자 등 전관 특혜 근절, 학사·채용 비리, 탈세 및 국가재정 누수 방지대책 등 민관 접점의 부패·불공정 행위 대응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CPI 20위권에 진입해야지요.”

전현희 동문은 경상남도 통영 중앙동 세병관 아랫마을에서 태어나 중2 때까지 통영에서 살았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을까. 개인사로 화제를 돌렸다.

-통영이 요즘 관광지로 인기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 자란 곳이라 그런지, 사실 그렇게 좋은 곳인가 했어요. 바닷가를 늘 보고 자랐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부분부분 동네만 볼 수 있었지, 전체를 보지는 못했으니까요. 어른 돼서 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데, 그때야 왜 통영, 통영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윤이상, 김상옥, 박경리, 전혁림 등 세계적인 문화, 예술가들이 많이 나온 이유가 있어요.”

-고2 때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요.
“책 읽기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문학 전집을 사주시면 앉은 자리에서 며칠 동안 다 읽곤 했지요. 공부는 보통이었고요. 고3 때 학교에서 잘나가는 우등생 친구가 부럽더라고요. 그 친구 따라 새벽에 등교해서 밤늦게 집에 들어오곤 했어요. 오답을 꼼꼼히 체크하고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서 푸는 방식으로 공부하다 보니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뒤늦게 공부에 빠졌지요.”


“권익위 일 나에게 꼭 맞는 옷”
세계 20위권 청렴한 나라 목표

“편하게 살려 태어난 인생 아냐”
고등학교 때 6개월만에 전교 1등
의사·변호사·국회의원·공무원 변신


-치의학 전공은 부모님 바람이었나요?
“그렇죠. 어렸을 때부터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부모님 바람대로 치과의사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던 어느 날, 어린 시절 꿈이 생각나더라고요. 어렸을 때 위인전을 많이 읽으면서 막연하게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거든요. 외국 위인 가운데 변호사로 활동하다 큰 일을 한 분들이 많아, 변호사에 호감이 있었죠. 그런 꿈을 도전도 안 해 보고 삶을 마감하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마침 남편이 고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고시가 뭔지는 알았죠.”

-이과생이 법전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말 고생했습니다. 신문에 나오는 한자를 겨우 읽는 수준이었는데, 법전에 한자가 많잖아요. 한 페이지 읽는데, 반나절 걸리기도 했어요.”

-공부한 지 2년 반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셨어요. 몇 년 후 정치인으로 또 변신하셨죠.
“제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뭔가 의미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저를 위해 편하게 살다 가기 위해 태어난 인생은 아닐 겁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죽을 때 세상을 위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했는가, 그런 생각하면서 마감해야 한다고 다짐했죠. 변호사 일을 하면서 정의를 구현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인이 됐죠.”

-국회의원 시절 보람된 일을 꼽는다면.
“민주당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아,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낸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택시기사 세 분이 분신을 하며 정부의 카풀제도에 극렬하게 반발하던 때죠. 택시기사로 상징되는 구산업과 카풀의 신산업도 살려야 하는 입장에서 타협을 이뤄내기 위해 200번도 넘게 택시 기사님들을 찾았습니다. 결과는 미흡한 면이 있지만 당시 극단적 혼란을 해소시켰지요. 18대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제기해 관련 법안을 입법했던 일도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준 민자도로 개혁 법안이 기억에 남습니다. 민자도로 통행료가 비싸잖아요? 그게 초기 민자도로 추진할 때 투자자 측에 유리하도록 만든 부분이 있습니다. 기존 민자도로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이 안 되지만 이후 만들어지는 민자도로는 합리적인 요금이 적용되도록 했습니다. 설, 추석 명절 통행료 면제도 그 법에 따라 이뤄지는 겁니다. 고속도로를 무료 통과할 때마다 저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지요(웃음).”

-대학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얌전한 학생이었어요. 제가 변호사가 됐다고 하니까 동기들이 깜짝 놀래요. 울음 많고 여리디 여린 전현희가 변호사? 천생 여학생 그런 분위기였거든요.”

-학생 운동엔 참여했나요?
“예과 시절 관악캠퍼스에서 데모에 열심히 참여했죠. 겁이 많아 구호를 외치며 선봉에 서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잘 따라다녔죠.”

-여가엔 주로 뭘 하세요? 여전히 책 읽기를 좋아하세요?
“저를 위해 쓰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데, 거의 일만 해요. 공무원이 되면서 출퇴근 시간이 명확해져 국회의원 때보다 일찍 퇴근하는 편인데, 오면 녹초가 돼 쓰러지기 일쑤입니다. 눈이 침침해져 책도 많이 못 읽고요. 서류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웃음).”

-위원장님께 남은 소명은 무엇인지.
“3년 임기 동안 ‘정말 나라다운 나라, 국민에게 힘이 되는 나라’라는 것을 국민들께서 권익위를 통해 체감하실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제 역량을 다 쏟아부을 생각입니다. 그 다음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어떤 자리를 가야지 목표를 정해 놓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사시를 할 때도, 강남 국회의원에 도전할 때도 결과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도전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도전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그 두 가지만 생각하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3년 뒤 가치 있는 일에 쓰임새가 있다면 열심히 또 일해야지요.”

-서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신다면.
“꿈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꿈을 가지면 반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꿈을 꾸는 것은 공짜입니다. 그 다음 두려워 말고 도전을 하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이 의미 있습니다. 정말 죽을 힘 다해 최선을 다하면 꿈이 현실이 돼 어느 순간 자신 앞에 찾아오는 경험을 하게 되고요. 또 하나는 소명 의식이 있었으면 합니다. 서울대인이 됐다는 것은 부모님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든, 본인의 노력이든 결국 혜택을 받았다는 거지요. 그 사실을 깨닫고 대한민국,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받은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는 봉사의식을 품고 사회에 나가면 좋겠어요.”
김남주 기자



전 위원장은

부산 데레사여고와 모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치과의사로 활동하다,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 대한민국 제1호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가 됐다. 의료전문 변호사로서 과도한 방사선 조사로 피해 입은 환자들을 보호하고, 억울하게 에이즈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을 대변했다.

18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들어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원내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대 국회에선 당내 정책위 택시-카풀TF 위원장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냈다.

‘동료의원들이 뽑은 국정감사 우수의원’, ‘보건의료계가 주목해야 할 인물’, ‘백봉신사상 신사의원 베스트 10’에 선정됐다. 2년 연속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최우수 국회의원’, 3년 연속 ‘대학생이 뽑은 거짓말 안하는 의원 베스트 5’, 4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 4년 연속 ‘국회사무처 선정 입법우수의원’, 4년 연속 ‘최우수 국회의원연구단체 대표’에 뽑혔다. 대한민국 헌정우수상, 대한민국 소비자 대상 입법부문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 교통사고로 사별한 남편 김헌범(공법84-89) 전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장, 남동생 전상근(공법84-88) 변호사, 올케 전순덕(제약84-88) 변호사 등이 서울대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