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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2020년 7월] 기고 에세이

녹두거리에서: 김종영, 아름다운 모순-그 촉각의 詩에 대해서

조각가 박상희


김종영, 아름다운 모순-그 촉각의 詩에 대해서



박상희
조소82-86
조각가


새벽이다. 9월의 오후이지만 새벽 같다. 창으로 노란 햇볕이 들어차는 일몰의 시간임에도 아침처럼 청량감이 느껴진다. 가슴 깊은 곳이 흔들린다. 진동이다. 여진이 인다.

김종영의 작품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작품이 빛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작품의 발언과 표정이 강하면 빛의 영향을 덜 받는다. 마치 숲속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크면 새소리, 나뭇잎들이 사각거리는 숲의 이야기가 묻히듯.

그의 형태는 단순하다. 특별한 장식과 화려한 색이 없다. 고요해진다. 작은 음성이 들린다. 호흡도 잊고 나를 잊는다. 그의 작품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무심하게 있을 뿐인걸.

산중 묵언수행하는 수도승처럼 담백하고 수식 없는 그의 작품은 자신을 봐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말을 한다. 무언의 소리가 들리는 듯 나는 또 호흡을 멈추고 형상에 집중한다. 침묵 속에서도 분명 소리가 있음을 느낀다.

아름다운 모순.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다.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도 아니다.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손을 놓고 끌과 정(鋌)을 놔 버릴 때야 울리는, 너무 작아 침묵인 듯한 소리. 묵여뢰, “유마의 침묵은 우레와 같다(維摩一默如雷)”라는 것처럼 그 형상에 담긴 응축된 소리는 천둥보다 크기에 오히려 침묵하듯 보인다.

차가운 대리석이면서도 따듯한 체온을 갖고 있는 듯 부드러운 매스. 누구를 가르치려거나 어느 곳을 가리키려는 것도 아닌, 결국은 가야 하고 도착해야 할 무념무상의 덩어리, 점 하나. 극한의 형태와 빛만 있는 지점. 결국은 선생이 가고자 하는 곳, 그곳이 아니었을까?


김종영 '여인입상'(1965), 박상희 동문 촬영


김종영 작품들. 박상희 동문 촬영


국민학교 졸업 후, 십여 년 방황하며 아웃사이더에서 체제에 편입하고자 했던 외롭고 힘들었던 나의 20대. 1979년, 나는 삼청공원 귀퉁이에서 천막으로 덮인 상태에 일부가 삐져나온 검은 팔과 얼굴의 형상을 보았다. 뭔가 외치는 듯한 얼굴에 갈구하듯 뻗은 팔과 손엔 빗물의 얼룩과 낙엽이 붙어 있었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모습이 더욱 처량하고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김종영 선생의 작품으로, 1963년 국민성금 등으로 파고다공원에 설치했던 삼일운동기념탑의 일부였다. 작가와 미술협회 등 누구에게도 통보나 협의 없이 철거 후 방치된 것이다.

당시 나는 정독도서관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고군분투 중이었다. 엉덩이가 짓무를 정도로 앉아 있다 견딜 수 없을 땐 근처의 삼청공원을 산책하곤 했었는데, 그때 우연히 군사독재와 관료주의가 저지른 문화적 참상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3년 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학과장실에서 김종영 선생의 철로 용접된 작품을 보았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서울대 미대 학장이었던 김종영이라는 조각가가 있었다는 사실과 삼청공원에서 봤던 것이 그의 작품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김종영 선생에게서 직접 사사하진 못 했으나 선생의 제자인 나의 대학 스승들-최만린, 엄태정, 전 준 선생, 특히 최종태 선생과 최의순 선생을 통해서 그들에게 입력된 김종영 선생의 정신과 조형의 DNA는 후학들에게 면면히 전수돼 옴을 알았다.

그런 김종영의 작품은 내게 하나의 텍스트이면서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였다. 그의 작품을 보게 될 때마다 새로운 표정과 의미가 읽히는 것은 내가 변하듯 그의 작품도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인 것인가? 김종영의 작품은 지나가 버린 시대의 화석이 아니라 지금도 호흡하고 살아있는 조형으로서, 무게가 있는 촉각적인 시로서 현존하기 때문이다. 깎고 쪼고 더 붙이거나 더 이상 덜어낼 곳이 없는 지점. 애초에 그렇게 있었을 것 같은 여여(如如)한 형태는 그래서 불각(不刻)인 것인가?

그의 작품 기저에는 한국의 어머니와 서양의 아버지 피가 혼재한다.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근육으로 이루어진 조형이다. 그러나 거기엔 일본의 식민지를 거쳐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겪은 민족의 한(恨)과 동시대의 아픔이 보이질 않는다. 왜 그럴까? 그 고통과 상실에 대한 상처까지도 아우르고 넘어선 초극의 지점? 조형 본질에 대한 초월 의지인 것인가?

나는 김종영의 영원과 빛과 초월성, 그 불각에 대해서… 묻고 묻고 또 자문할 것이다.

-2020년 5월 29일, 삼청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