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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2019년 1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노벨상 받는 연구 나오도록 믿고 지원하겠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노벨상 받는 연구 나오도록 믿고 지원하겠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재단 첫 여성 이사장, 모교 초대 다양성위원장 지내
예산 5조7000억원…우리나라 R&D 예산 4분의 1 집행
“3년 임기 꼭 채워 안정적으로 재단 운영할 것”

한국연구재단 출범 1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30일 노정혜(미생물75-79) 이사장을 만났다.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2009년 6월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통합해 출범했다. 지난 10년 동안 재단의 연구지원 규모는 2조6,000억원에서 5조7,000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정부R&D 예산의 4분의 1을 집행하는 셈이다. 현재 각 대학에서 수행하는 연구의 70%가 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연구재단의 첫 여성 이사장으로 부임한 노정혜 동문은 모교 다양성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는 등 여성 인권 신장에도 앞장서 왔다. 관악언론인회 여기자회 회장을 지낸 신예리(영문87-91) JTBC 보도제작국장이 찾아가 재단의 과제와 여성 리더의 삶에 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대담 :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2009년 3개 재단 통합 출발

-학교는 휴직 상태시죠?
“네, 이사장 임기가 3년인데 현재 1년 6개월 정도 됐네요.”

-학교에 계실 때보다 얼굴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공부를 안 해서 그런가. 공부는 늘 어려워요.(웃음)”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하다가 반대로 지원하는 자리에 와 보니 어떠세요.
“학교에 있을 때는 ‘연구비 관리가 너무 깐깐하다’, ‘과제를 평가하는 위원들의 전문성이 높지 않다’ 등 불평을 했지요. 그런데 와서 보니 재단이 연구비 관리를 더 깐깐히 해야 한다는 주문을 국회로부터 받는 것을 알았습니다. 연구자들을 보호하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게 연구비 관리규정을 간소화하려고 해요. 또한 평가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개선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컨대 상피제도라는 게 있는데 같은 학교 출신은 평가위원으로 임명하지 못하게 돼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상피제 때문에 전문성 부족한 위원이 평가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연구 업적이 훌륭하거나 연구 제안서를 가장 잘 이해할 분이라면 상피제를 조금 완화해야 될 것 같습니다.”

-연구비 지원은 어떤 체계로 이뤄지는지.
“재단 지원금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기초 연구, 국책 연구, 대학 재정 지원인데요. 각각 3분의 1씩 지원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초 과학(공학 포함) 연구에 2조원에 못 미치는 지원금이 투입되는 건데,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규모가 어떤가요.
“다른 나라에 비해 많다고 할 수는 없어요. 국책이나 실용 위주로 가는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는 기초 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이 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번 정부에서 국정 과제로 정해 그 비율을 올리고 있긴 합니다. 2025년까지 2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입니다. 2017년 1조2,000억원에서 5년간 매년 2,000억~3,000억원씩 늘려 2조5,000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입니다. 올바른 방향이죠.”

-이사장님도 생명과학 등 기초연구를 하셨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정부 출범 직전 연구자들이 정부와 국회에 청원서를 냈어요. ‘연구자 주도로 하는 자율적인 기초 연구에 대한 지원이 너무 적다. 이를 바탕으로 나중에 임팩트 있는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다’라고요. 그렇게 해서 이번 정부의 국정 과제로 채택된 거예요.”

-그렇게 지원받는 기초 연구 중에 주목할 만한 게 있나요.
“당장 알 수는 없어요. 기초 연구의 어려운 부분이죠. 단기에 성과를 낼 수 없는 연구거든요. 또 연구자 영역이 너무 다양해서 정말 그 분야의 국제 흐름을 알아야 이게 얼마나 독창적인 연구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일단 믿고 지원한 뒤 가장 창의적인 연구를 하라고 독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재단의 1년 지원금 규모가 5조7,000억원인데, 다른 나라와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합니다.
“미국 과학재단(NSF), 일본 학술진흥재단(JSPS) 등 많은 나라에 유사 기관이 있어요. 한국연구재단의 경우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사회, 대학 재정까지 지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편입니다.”

-학술진흥재단, 과학재단 등 세 기관이 합쳐졌는데 시너지 효과는 있나요?
“융합 연구나 국책 분야에서는 시너지효과가 큽니다. 한편으로 사업이 다양해 한정된 인력으로 어려운 점도 있고요. 재단에 356명의 직원이 있는데, 지난 10년간 사업 규모는 2배 이상 늘었어요. 한 명당 160억원의 연구사업을 관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로켓 발사, 달 탐사까지 지원을 하니까요.(웃음)”



인문사회 지원금 더 늘려야

-인문사회 지원금은 어느 정도인가요.
“전체 예산의 약 5%, 2,500억원 정도로 적어요.”

-인문사회 분야에서 불만이 많겠어요.
“인문사회 예산은 교육부를 통해 오는데 수년째 정체돼 있습니다. 늘기를 바라죠. 재단의 큰 숙제 중 하나입니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 사회가 되면서 철학 등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고 있죠. 융합연구에 대한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연구비 분배도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요. 연구책임자들에게 대형 국책 과제에는 반드시 인문사회 파트와 함께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주문이 통하고 있나요?
“조금은 듣고 있다고 믿는데(웃음), 내년 통계를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겠죠. 규정에 없기 때문에 의무로 강제할 순 없어요. 최대한 강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융합 연구뿐 아니라 인문사회 자체 연구비도 늘어야 할 텐데요.
“올해 조금 늘긴 했는데 시간강사법이 개정되면서 인문사회 분야 시간 강사들을 위한 연구비 지원이 증가한 거예요. 임시방편이라 지속가능성도, 효과도 크지 않을 듯합니다. 시간강사법 개정할 때 좀 더 세밀하게 짰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국민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연구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인가요.
“국책 연구 중 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 관련 연구를 지원하고 있어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도 지원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대학 재정에 대한 지원 비율 중엔 서울대가 가장 높아요.
“기관으로 볼 때 가장 크죠. 교수가 가장 많고 대학원생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통 대학원 규모에 비례해서 연구비가 지원됩니다. 1인당 지원금으로 계산하면 포항공대나 카이스트에 비해 적어요. 지난해 서울대 연구자 1인이 1억4,000만원을 받았는데 카이스트는 2억1,000만원 수준입니다.”

-항의하는 경우는 없나요.
“국회에서 지역균형을 신경 쓰라는 주문을 받아요. 수도권에 지원이 집중되는 점을 항상 지적 받죠. 현재 수도권과 지역 비율을 보면 66.5% : 33.5% 정도 됩니다.”

-서울대가 지원받는 연구비에 비해 국제적 평가는 썩 좋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물론 국민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 대학에서 30위권에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사실 서울대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이 상당히 올라갔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100위권 대학에 두 개 대학이 이름을 올렸다면 지금은 5개 대학이 포함됩니다. 피인용 상위 1% 논문의 숫자도 2009년 267편에서 2017년 556편으로 증가했고요. 재단 지원이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감에선 연구비 부정 사용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거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죠.
“연구비를 부정 사용하는 연구자는 0.1% 정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부정 사용의 경우 서류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서 모니터링에 한계가 있어요. 주로 내부 고발로 알게 되죠. 부정 사용이 줄고는 있지만, 예전 관행처럼 학생 인건비 등을 다른 데 쓰는 경우가 아직도 있는 것 같아요.”

-적발됐을 때 제재도 하나요?
“연구비 신청을 3년간 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지급된 연구비는 환수하고요. 참여를 제한하고 또 적발될 경우 가중 처벌되고 제재 기간이 길어집니다.”

-국감에서 허술한 논문 저자 등재 문제도 거론됐죠.
“연구 윤리 면에서 바로 잡아야 될 부분이었습니다. 최근 ‘조 국 교수’ 사태 등을 계기로 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죠. 재단에서는 기여도에 따른 저자 등재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배포했습니다. 학회에서도 이 부분을 엄격하게 다룰 것으로 봅니다.”


“집안일 맡기고 연구에 올인해라”

-재단의 여섯 번째 이사장이시죠. 10년 동안 그 자리에 많은 분들이 왔다 가셨어요.
“정부가 바뀐 문제도 있고 개인 사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바람에 재단이 덜 안정된 측면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3년 임기를 꼭 채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정된 재단을 만들어서 연구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전문적인 기관이 되도록 노력해야죠.”

-재단의 첫 여성 이사장이기도 하신데 여성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일까요.
“이해와 공감 아닐까요? 그게 장점이자 힘이라고 생각해요. 여자가 전문직을 수행하는 것을 편하게 봐주는 문화가 아니잖아요. 스스로 그런 환경을 거치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 같아요.”

-모교의 초대 다양성위원장을 하실 때 서울대 다양성보고서를 발표하셨죠. 최근 세 번째 보고서가 나왔는데 그간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나요.
“여교수 수가 확 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경제학부와 전기전자공학부에 여성 교수가 처음으로 임용됐습니다. 학내에 다양성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었고요. 다양성 보고서를 통해 ‘우리 과가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최근 조 국 사태와 관련해 서울대의 순혈주의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타 대학 출신을 더 많이 임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1999년 교육공무원법으로 타 대학 출신을 전 교원의 3분의 1까지 뽑으라는 룰이 정해졌어요. 당시 타 대학 출신 비율이 5% 정도였습니다. 이후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만 아직 30%는 맞추지 못하고 있어요. 개선돼야죠.”

-후배 여성 교수들에게 환경 탓하지 말고 돈을 들여서라도 가정일 맡기고 연구에 올인하라고 조언하셨던데, 그럴 수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수한 여성 후배들이 도중에 가정 때문에 일을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능력이 뛰어날수록 그런 경향이 더 큰 것 같고. 사회가 감당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당장 돈이 좀 들더라도 본인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과감해져야 해요.”

-과학계에서도 여성을 차별하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어요.
“과거 여성 본인이 낸 아이디어를 지도 교수가 다 가져가도 말 못 하는 경우가 많았죠. 요즘 그러한 문제 제기가 많이 되면서 노벨상 위원회에서도 의식적으로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나사에서 우주정거장에 우주인 두 명 한 팀을 보내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여성 두 명(한 팀)을 보냈어요. 우주정거장 밖에서 배터리 교체하고 고치는 작업을 하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준 참 기분 좋은 뉴스입니다.”

-이공계 여학생 수가 여전히 적죠.
“과거보다는 늘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공대 여학생 비율이 13%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대에 여교수가 거의 없는 게 영향을 미쳐요. 롤모델이 없는 거죠.”

-공대에 여자 화장실이 생긴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입학시험을 공대에서 봤는데 여자 화장실이 없어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어요. 1997년 자연대 학생부학장 할 때 여자화장실이 한 층 걸러 있었어요. 그때 모든 층에 여자 화장실을 설치했죠.”

-임기 마치면 학교로 돌아가시죠?
“그렇죠. 가면 거의 정년이에요. 두고 온 학생들이 있어서 졸업시켜야 해요. 지금도 토요일은 가서 제자들 지도해요. 물론 그 학생들 지도 교수는 다른 분들이 맡아 주셨고요.”

-정년 퇴임 이후에는 무슨 일 생각하고 계세요.
“과학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정리=김남주 기자



노정혜 동문은


1979년 모교 자연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분자생물학 명문인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분자미생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6년 서울대 자연대학의 실험 부문 최초이자 20대 여교수의 임용으로 화제가 됐다. 생명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임과 동시에 서울대 연구처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기초연구연합 회장 등을 역임하며 대학과 사회발전에 앞장서 왔다.

대학 내 성평등 발전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여교수회장과 다양성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역임했다. 로레알 여성 생명과학상(2002),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2006), 한국과학상(2011)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