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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2019년 2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지중해의 맛, 대구에 있습니다

김선일 대구 중구 ‘라 루체’ 오너셰프
동문맛집

지중해의 맛, 대구에 있습니다

김선일 
대구 중구 ‘라 루체’ 오너셰프


“저희 레스토랑은 외국인이나 외국생활을 오래 하셨던 분, 외국여행을 자주 다니시는 분들의 만족도와 재방문율이 높습니다.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국가에서 온 손님들로부터 자국의 음식 맛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대다수의 유러피안 레스토랑들이 한국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느 정도씩은 한국화 되는 것에 반해 ‘라 루체’는 지중해 요리 특유의 매력을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대학 2학년 시절인 2004년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생에서 시작해 2010년 보그 지 선정 ‘한국을 대표하는 영셰프 6인’에 오른 모교 동문이 있다. 이태원 ‘라 보카’의 부주방장, 청담동 ‘마더스 오피스’의 총주방장을 거쳐 2011년 대구 중구에서 ‘라 루체’를 개점한 김선일(농경제사회03입) 오너 셰프가 그 주인공. 유럽 각국의 요리를 수제버거에 접목시켰던 그는 오늘날 수제버거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정식 요리학교를 다니지 않고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스타셰프의 조언만으로 일가를 이룬 김선일 동문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과외를 했으면 더 적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더 많은 돈을 벌었겠지만 저에겐 아르바이트도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었어요.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즐길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들고 적게 벌더라도 행복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으려 했습니다. 저는 레스토랑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해졌어요. 묘한 흥분감과 삶의 생생함을 느꼈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레스토랑을 자주 다녔는데, 그러면서 레스토랑이 맛있는 음식과 행복한 추억이 담긴 공간으로 각인됐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공간에서 손님들도 즐거워 하고 그들의 즐거운 추억 중 일부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찼어요.”

김 동문이 그토록 원하는 직업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는 완강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으나 2000년대만 해도 직업으로서의 요리사는 대우도 사회적 인식도 열악했다. 서울대 다니는 귀한 아들이 부엌에서 칼을 잡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부모님은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 지원마저 끊어버렸다. 모교를 자퇴하고 타지에서 마땅한 거처도 없이 아르바이트하는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쪽잠을 잤다. 하루 15시간 이상씩 주방 일을 했고, 쉬는 시간엔 독학으로 요리를 공부했다.

서울대학교를 거쳤다는 것
자체가 자존감의 원천이 되어
아무리 힘들어도 
무릎꿇지 않도록 붙들었어요

“외롭고 힘들다는 생각보단 죄책감이 더 컸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제 고집대로 학교를 자퇴했으니까요. 누군가는 아둔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저는 제 내면의 외침에 귀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2년여 동안 친구는 물론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요리에만 전념했죠. 무거운 죄책감과 별개로 요리를 할 때만큼은 경쾌하고 즐거웠어요. 꼭 성공해서 저한테 실망했을 주변사람들에게 멋진 아들,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라 루체’. 이탈리아어로 ‘빛’을 뜻한다. 김 동문에겐 요리가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어줄 한 줄기 빛이 아니었을까. 인터뷰를 청하고자 라 루체로 전화했을 때 김 동문의 어머니가 받았다. 졸업을 안 했는데 동창신문에 소개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며 한사코 사양했다. 떨리는 그 목소리에서 국내 최고 명문대학을 자퇴하고 셰프의 길을 택한 아들에게 한때나마 느꼈을 원망과 설움이 묻어났다. 지금은 라 루체에서 샐러드를 담당하고 있다. 셰프로 자리를 잡은 후부턴 서울대 같은 과 동기들과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가끔은 서울의대 동창회 대구지역 모임이 라 루체에서 열린다고.

“학업은 중단했지만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한 경험이 저의 가치관이나 요리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를 거쳤다는 것 자체가 자존감의 원천이 되어 아무리 힘들어도 무릎 꿇지 않도록 붙들었죠. 수요와 공급의 이해, 소비 효용의 계측 등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익힌 개념들을 레스토랑 운영에 적용해 보기도 하고요. 지중해 연안의 요리들은 다소 투박하지만 선이 굵고 선명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마늘과 고추가 많이 쓰여 의외로 한식과 통하는 부분도 있고요. 기회가 된다면 특정 문화권에 국한되지 않고 두 지방의 음식을 저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보고 싶습니다.”

라 루체의 대표메뉴는 ‘무사카’(1만7,000원)와 ‘코카’(1만9,000원). 무사카는 올리브유로 고소하게 튀겨낸 가지에 토마토 소스, 모짜렐라 치즈, 파리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겹겹이 쌓아올려 만든 그리스식 오븐 요리이며 코카는 허브를 넣어 저온발효한 생도우에 제철 야채와 구운 마늘, 바냐 카우다 소스를 곁들여 고소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스페인식 플랫 브레드다. 인공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식자재 공급업자를 통하지 않고 김 동문이 직접 매일 장을 봐 신선한 재료를 조달하고 있다. 
나경태 기자
문의:053-606-0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