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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2022년 12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평생에 단 한번 있는 날, 사랑하는 이를 위한 단 하나의 선물

김명주(조소14-20)  봉천동 ‘파티이머지’ 대표
동문맛집
 
평생에 단 한번 있는 날, 사랑하는 이를 위한 단 하나의 선물
 
김명주(조소14-20) 
봉천동 ‘파티이머지’ 대표 

 
수채화 느낌 케이크 장식 눈길
예약오픈 때 문자 수백통 인기


‘아까워서 어떻게 먹을까?’

김명주 ‘파티이머지(PartyEmerge)’ 대표가 만든 케이크들의 첫인상이다. 기념일, 축하할 일의 상징인 케이크가 화려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만, 김 대표가 만든 케이크에는 그 너머의 특별함이 있다. 자를 대지 않고 죽 그은 반듯한 직선의 느낌, 캔버스 위의 수채화를 빵 위에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이 그것이다. 

가게 이름 파티이머지는 파티(Party)와 긴급사태(Emergency)의 합친 말로, 준비 없이 특별한 날을 맞았을 때 케이크로 해결사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11월 30일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매장에서 김명주 동문을 만났다. 

“2019년 여름 졸업 전시를 준비할 때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 풀 데가 필요했죠. 기념, 축하를 주제로 작품을 구상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케이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충동이 일었는지 엄청 많은 제빵 도구를 한 번에 다 사버렸어요. 생선 비늘이 눌어붙은 낡은 오븐을 구해다 애인과 헤어진 친구랑 같이 케이크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부드러운 반죽을 만지고, 달콤한 크림을 맛보면서 친구는 실연의 고통을, 저는 작업의 스트레스를 달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서로 응원하며 케이크를 만들고, 다른 친구들도 불러다 나눠 먹고… 케이크에 푹 빠졌죠.”

정작 졸업 전시엔 소홀해졌다. 지도 교수와의 면담에 자주 지각했고 과제도 안 했다. ‘뭐 하느라 그렇게 바쁘냐?’는 물음에 SNS에 올린 케이크 사진들을 보여줬다. 
“작업은 열심히 안 해도 되니까 너 하는 거 최대한 해봐, 하시더라고요. 학점은 비록 엉망으로 주셨지만(웃음), 선생님들께서 하나같이 다 응원해 주셨어요.” 

김 동문은 조소와 제빵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반죽을 만들어 틀에 붓고 기다렸다가, 다시 꺼내 후처리하는 작업과정이 특히 그렇다고. 보는 것과 먹는 것이니 당연히 다른 점도 많다. 케이크 제작은 위생과 청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올 초에 반년 정도 제과제빵 학원에 다녔습니다. 취미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과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새로 배웠다기보단 SNS를 통해 독학한 지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였죠. 만족하지 못한 손님에겐 주저 없이 환불해 드립니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까다로운 주문 절차를 거쳐 구입한 케이크를 괜히 꼬투리 잡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밥은 하루 세 끼 먹으니 금방 또 끼니 때가 되지만, 케이크는 보통 1년에 하루, 어쩌면 평생에 단 하루를 기념하는 음식이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면 돈이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주문제작 케이크인 만큼 사전 예약이 필수다. 매월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일요일 저녁 7시에 그다음 달 예약이 오픈된다. 카카오톡 채널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약 가능일을 확인하고 ‘희망날짜(3순위까지)/타입(맛, 사이즈)/주문자 이름’을 적어 메시지를 보내면 순차적으로 주문서 링크를 받게 된다. 주의할 점은 예약 신청 메시지는 꼭 한 번만 보내야 한다는 것. 오픈하자마자 수백 통의 메시지가 폭주하기 때문에 또 보내면 순서가 확 밀린다. 7시 정각에 메시지를 보내도 예약이 안 될 수 있다.

생크림보다 발색과 조형 측면에서 유리한 크림치즈를 주로 사용하며 맛은 바닐라, 코코아, 레몬 등 3가지를 제공한다. 크기는 미니부터 1호, 2호까지. 타입은 색감과 디자인 난이도에 따라 A부터 D까지 4종류가 있다. 드로잉, 하판 데코, 꽃, 인물 등 구체적인 이미지의 구현을 원한다면 C나 D타입을 선택해야 한다. 

C타입부터 색의 가짓수에 구애 없이 다양한 색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한다. 하늘이나 바다 같은 풍경, 컨셉추얼한 그래픽 이미지 등이 그려지는 게 C타입, 복잡한 형태의 사진이나 명화, 영상 속 장면, 직접 그린 그림 등이 그려지는 게 D타입이다. 손님한테서 참고 자료를 받기도 하나 다른 업체의 케이크 이미지는 받지 않는다. 가격은 타입과 크기에 따라 A타입 미니 3만7000원부터 D타입 2호 7만원까지 다양하다. 2층 케이크는 별도로 주문받는다. 

“호불호가 없는 보편적인 레시피에 기왕이면 비싼 재료를 씁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케이크가 아닌 까닭에 원가 좀 낮춘다고 큰돈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가족이나 지인들 대상으로 시식을 해보면 비싼 재료 쓴 건 귀신같이 알아맞혀요(웃음). 주문 제작하는 케이크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손님들 사연을 듣게 되는데요. 케이크는 입에도 대지 않았던 아버지가 환갑 케이크를 받고 눈시울을 붉혔다는 이야기,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십구재에 맞춰 불상을 그린 케이크를 주문해 스님들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각자의 기념일에 제 케이크를 선택해준 것만으로 감사한데, 그 와중에 참 좋았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혼자 감동하고 그러죠.”

연말연시 대목을 맞아 바쁠 줄 알았는데, 12월 중 보름이 휴무였다. 이유를 묻자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결혼을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2023년 4월 16일 호암교수회관에서 오주성(조소12-18) 동문과 웨딩마치를 울린다. 카톡 친구에서 ‘partyemerge’ 검색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