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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호 2023년 8월] 문화 맛집을 찾아서

까다로운 평양냉면, 50년 넘게 고집하는 이유

동문맛집 정현아 (농가정82-86)  은평구 ‘만포면옥’ 대표
동문맛집
 
까다로운 평양냉면, 50년 넘게 고집하는 이유
 
정현아 (농가정82-86) 
은평구 ‘만포면옥’ 대표

 
실향민에게 ‘고향의 맛’ 선사
올해 5월 한식 대가에 선정 


커다란 보냉 가방에 불고기며 갈비탕이며 손수 빚은 만두에 반냉동한 녹두지짐까지 빈틈없이 싸고 있었다. 기자가 평양냉면을 배부르게 먹고 일어서던 참이었다. 염치없게도 괜찮다, 그냥 두시라, 말하지 못했다. 포장하는 그 손길이 너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서…. 친정 갔다 돌아오는 아내의 마음이 이러할까. 인터뷰 때, 아꼈기 때문이 아니라 나누었기에 살아남았다고 한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7월 19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백년가게’ 만포면옥 본점에서 정현아 대표를 만났다.

“만포면옥은 1972년 개업한 평양냉면 전문점입니다. 평안북도 희천 출신 시아버지 지해성님과 평안남도 용강 출신 시어머니 진정옥님이 8남매의 생계를 위해 탁자 3개를 놓고 처음 시작한 가게였죠. 두 분 모두 큰 부잣집 자제들이셨는데 시아버지의 영화사업이 실패하면서 온 가족이 식당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남편은 맷돌로 녹두를 갈았죠. 지금은 유압식 제면기로 면을 뽑지만, 옛날엔 모두 손으로 했대요. 나무틀에 구멍을 뚫고 그 위에서 사람이 반죽을 눌러 면을 내렸죠. 집안에 머슴이 없으면 만들어 먹을 수 없는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가세는 기울었어도 두 어르신 입맛이 여전하니 맛있을 수밖에요.”

평양냉면의 주재료는 메밀. 그리고 차돌양지를 푹 고운 육수에 동치미를 더해 감칠맛을 낸다. 달고 아삭한 겨울 무로 동치미를 담가 육수로 쓰는 까닭에, 지금은 무더운 여름에 즐겨 찾지만, 본래 겨울 음식이다. 이냉치냉(以冷治冷). 정 대표는 “찬 구들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며 먹었던 평양냉면”이라며 “겨울에 더 맛있다”고 귀띔했다. 

만포면옥은 개업 초기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준 음식으로 입소문을 탔다. 긴 시간 영화계에 몸담았던 시아버지의 영향으로 신영균·김희갑·이예춘·김지미 등 유명 배우들이 자주 찾아 더욱 인기를 끌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배다리막걸리에 곁들여 만포면옥 냉면과 녹두지짐을 즐겨 드셨대요. 그런 날이면 가게 문이 딱 걸어 잠겼습니다. 항의하는 손님도 있었지만, 경호원의 기세에 눌려 더 말을 잇지 못하는, 그런 시대였죠. 이명박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이곳을 찾았고요. 51년을 이어오면서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오던 꼬마가 어느덧 청년이 돼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고, 노부부가 함께 손잡고 오시다가 어느 날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혼자 오십니다. 한결같이 추억을 일깨워줘서, 맛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하세요. 평양냉면은 여기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맛이 변한다며 프랜차이즈는커녕 직영점 개점마저 거부한 시어머니의 고집 덕분이죠.”

정 대표와 만포면옥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동창 지용석씨가 이 집 셋째 아들이었던 것. 은평구 토박이였던 까닭에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은 동창회 모임에서 다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사장 아들이지만 카운터에서 거드는 정도였던 남편에게 밑바닥부터 주방일을 배우도록 독려했다. 2019년엔 불고기 식당을 운영하던 맏사위를 사돈댁과 힘을 합쳐 설득, 일찌감치 후계 구도를 확립해 3대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운명을 예감이나 한 듯 정 대표는 모교 졸업 후 한식 및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뒀다. 평양냉면 외 갈비탕, 어복쟁반, 옛날불고기 등 새로운 메뉴를 추가해 여름에 왕창 벌어 겨울에 버티는 수익구조를 개선했다. 가게 경영뿐 아니라 음식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여, 2013년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에서 공부했고, 올해 5월엔 대한민국 한식포럼에서 한식 대가로 선정됐다. 1대에서 2대, 3대로 이어지는 동안 미묘한 신경전도 있었으나 정 대표가 실력으로, 또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중심을 잡았다.


“레시피 없이 감으로 일정한 맛을 내는 게 선대의 방식이었어요. 저희는 규격화된 레시피의 적용을 꾀했죠. 장사에서 사업으로 성장하려면 누가 어디에서 조리하든 일정한 맛을 내는 게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죠. 조리가 끝난 평양냉면은 함흥냉면에 비해 빨리 불고, 동치미를 희석한 육수는 아침 맛과 점심 맛이 다를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어렵거든요. 그래서 다른 평양냉면집은 동치미를 버리고 고깃국물로만 육수를 내죠. 함께 일하는 맏사위가 주장하는 것도 그런 트렌드예요. 제가 처음 만포면옥에 합류했을 땐 손님이 짜다고 하면 주방에 달려가 짜대요, 하고 다른 손님이 싱겁다고 하면 또 달려가 싱겁대요, 했었는데요. 지나고 보니 남의 입맛에 연연할 게 아니더라고요. 노포(老鋪)로서 전통을 지키되 안주하지 않는, 손님이 제 발로 찾아오게 하는 식당이 되자, 만포면옥의 모토랍니다.”

지금도 가게 한편에서 손수 만두를 빚는 정현아 대표. 한 손님이 “어떻게 그렇게 꼼짝 않고 종일 진지하게 만두를 빚냐. 그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자 이때다 싶게 “저 서울대 졸업생입니다” 답했다고.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동문들 덕분에 손님들로부터 신뢰받고 있다고 말했다.

“선대가 생계를 위해 맨땅에서 시작한 반면, 저희는 어느 정도 갖춰진 식당을 물려받았습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죠. 그런 만큼 사회적 기여에도 힘을 쏟고 있어요. 이웃 복지관에 식사 대접도 하고 명절 땐 음식도 가져다 드리고요. 은평구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반백 년 세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나눴기 때문이에요. 서울대 나와서 만두나 빚는단 소리 듣지 않고, 그래서 더 믿어주시는 이유죠. 동문 여러분들 많이 찾아주세요.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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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