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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018년 1월] 문화 작가의 정원

작가의 정원 <1> 22m 대작 ‘수련’이 탄생한 그 곳

세계 대작가들이 가꾸던 정원 소개, 가든 디자이너 문현주 동문 첫 연재

작가의 정원

<1> 22m 대작 ‘수련’이 탄생한 그 곳, 모네의 정원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아는(?) 사람들의 정원을 만난다. 클로드 모네, 윌리엄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괜한 친숙함에 반갑다. 그리고 이리저리 정원을 둘러 보다 내 멋대로 그들의 작품과 연관된 부분을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아마 자연을 담고 있는 정원은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 작품에 대한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들의 정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여 둘러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혹시 기회가 되어 해외여행을 하는 동문들이 이 재미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연재를 시작한다.

글·사진 문현주(농가정74-78) 가든 디자이너


모네의 정원 속 연못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모네가 그린 22미터짜리 대작 ‘수련’이 있다. 그리고 그 수련이 있었던 정원이 있다. 파리에서 서쪽으로 8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쥐베르니(Giverny)라는 노르망디풍의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에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주택과 정원을 보존하고 있다. 그는 1883년부터 1926년까지 8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 살며 정원을 소재로 약 500점의 그림을 그렸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모네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모네의 정원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기념관인 주택이 먼저 나온다. 우선 집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 식당과 부엌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일본 판화들이 걸려 있다. 이곳저곳에 일본풍의 장식품들이 많이 있다. 집안에 걸려 있는 일본 그림과 일본풍의 판화들이 대(大) 인상파 화가의 명성을 조금은 깎아내리는 듯한 생각이 든다.

물론 그가 살던 19세기 후반에 파리의 문화계에 일본 열풍이 불어 많은 화가들이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어색하다. 모네 자신도 우키요에(浮世繪) 목판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정원에 대나무를 심고 연못에는 일본풍의 무지개다리를 만들기도 했다.


모네의 수련 연작



이층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니 중앙에 덩굴식물이 올라갈 수 있는 아치 구조물이 있다. 모네의 그림 속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림 속에서는 등나무 꽃이 늘어졌었는데 지금은 덩굴장미가 올라가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장미 아치를 중심으로 양쪽에 있는 화단의 꽃들도 조금 바뀐 듯하다. 정원으로 내려가서 화단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모네도 이렇게 걸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묘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화단에는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다. 모네는 6명의 정원사와 이 정원을 관리하였다지만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요즘에는 더 많은 정원사가 필요할 것 같다. 역시나 화단 사이에서 서너 명의 정원사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정원사들은 화단에 시든 꽃을 따주고 계절에 따라 일년초를 갈아 심고 키 큰 다년초를 정리하고 있다. 그들의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화단을 지나면 길 건너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갈 수 있는 지하 통로가 있다. 지하 통로를 나오면 연못으로 흘러들어가는 물길이 있고 한쪽으로 작은 대나무 숲이 있다. 물길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니 연못에 떠있는 수련이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물가에 어울리는 버드나무와 진분홍, 분홍, 노랑, 베이지색 등 다양한 색의 노루오줌이 큰 덩어리로 잘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연못 위에서 작은 나룻배를 탄 정원사가 조심스럽게 수초를 걷어 올리고 있다. 여유로운 그의 모습이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세 여인이 흰 드레스를 입고 낚시를 하고 있는 그림 ‘지베르니의 나룻배(En norvegienne, ou la Barque a Giverny)’를 떠올리게 한다.
연못 주위를 걷다 보면 모네의 그림 ‘수련’ 연작에서 본 장면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그가 찾고자 했던 빛의 변화에 따른 색채의 조화가 물 위에 반영되어 연못 위에 펼쳐진다. 폴 세잔(Paul Cezanne)은 빛의 변화를 색채로 풀어내는 모네의 이러한 능력에 대해 ‘모네는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연못을 지나니 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흰 캔버스 위에 떨어지는 나뭇잎 그림자를 조심스럽게 본을 떠서 색칠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구성이 된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아저씨의 모습이 이 모네의 정원과 잘 어울린다.




*문현주 동문은 현재 양평 농원에서 ‘가든 디자인 스쿨’을 운영하고 있으며 정원 작가다. 이론보다 유럽의 평범한 가정의 정원을 소개하는 것이 정원 문화를 알리는 방법이라 생각해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 편으로 ‘유럽의 주택 정원 1·2·3’ 등을 썼다. 모교 졸업 후 독일에서 공부했다. 서울대, 서울시립대, 신구대 등에서 조경설계에 대한 강의를 했고 서울여대에서 세계의 정원에 대해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