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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호 2022년 6월] 뉴스 본회소식

청어에서 자본주의 싹틔운 유대인, 비트코인도 그들 작품


수요특강

청어에서 자본주의 싹틔운 유대인, 비트코인도 그들 작품


홍익희
전 코트라 무역관장·전 세종대 교수































세계 금융 이끈 유대인 저력
‘스테이블 코인’에 관심 갖길


“청어가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부터 제 얘길 들으시면 아마 믿으셔야 할 겁니다.”

‘돈의 인문학’ 강연으로 잘 알려진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가 5월 25일 도화동 장학빌딩에서 본회 수요특강을 진행했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32년간 코트라에서 재직한 홍 교수는 전직 무역인이자 ‘돈 인문학자’. 파나마·멕시코·마드리드·밀라노 무역관장 등을 지내며 18년간 해외 7개국에서 근무했고, 그 과정에서 무역과 화폐 등에 관심을 가지고 통찰한 내용을 저술과 강의로써 알리고 있다. 이날 강의에서도 금융사를 관통하는 유대인의 저력과 오늘날 미국의 경제정책, 미래 화폐까지 하나로 꿰어 보여줬다.

홍 교수의 이야기는 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중세와 근대의 분기점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1492년입니다. 그해 스페인이 ‘기독교 왕국’임을 표방하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내쫓고, 유대인 추방령을 내리고, 신대륙을 발견했죠. 근대가 시작되는 선두에 유대인들이 있었어요.”

쫓겨난 유대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저지대, 즉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로 향했다. 농사를 짓기 힘든 저지대 국가는 청어를 잡아 소금에 절여 유럽에 내다 팔아 먹고살았다. 한자 상인에게 사서 쓰던 암염을 자신들이 살던 스페인의 값싸고 품질 좋은 천일염으로 대체하면서 유대인이 청어 산업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유대인은 무엇을 하면 유통 전체를 독점화해야 해요. 조선소를 지어 고기잡이배를 만들고, 화물선도 만들면서 역사가 바뀌었죠. 다른 나라 화물선의 3분의 1까지 운임을 줄인 이들이 유럽 화물 운송을 싹쓸이하면서 암스테르담은 물류의 도시가 됐습니다.”

운임을 줄이기 위한 유대인들의 꾀는 대단했다. 배 만드는 나무를 수입해 왔던 스칸디나비아가 갑판 넓이로 통행세를 매기는 것에 착안, 갑판이 좁은 ‘플류트선’을 만들었다. 네덜란드 갯벌에 맞춰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을 만든 것도 단가를 낮춘 ‘신의 한 수’였다. 복합 도르래를 개발해 돛 작업 하는 선원 인건비까지 대폭 줄였다. 중계 무역이 발달한 네덜란드에서 최초의 주식회사와 주식거래소, 중앙은행의 모태와 근대적 의미의 기축통화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미국의 달러 발행이 국채와 연동하게 된 이유도 유대인을 실마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양털 외에 마땅한 수출품이 없던 영국이 무역 독점을 꾀해 1651년 ‘항해 조례’를 제정하고, 반발한 네덜란드와 영국은 전쟁을 벌인다. 승리한 영국의 요구로 네덜란드 무역상들은 대거 런던으로 이동했고, 영국은 세계 무역의 중심이 된다.

궁지에 몰린 유대인들은 네덜란드 총독 빌럼 3세가 스페인과 벌이던 독립전쟁에 사활을 걸었다. 전 세계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자본을 끌어와 전쟁 채권을 사주고 군자금을 댔다. ‘돈의 힘’으로 스페인을 이긴 후, 빌럼 3세가 의회와 왕실이 갈등을 겪던 영국의 공동 왕으로 초청되면서 유대인들도 함께 영국에 옮겨온다. “빌럼 3세는 프랑스와 전쟁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유대인에게 손을 벌립니다. 유대인들은 궁리 끝에 80만 파운드를 모아서 왕에게 줬죠.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매년 8% 달라’면서요. 대신 왕실의 채무증권을 담보로 그 금액만큼의 발권력을 얻어냈어요. 이렇게 영란은행이 탄생합니다.”

‘국채를 받고 그만큼 돈을 찍어 왕실에게 주는 시스템’은 영국 식민지에도 그대로 도입돼,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영란은행을 본떠서 만들어진다. 그는 이 역사가 팬데믹 이후 미국의 강력한 재정정책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연준이 갖고 있는 국채에도 이자를 지급하는데, 연준은 이 이자를 받아 주주에게 6%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연준이 쓸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약 90%)를 다시 미국정부에 돌려줍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국채 발행을 두려워 하지 않고 강한 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겁니다.”

왜 재정정책일까? 금융권을 통해 유동성을 찍어내는 데서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인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미국 상위 1%가 미국 전체 자산의 40%를 갖고, 차상위 9%가 35% 정도를 가집니다. 문제는 하위 50%입니다. 미국 국민 절반은 갖고 있는 재산이 거의 없어요. 팬데믹이 터지면서 이 하위층의 붕괴를 막기 위해 자본주의 틀이 바뀌고 있습니다. 옛날엔 통화 정책으로, 양적 완화로 금융권을 통해 돈을 풀었다면, 이제는 재정정책으로 통화 주도권을 정부가 갖고 와서 필요한 개개인에 직접 ‘쏴주는’ 거죠. 과거 금융자본주의는 포용적 자본주의로 변화했습니다. 재정의 3대 기능인 자원 배분, 경제 안정화, 소득 재분배 중 예전엔 경제 안정화를 중요시했지만 이젠 소득 재분배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미래 화폐 시장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그는 △현 지폐 시스템 △암호화폐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스테이블 코인 네 가지가 경쟁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은행 중개를 배제한 탈중앙 예금·대출 시스템 ‘디파이(DeFi)’에 주로 쓰이고, 송금이 수월한 스테이블 코인을 꼭 관심 갖고 공부해 두라”고 조언했다. 유럽과 브릭스 국가, 산유국이 각각 디지털 화폐를 만들려는 것처럼 “화폐 시장에서도 급속한 분권화가 물밑 진행되고 있다”며 “변화에 끌려가기보다 연구해서 주도적으로 변화를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놀라운 것은 2008년 혁신적으로 등장한 비트코인조차 유대인 암호학자들이 30년간 합동 연구 끝에 개발한 산물이라는 설명이었다.

홍 교수는 “30년간 코트라에서 우리나라 제조업 수출을 지원했지만, 최종적으론 금융 산업을 포함한 서비스 산업에서 승부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금융 서비스를 창안하고 주도했던 유대인의 역사를 연구했다”고 했다. 전 10권짜리 ‘유대인 경제사’, 한 권으로 축약한 ‘유대인 이야기’가 명저로 꼽힌다. 유대인 금융 명가 로스차일드 가문에 집중해 쓴 책 ‘로스차일드 이야기’를 이날 참석자들에게 증정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