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29호 2022년 4월] 뉴스 모교소식

수요특강: “내 몸 설계도 10만원에 알 수 있는 시대 열렸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특강

“내 몸 설계도 10만원에 알 수 있는 시대 열렸다”

서정선(의학70-76) 마크로젠 회장



유전체 분석, 정밀의학의 핵심
디지털 의료 혁명 반드시 해야


“사람의 몸 하나하나는 도서관입니다. 코로나는 1페이지, 대장균과 같은 박테리아는 10페이지짜리예요. 우리 몸엔 1000페이지짜리 책 1000권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한 장 한 장 읽을 수 있게 됐으니 엄청난 일이죠.”

3월 23일 본회 장학빌딩에서 열린 수요특강 ‘미래의학과 질병예측-나의 게놈 이야기’. 유전체 연구의 권위자인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이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어렵고 복잡할 것 같은 유전체 연구를 ‘내 몸의 설계도를 찾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1970년대만 해도 인간의 몸 안에 어떤 설계도가 있는지 알아낼 수 없었어요. 그걸 알아낸 게 인간 게놈 프로젝트입니다. 1990년부터 8개국에서 3000명 학자를 모으고, 25억 달러를 들여 2000년대에 성공했습니다. 매뉴얼도 못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던 우리가 피조물로서 처음 자신의 매뉴얼을 알아낸 거죠. 과학자 3000명이 11년 걸려서 1명을 분석하는 데 2조5000억원이 들었으니 개개인마다 다른 설계도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한 듯이 보였죠. 그런데 2022년 현재는 한 사람의 설계도를 10만원만 내면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설계도를 갖게 된 인간은 무얼 할 수 있을까. 서 동문은 “설계도가 잘못됐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설계도가 잘못되어 걸리는 것은 유전병뿐입니다. 당뇨나 암, 고혈압 같은 것들은 환경 요인만 잘 컨트롤 하면 피할 수 있죠. 부모님과 친척들의 질병 패턴을 통해 대강 알 수는 있지만, 유전자가 섞이다 보니 정확하게 맞지 않죠. 우리가 설계도를 한 장씩 갖게 되면 그걸 보면서 어떤 약점이 있고,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게 됩니다.”

가령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강력한 유전적 위험인자로 꼽히는 유전자가 있다. ‘APOE’ 유전자의 세 가지 타입 중 APOE4 타입을 가지고 있으면 75세에 치매 확률이 30배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 경우 치매 예방을 위한 활동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고혈압과 당뇨, 녹내장, 천식, 결핵에 취약한 유전자 여부도 알 수 있다.

서 동문의 유전체 연구는 성별이나 인종별로 적합한 의약품을 처방하는 맞춤의학, 예측되는 질병을 미리 파악해 대비하는 예방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명운이 달린 정밀의학의 발전도 앞당긴다.

그는 “노인인구 증가가 엄청난 의료비 상승효과를 유발하는 가운데, 방대한 유전정보와 질병 기록, 생활 기록까지 빅데이터로 처리해서 질병을 예측하고 치료하는 정밀의학이 해결책”이라고 역설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5년 정밀의학 원년을 선언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지금 속도라면 거덜나게 생겼어요. 노인인구의 증가가 너무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죠. 2018년 미국 전체 GDP의 18.4%였던 의료비가 2060년에는 50%까지 올라갈 겁니다. 의료비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도 미리 정보를 알아서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해지죠. 디지털 의료 혁명이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게 아닙니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사회가 무너질 겁니다.”

지금은 전도유망한 유전체 연구지만 어떻게 그 시절 한국에서 시작할 용기를 냈을까. 서 동문은 자신의 연구 여정을 설명할 때 꼭 인용하는 말을 꺼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 한 구절이다. “‘세상에는 많은 풍문이 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사는 것은 슬픈 일이다. 풍문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우리는 그곳에서 운명을 만난다.’ 대학시절 DNA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풍문을 듣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생화학, DNA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임상의학의 길을 갈까 고민도 했습니다만, 기생충학자로서 모교에서 기초의학 외길을 걸어온 아버님의 뒤를 이었죠.”

‘바이오 벤처 1호’이자 국내 바이오벤처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한 마크로젠의 창업 비화도 들려줬다. “G7을 목표로 나라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를 받다가 1997년 IMF가 왔습니다. 과기부 국장이 찾아와서 ‘서 교수님, 국제 특허도 많이 내는데 회사를 하나 만들어서 기여하십시오’라고 해요. 1984년 미국에서 사업을 해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몇 번을 물러났지요. ‘회사를 설립해야 연구비를 주겠다’고 거의 강요하다시피 해서 만든 게 마크로젠입니다. 마침 2000년대 게놈 연구 열풍이 불었고, 2000년에 상장한 마크로젠 주식이 500원에서 시작해 18만6000원까지 올라갔어요. 그걸로 게놈 연구에 필요한 기계와 컴퓨터를 살 수 있었고, 연구를 계속해서 네이처 본지에 7편, 자매지까지 18편의 논문을 냈습니다. 학자로서 하고 싶었던 연구를 하는 데 회사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마크로젠은 강남에 본사를 두고 일본과 싱가포르, 유럽, 미국에 법인을 두고 있다. 지난해 매출 1300억원을 올렸다. 78억 인구에게 단 10만원, 100달러에 DNA ‘설계도’를 주는 것이 목표다.

지금까지 게놈 연구는 유럽 중심으로 이뤄졌다. 서 동문은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게놈 연구 진전에 크게 기여했다. 2009년 세계 최초로 고해상도 북방계 아시아인 게놈을 분석해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2016년에는 정확도 높은 한국인 표준 게놈 지도를 완성했고, 2019년 아시아인 유전체 분석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뱅크샐러드 앱을 통해 비만, 혈당, 혈압 등 65개 항목에 대한 유전자를 분석해 주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유전체 의학 전문가로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어떻게 바라볼까. “사람이 30억 개의 정보를 가졌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염기 갯수가 3만개입니다. 아주 미세한 것이 세상을 바꾸고 있죠. 인간이 자꾸 영역을 넓히고 동물과 접촉이 늘어나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은 계속 우리에게 영향을 줄 겁니다. 생명체에 대한 모든 정보를 분석하는 것이 활성화되고, 원격 진료, 정밀 의료 체계가 계속 발전할 거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