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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호 2022년 1월] 뉴스 본회소식

테스형, 세상이 왜 이러냐고요?…‘인문’에 답이 있어요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수요특강
 
테스형, 세상이 왜 이러냐고요?…‘인문’에 답이 있어요
 
수요특강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작년 추석 때 가수 나훈아가 뭐라고 했죠? ‘테스(소크라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코로나19가 끝날 것 같지도 않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땐 뭘 볼까요? 고전입니다. 오늘은 아시아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베스트셀러, 논어책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12월 22일 ‘역경! 논어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본회 수요특강. 연사인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이 경쾌하게 문을 열었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에서 도가철학을 연구한 박 원장은 동양철학 강연만 10여 년째. 웬만한 기업 CEO는 대부분 그의 제자라 할 정도다. 이날도 방대한 고전에서 정수만 뽑아 맛깔나는 입담으로 소화했다.

박 원장은 먼저 화면에 ‘인문’ 두 글자를 띄웠다. ‘人文’이 아닌 ‘人紋’이었다. “잘못 쓴 것이 아니다. 글 공부가 인문학이 아니라 문양 공부가 인문학”이라며 운을 뗐다. 

“손에는 손가락 문양이 있고, 하늘엔 별자리 문양이 있고, 인간도 살아가는 문양이 있습니다.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살아가는 문양 공부지요. 어떨 때 사람의 문양이 나타날까요? 아무리 잘나 보여도 인간의 문양은 어려울 때 봐야 합니다. 그래서 논어에 나오는 1만1500 글자 중에 오늘 이 두 글자를 팔 겁니다. ‘궁(窮)’과 ‘락(樂)’입니다.” ‘궁(窮)’은 글자조차 비참하다. 동굴 안에 몸이 갇혀 활처럼 구부러지고 꼼짝달싹 못하는 형상이다. 박 원장은 “참 만나기 싫은 글자, 그런데 논어 1만1500 글자 중 최고의 글자가 이 글자다. ‘궁’자를 이해하면 논어 책이 보인다”고 했다.  

공자의 ‘궁’을 서양 식으로 본 것이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폴 스톨츠가 개발한 역경지수(AQ, Adversity Quotient)다. “가다가 산을 만나서 주저앉는 사람은 AQ지수 하(下)인 ‘퀴터(Quitter)’랍니다. 머리가 좋아도 힘들면 그냥 무너지니 성공할 확률이 적대요. 산에 올라가다 깔딱고개를 만나면 좀 고민되지 않나요? 더 올라가야 하나,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 막걸리 먹고 내려오시는 분들은 AQ지수 중(中)인 ‘캠퍼(Camper)’입니다. 끝까지 기어 올라가는 사람은 AQ지수가 높은 ‘클라이머(Climber)’들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클라이머죠. 요즘같이 코로나19 방역이 강화된 시대를 뚫고 공부하러 오셨으니, 어떤 역경이 와도 하고 싶은 걸 하시는 분들이에요.”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형 인간인 군자의 핵심도 결국 ‘궁’이다. 논어에 나오는 107가지 군자의 정의 중에서 그는 ‘군자 고궁(君子 固窮)’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군자는 궁할 때 단단해진다’는 뜻입니다. 사서(四書) 중 대학을 제외한 세 권에 똑같이 나오는 여섯 글자가 있어요.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 어떤 역경이 다가오더라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겠다. 역경을 당한 것도 나고, 그것을 맞이해야 할 것도, 불러온 것도 나다. 그러니 극복해야 할 주체도 나다. 이게 유교입니다. 이런 인간의 단단한 문양을 갖고 살아가는 자가 공자, 아니 유교가 꿈꿨던 위대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역경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객석에서 “괜찮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기회로 삼는다” 등 다양한 답이 나왔다. 논어에서 말하는 비결은 ‘락(樂)’이라고 했다.

“흥부란 사람이 군자가 맞아요. 한 대 맞고 실실 웃으면서 ‘형수님, 여기도 한 대 때려주세요. 밥풀이 맛있네’ 하죠. 인생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왜 없겠어요. 불행도 유머로 받아치면 됩니다. 그게 논어에서 말하는 궁과 락의 조합입니다.” 

공자는 머리도, 가슴도 아닌 온몸으로 즐기며(樂) 사는 자를 최고의 인간형으로 정의했다.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유명한 구절도 즐기는 자가 제일 윗길임을 보여준다. 가장 사랑했던 제자 안회더러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너의 낙을 잃지 않고 사는구나(回也 不改其樂), 가장 현명하게 사는구나(賢哉 回也)’라는 말로 치하했다.   

“공자라는 사람 자체가 역경형이었어요. 70세 퇴역 군인과 17세 여인 사이 야합(野合)으로 출생했고 세 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훌륭한 집안 출신도 아니고, 좋은 가문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지지리 궁한 상황으로 인생을 시작했어요. 그런 자신을 가리켜 ‘오소야천 고다능비사(吾少也賤 故多能鄙事)’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 천하게 자란 덕분에 능력이 많게 됐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힘든 건 축복이었대요. 유교라는 게 꽃길만 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인간이 역경이라는 걸 통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가 유교의 본뜻이에요.” 

“인생의 역경을 만났을 때 사람이 어떤 문양을 갖고 그 역경을 마주하는가가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이라는 박 원장. 강의를 마무리한 것은 의외로 고전의 한 구절이 아니었다. “같이 읽어보자”며 화면에 시 한 수를 띄웠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 대추 한 알) 
대추알을 굴리듯 낭랑하게 싯구가 울려퍼졌다. 삼라만상에 깃든 논어의 가르침을 체화하는 시간이었다.   

박 원장은 “동네 글방 훈장님인 할아버지께서 막내인 내게 가업을 이으라고 하셔서 고민 없이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 갔다. 당시엔 인기 없는 학문이었는데 요즘은 바쁜 걸 보니 할아버지가 혜안이 있으셨다”며 웃었다. 본회는 박 원장이 논어의 498개 문장을 번역해 9개 항목으로 편집한 책 ‘1일 1강 논어 강독’을 참석자 전원에게 증정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