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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호 2021년 7월] 뉴스 본회소식

“베푼 만큼 돌아온다, 그것이 진리” 엄홍길 휴먼재단 상임이사

본회 수요특강


“베푼 만큼 돌아온다, 그것이 진리”

엄홍길 휴먼재단 상임이사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완등
“손가락은 다섯개가 뭉쳐야 힘 된다”


“80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고산에 22년 동안 38번 도전했습니다. 20번 성공했고, 18번 실패했죠.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려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때마다 히말라야 산신들에게 빌고 또 빌었어요. ‘저를 살려 보내주시면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갚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하고 말이죠.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을 창립한 이유입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좌를 모두 완등한 엄홍길 산악대장이 6월 23일 본회 수요특강 연단에 섰다. ‘불멸의 도전’을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엔 평소보다 많은 신청자가 몰린 것은 물론 강연이 끝난 뒤에도 저마다 기념사진을 찍느라 북새통을 이뤘다. 이희범 본회 회장이 “17좌에 완등하면 대통령 선거에 나가도 되겠다”고 농담을 건넬 정도. 엄 대장의 17좌는 산이 아닌 사람이다. 나눔이다. 본인 이름을 건 재단을 통해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 학교와 병원을 짓고 있다.

“건물만 세우고 끝나선 안 됩니다. 자체적으로 유지보수를 할 형편이 못 되거든요. 완공 후에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간호사를 상주시키고 선생님들 급료까지 책임지고 있습니다. 2010년 5월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 ‘팡보체’를 시작으로 2011년 2월 카트만두에서 서북쪽으로 95km 떨어진 오지 농촌 ‘타르푸’, 2012년 2월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에 휴먼스쿨을 지었어요. 2013년엔 ‘비레탄티’, 2014년엔 ‘산티푸르’와 ‘다딩’, ‘따또바니’와 ‘골리’에 차례로 휴먼스쿨을 준공했고, 제가 오른 16좌의 능선을 따라 17차에 걸쳐 추진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를 등정하다 유명을 달리한 셰르파의 유가족 자녀들에겐 매월 장학금도 지급한다. 셰르파는 티베트어로 ‘동쪽 사람’이란 뜻으로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살면서 산악대의 등반에 필요한 짐을 일정 장소까지 날라주는 짐꾼이자 길잡이다. 1986년 엄 대장이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했을 때 그와 함께 산에 오른 셰르파 ‘술담 도르지’가 하산 중 추락사하기도 했다. 눈 덮인 바위에 선명한 핏자국, 찢어진 옷자락, 신발과 배낭 등이 발견됐을 때 느낀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사고 소식을 듣고 눈앞에서 정상을 포기했습니다. 컴컴한 밤, 탱- 탱- 돌덩이 떨어지는 소리가 전장에 총소리처럼 사방에서 빗발치는데 너무 무섭더군요. 산악인에게 등반은 늘 죽음과 함께 한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죠. 동시에 고산지대 사람들의 힘겨운 삶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사고 당시 술담 도르지는 열아홉 살에 불과했고 그보다 어린 아내와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어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고요. 유명 산악인으로 저 혼자 명예를 누리며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히말라야 산신들과 한 약속을 그의 고향 팡보체에서부터 실천해 나갔어요.”

‘좋은 생각을 갖고 좋은 일을 하려고 하면 좋은 일이 이뤄지더라. 그리고 그 좋은 일이 결국 나에게 돌아오더라.’ 엄 대장은 재단 설립 후 13년 동안 사업을 추진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압축했다. 재단 설립을 구상만 했지 돈이 없어 이렇다 할 진척이 없을 때 어느 문화재단에서 이전엔 없었던 특별공로상을 갑자기 만들어 5000만원이란 거액이 생겼고, 1호 학교를 만들고 2호 학교 설립을 고민할 때 또 누군가가 나서 사업을 도와줬다고. 그렇게 좋은 취지로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거듭 거듭 뜻밖의 조력자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손가락 하나 갖고 뭘 할 수 있습니까. 다섯 개가 뭉쳐야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저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여러분의 도움으로 하나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기부를 예약하고 하는 것도 아닌데 시기적절하게 술술술 일이 풀리더군요. 저희 사업을 성원해주시고 도움 주시는 분들 보면 정말 잘 안 되고 잘못된 사람이 없습니다. 베푼 만큼 돌아온다는 것, 그게 진리예요.”

이날 본회는 참석 동문 전원에게 엄홍길 대장이 쓴 책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를 증정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