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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2021년 5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봉사하는 서울대인: “1등과 꼴등이 손잡고 함께 가야 진짜 공동체”

장기려의도상 수상 박국양 동문


“1등과 꼴등이 손잡고 함께 가야 진짜 공동체”

장기려의도상 수상
박국양(의학75-81) 동문




‘최초’ 많은 심장수술 권위자
무료 수술·진료봉사에 이어
노숙인·출소자 자활 지원까지
독실한 신앙, 아내 도움 큰 힘


12년 전, 박국양(의학75-81 가천대 의학전문대학원장) 길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한국의 슈바이처’ 성산 장기려 선생을 추억한 글이다. “그는 잘나가는 의사였지만 결코 부자로 살지 않았다. 병을 치료한 게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치료한 큰 의사였다. (중략) 이 땅에 선생을 닮고자 하는 훌륭한 의사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를 떠올리며 부끄러움이 앞서는 건 나만의 생각일지….”

생각하는 만큼 닮아간 걸까. 올해 3월 박국양 동문은 의대동창회가 수여하는 제17회 장기려의도상을 받았다. 흉부외과 전문의인 그는 30여 년간 국내외에서 무료 심장 수술과 진료를 행했다. 진료실 밖에서의 시간은 탈북 의료인과 사회 소외계층을 돕는 봉사로 빼곡이 채웠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2014년 사재를 털어 아내와 충남 당진에 노숙자와 교도소 출소자들의 자활 공동체이자 임의단체 ‘푸른들가족공동체’를 설립해 운영 중인 것.

처음엔 별개의 봉사라고 생각했다. 4월 24일 당진 푸른들가족공동체에서 박 동문을 만나 대화하면서 깨달았다. 모두가 ‘사람을 살리는 일’이며, 봉사하고 헌신하는 여정을 함께 하는 이가 곁에 있음은 큰 행운이라는 것이다. 푸른들 대표인 아내 조태례 가천대 특수치료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교수가 동석했다.

“심장 뛰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심장을 고치면 파랗던 입술이 빨개지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게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멋있던지. 10시간씩 서서 수술하고, 당직하느라 집에도 못 갈 땐 가끔 ‘왜 이걸 했을까’ 생각했지만 지금 봐도 잘 한 선택이었죠.”

1986년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 박 동문은 심장수술의 권위자로 꼽힌다. ‘국내 최초’가 붙은 어렵고 힘든 수술마다 그의 이름이 있었다. 국내 최초로 심장과 폐를 동시 이식하고, 수혈 없이 환자의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하기도 했다. 심부전증 환자에 대한 심근 성형술, 헬리콥터로 이송된 뇌사자의 심장을 적출해 이식하는 수술도 그가 처음 해냈다. “심장 수술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며 스스로 호를 ‘심.수.가.행’이라 지었다.

지금까지 집도한 심장수술이 약 3,000건. 그 중 300여 건이 국내외 환자에게 무료로 해준 수술이다. 사회 환원에 관심이 많아 가진 재능으로 봉사하는 것이 당연했다. 고교 동기이자 대학 친구 황성주(의학77-83) 이롬 회장의 권유로 기독교 동아리 CCC에 몸담아 의대생 때부터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실습할 곳을 찾기 힘든 의사 출신 탈북민에게 교육 기회를 내주고, 북한으로 왕진가방을 보내기도 했다. 흉부외과 의료봉사상, 중국 훈춘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푸른들의 시작은 아내 조태례씨의 제안이었다. 미술치료와 사회복지를 전공한 아내는 교회에서 알게 된 노숙인과 출소자들의 심리치료를 맡고 있었다. 어느날 조심스럽게 꺼내온 말. “이 사람들이 변화하고 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지으면 자활이 가능할 것 같다. 당신이 도와줄 수 있을까.” 바쁜 병원생활과 봉사활동을 묵묵히 뒷바라지한 아내였다. 당진에 소유한 3,000평 들판과 주택을 흔쾌히 내줬고, 갈 곳 없는 노숙인과 출소자의 생활 터전이 됐다.

박 동문 부부와 함께 푸른들을 둘러보며 감탄이 나왔다. 이럴 줄 알고 지은 것도 아닐 텐데, 예쁜 별장같은 집이 공동체 시설에 근사하게 들어맞았다. 외부인 방문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는 입소자 중 한 명이 반갑게 맞이했다. 부부는 “푸른들에선 담배는 피워도, 술은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퇴소해야 한다. 외부에서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으면서 입소 대기 중인 이들도 있다”고 했다.

나간 사람이라 해도 어디서 잠을 자고, 뭘 하며 사는지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이들을 다시 불러모아 완전한 자립을 이뤄 주는 게 목표다. 푸른들의 향후 계획에 맞춰 박 동문은 최근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까지 땄다.

“우리 푸른들 식구들은 적당한 자리에 놓이면 얼마든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도록 격려하면서 가야죠. 공동체 식구들이 점점 건강이 나빠지고 나이 드니 더이상 미룰 수 없어 공동 생활하는 요양시설을 준비 중이에요. 훗날 세상을 떠났을 때 모실 곳까지 마련해야 우리 일이 마무리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벌여놓은 일이 많아 부끄럽다”고 했지만 결국 궤를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멎을 뻔한 심장이 뛰는 것도, 한 번 바닥을 친 삶이 뛰어오르는 것도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닌가. 그래서 ‘푸른들’의 메인 캐치프레이즈가 ‘리본 앤 리본(REBORN and RIBBON)’이다. 의사인 박 동문의 트레이드마크인 리본 보타이에, 리본처럼 서로를 묶어 준다는 의미까지 담았다. “꼭 노숙인과 출소자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들도 새롭게 태어나 어려운 사람과 함께 동행하자는 뜻”이다.

내년에 정년을 맞이하는 박 동문은 인생 2막도 푸른들에서 준비한다. “손도 안 떨리고, 눈도 나쁘지 않아 아직 수술하는 데 문제 없다”지만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은퇴 후 푸른들에 의학 역사관을 만들고 제가 좋아하는 의학사 강의를 해보려고 합니다. 들에는 약용 식물을 심어 자연에서 의학의 역사를 체험하는 시설을 만들고요. 버드나무를 심어 아스피린의 기원을 설명하고, 독 없는 꽃양귀비를 심어 진통제 모르핀의 기원을 알아보는 식이죠. 곳곳에 농막을 짓고 푸른들 식구에게 관리를 맡기면 자립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대 그리스부터 막힘없이 의학의 역사를 읊는 그는 장기려 박사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한 듯했다. “의대 면접을 보러 온 학생들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슈바이처 얘길 많이 하더군요. 장기려 박사를 잘 모르는 게 안타까워 슈바이처보다 훨씬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신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지금 우리가 문턱 없이 병원을 드나들 수 있는 의료보험제도도 1968년 60원씩 받아서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만든 장기려 박사가 초석을 놓았죠. 부족한 사람이 그 이름으로 상을 받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장기려 박사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삶의 고단함을 기꺼이 맞바꿨다. 이들 부부 역시 좋은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큰 상처로 돌아온 적도 있고, 농사를 지어 자활해 보겠다는 푸른들의 계획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유일한 후원자인 박 동문의 월급을 푸른들 살림에 고스란히 쏟아부을 때가 많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진실함이 전해져 변화를 만든다고 이들은 믿는다. “소외계층을 이용해 후원 이득만 취하는 시설도 만연한 가운데, 아무 이득 없이 감당하는 모습이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는 것 같다”고 가늠한다.

독실한 신앙심, 늘 ‘착하게 살라’고 가르친 두 아들과 딸의 무조건적 지지가 버팀목이다. 결혼 초에 봉사 다니느라 개인 휴가 한 번 간 적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부부는 내내 웃음만 띄웠다.

“집사람과 서로 동의한 게 있어요. 우리가 꼴등의 손을 잡고 가자, 특히 의료인들은 1등이라도 반드시 꼴등과 손잡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죠. 아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도와줘서 모든 게 가능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아요. 비싼 옷 한 번 사 입은 적이 없지요. 우린 죽고 나서 이름이 어떻게 남느냐, 신앙인으로서 절대자의 앞에 갔을 때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 “결혼할 때 (남편이) 우리 재산을 다 환원하고 가자고 말했어요. 그 말씀만 믿고 갑니다(웃음)”.

40대 중반에 장기기증 희망을 등록한 박 동문은 육신까지 남김없이 세상에 주고 갈 생각이다. 수많은 환자에게 심장을 이식하면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장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2000년 장기이식법이 만들어질 때, 법적 사망의 기준은 심장사지만 장기이식에 한해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해 달라고 적극 피력해 장기이식이 활성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휴대폰 안에는 지금까지 그에게 진료받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연락처가 빼곡했다. 심장질환 특성상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더라도 언제든 응급이 발생할 수 있다. 환자가 위급할 때 언제든 자신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연락망을 만들어 놓았다. 개인 생활과 시간 일부를 늘 환자들 몫으로 떼어놓은 셈이다. 




박국양 동문(오른쪽)과 부인 조태례 푸른들 대표·가천대 교수.   


떠나는 기자를 향해 “너무 잘 한 것처럼 쓰지 말아달라”고, 부부는 신신당부를 했다. 푸른들이 아직 자리 잡지 않았다는 핑계로 이제껏 도와달란 목소리 한 번 크게 낸 적 없다. 인터뷰에 응한 것은 장기려 박사의 마음가짐을 닮아가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학생들에게 늘 얘기합니다. 돈 많이 버는 의사 나오고, 국시 합격률 높다고 좋은 의대가 아니라고요. 학교의 품격을 올려주는 건 서울의대 장기려 박사, 인제의대 이태석 신부와 같은 존재입니다. 서울대 출신이 얼마나 사회에 봉사했고 존경을 받느냐에 따라 서울대의 품격이 결정됩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