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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호 2021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전 세계 성당 50곳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건 사제

파리 도미니크 수도회 김인중 신부


전 세계 성당 50곳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건 사제

파리 도미니크 수도회
김인중 신부





프랑스 혁명 뒤 첫 노트르담전시

11월 사르트르 성당서 작품 선봬

작품 모아 펴낸 ‘그림 시편’ 화제
종교간 화합에 유용하게 쓰이길



대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명성이 높은 곳 프랑스 사르트르. 오는 11월 21일, 그곳의 스테인드글라스 미술관에서 한국인 신부의 작품이 전시된다.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사제이자 화가인 김인중(회화59-63) 동문이 주인공. 스위스 일간지 ‘르 마땡(Le Matin)’이 선정한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이기도 한 그가 스테인드글라스뿐 아니라 그림, 도자기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훈 훈장을 받은 김 동문은 2016년 동양인으로선 처음으로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 회원에 추대됐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와 호주 등 10여 개국에서 전시되고 있다. 김 동문을 서면으로 인터뷰하는 동안 그의 여동생 김계중 전 대전대 교수가 중간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모교 미대 재학시절은 물론 유학 초기에도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제작은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샤랑뜨 출신으로 1866년 조선에서 순교한 피에르 오메트르 성인이 단초가 됐어요. 그를 기려 새롭게 건립된 성당에서 한국인 작가를 원했거든요. 이를 계기로 1989년부터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메트르 성인은 2020년 준공된 천주교 수원교구 신봉동성당의 수호성인으로 모셔졌는데, 그곳의 스테인드글라스 또한 제가 작업했어요. 묘한 인연이죠.”

기존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납선을 이용해 유리 조각을 이어가는 데 반해, 김 동문은 원판의 유리 위를 동양 붓으로 자유롭게 오가며 영적 세계를 표현한다. 준비 중인 개인전에선 지난 10여 년 동안 제작해 세계 곳곳에 설치된 작품들을 다양하게 전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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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품인들 소중하지 않겠냐마는 차드공화국 소재 ‘평화의 성모 대성당’에 설치될 90여 점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더 특별하다. 무슬림인 반, 기독교인 반인 그 나라에서 누구나 찾아와 기도할 수 있는 성소(聖所)를 마련한다는 데 뜻을 두었기 때문. 전시회에선 그중 일부를 관람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기세를 떨칠 무렵인 지난해 3월엔 국내에서 ‘빛의 꿈-김인중 화업 60년 회고전’을 열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조심스러운 상황에서도 전시장을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영원불멸의 가치임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세평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유로운 창작의 길, 나만의 길을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안정됨과 익숙함을 경계하며 늘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감행했죠. 제 노력이 통했는지 과분한 평가를 받고 있어요. 프랑스 혁명 이후 어떠한 전시회도 열리지 않았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품을 거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외에도 1999년 에브리 성당, 2008년 생 줄리앙 바실리카 성당, 2019년 브뤼셀 바질리카 성당 등 전 세계 50여 곳에 그의 작품이 걸려있다. 김 동문은 또 2020년 회고전과 함께 ‘그림 시편’을 국내에 출간했다. 2019년 프랑스에서 펴낸 기도 책을 한국어판으로 옮긴 것. 20여 년에 걸쳐 완성된 그림 시편은 전시장을 찾은 예닐곱 명의 유대인들이 그의 손을 꼭 잡고 건넨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당신 그림 앞에선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벽을 허물었으니까요.’

자유로운 덧칠을 특징으로 하는 유화이면서도 물에 풀어 단숨에 그린 듯 맑은 색감을 띠는 김 동문의 작품은 겉으로 드러내는 성화가 아닌 비구상 형태로써 종교와 국경을 뛰어넘는 범세계적인 비전을 보여준다.

“형상이나 기술로 허황한 세상을 보이는 오늘날, 비가시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예언자적이어야 하며 시공을 초월해 모든 영혼을 달래는 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이 저자인 제 그림 시편은 전 인류가 공동으로 기도할 수 있는 책으로, 기회가 닿으면 교황께도 전달해 타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화합의 의미로 유용하게 쓰이길 희망합니다.”




김인중 신부가 지난해 출간한 '그림 시편' 표지 



1940년 태어나 5세에 해방, 10세에 한국전쟁을 겪은 그는 모교 ROTC 1기로 임관해 최전방에서 복무했다. 전역 후 신학생을 양성하는 성신중고등학교에 미술 교사로 부임했는데 대학로를 걷던 어느 날 ‘총칼의 군대에서 하느님의 군대로 전향하라’는 소명을 듣고 유럽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김 동문은 넓은 세계로 떠나면서 사제가 되는 동시에 그림을 계속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신학을 공부했던 1970년대 초에는 통신 수단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 몰래 수도 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죠. 행여 제 소식이 전해질까 가능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지냈습니다. 전형적인 유교 집안의 장남이 사제가 되어 돌아왔는데,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저를 이해하고 받아주셨어요. 제 영향으로 우리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척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가 됐죠. 부모님께 영세를 드리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자녀한테서 세례를 받는 일은 매우 드물어서 유럽에서도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60년 넘게 계속되는 김 동문의 그림 여정엔 모교가 끼친 영향도 상당하다.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커피 한잔 사 마실 여유는커녕 끼니도 못 채워 굶는 날이 더 많았던 서울대 재학시절, 송병돈 교수는 아버지 같은 스승이었다. 예술가답게 순수했고 테크닉보단 화가로서의 자질을 강조한 송 교수를 김 동문은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고. 김세중(조소50졸) 교수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김 동문을 아우처럼 보살펴줬다.

중학생 때 서예를 함께 했던 윤석철(물리58-63) 모교 경영대 명예교수, 힘들 때마다 격려해준 이종상(회화59-63) 모교 미대 명예교수, 유학 시절 친분을 맺어 인정을 베풀어 준 어수철(치의학50-56) 어치과 원장, 국내 전시 때마다 홍보에 힘써 준 김대중(행정58-63) 전 조선일보 주필 등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남동생이자 예술적 동료인 건축가 김억중(건축74-78) 전 한남대 교수도 서울대 동문이다.

“서울대 배지에 새겨진 ‘Veritas, Lux mea’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좌우명입니다. 진리는 나의 빛이라 함은 곧 ‘하느님은 나의 빛’이란 뜻이죠. 토마스 아퀴나스는 빛은 장소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골고루 비춘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작품을 통해 빛을 여과시키고 싶습니다. 빛의 힘을 입어 어둠을 쫓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어둠인 지옥은 사랑의 부재이고, 천국은 죽어서 맞이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사랑할 때 이미 시작되는 곳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을 말하기 전, 또는 종교나 예술을 언급하기 전 우리는 최소한 건전한 상식인이 돼야 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림 시편 문의 010-5659-0913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