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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2020년 7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외롭게 시 쓰던 시절 보상받은 기분”

인문대 문학상 수상 심보선 (사회88-95) 시인·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외롭게 시 쓰던 시절 보상받은 기분”

인문대 문학상 수상 심보선 (사회88-95) 시인·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재학 중 등단, 사회학 박사학위 받아

8만부 판매 첫 시집 등 대중·평단 호평



서울대 인문대 문학상은 지난해 제정된 모교의 유일한 문학상이다. 인문대 출신이 필수 전제는 아니다. 제2회 인문대 문학상은 사회대를 졸업한 시인 심보선(사회88-95) 동문에게 주어졌다. 2017년 발표한 세 번째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가 선정작이다.

심보선 동문은 시를 쓰면서 사회학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으로 등단한 후 모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등단 14년 만에 낸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가 지금까지 8만부 넘게 팔렸다. ‘명석하게 진단하고 논증하는 좌뇌, 섬세하게 공감하고 연대하는 우뇌의 좌우합작’.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표현한 그의 글이다. 6월 30일 심 동문이 재직하는 연세대에서 만나 그 ‘좌우합작’이 시작된 대학 시절 얘기를 들었다.

“주변에 시 쓰는 친구들이 없었어요. 그래도 시를 쓰기에 학교보다 더 적당한 곳을 찾기 어려웠죠. 혼자 좋아서 빈 강의실에서, 도서관 빈 구석에서 시를 썼어요. 학창시절 아쉬움과 외로움을 이번 상으로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스스로 “시 쓰는 사람이 될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는 그다. 문예반 활동이나 백일장 수상 같은 ‘전조’도 없었다. 문학평론가 고 김윤식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첫 수업에 너무 무서워 수강철회한” 기억뿐이다.

늘 배운 적도 없는 시를 쓸 수 있을지 의문을 품어서일까, 그에게 시를 쓴다는 건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행위다. “요즘도 카페에서 시를 쓰면 사람들이 모니터를 볼 수 없는 쪽에서 써요. 비밀스럽다기보단 쑥스러운 거죠.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말하길 시인은 시인이란 말 대신 ‘시 쓰는 사람’,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대요. 시인의 지위가 높은 시대도 아니니까, 현대 시인들은 다 쑥스러워 하는 것 같아요.”

시를 쓰던 강의실 바깥은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다. “의심이 많고 주저하는 사람이라” 선뜻 동참하지 못했지만 죄의식이 있었다. 쓰고 있던 시도 민중시나 사회 참여와 거리가 멀었다. “집회가 있던 날이에요. 모르는 사람이 강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학형, 동참하자’고 하더군요.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나는 시 나부랭이나 쓰고 있나?’ 하는 죄책감이었죠. 타협안을 찾다가 학보사 기자에 지원해 떨어지고, 사진기자로 붙어서 데모 현장을 많이 다녔어요. 암실에 혼자 있는 게 좋았죠. 과 사무실에서 사진전을 한 기억도 나네요.”

그의 지도교수였던 박명규 사회학과 교수는 문학상 축사에서 “심보선의 문학함은 어떤 의미로 사회학함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시인 심보선과 사회학자 심보선은 서로의 꿈을 넘나들며 흔적을 남겼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이 사망한 자리에 써 붙였던 ‘갈색 가방이 있던 역’ 등의 시가 그 흔적이다. 연구자로서는 꾸준히 예술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을 파고들었고, 요즘은 예술가가 창작하며 먹고 사는 일과 예술교육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로 부임한 그는 ‘대학은 예술가의 무덤’이라는 말을 종종 언급했다. 연구 주제가 교수 활동과 창작을 병행하는 자신의 고민과 닿아 있다.

등단 24년차, ‘이제 좀 알 법한’ 시점에 그는 ‘오늘은 잘 모르겠어’라는 시를 발표했다. ‘앎’을 전제로 하는 사회학 연구와 반대로 시는 모든 것을 ‘모름’으로 바꿔놓아 흥미로웠다. ‘지지난밤에는 사랑을 나눴고/ 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 어제까지 나는 인간이 확실했었으나// 오늘은 잘 모르겠어’라는 시구처럼, 그는 모르겠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코로나19를 겪는 오늘의 사회가 훗날 그의 시에 어떻게 담길지 물었을 때 “좋아하는 소설인 ‘콜레라 시대의 사랑’처럼 질병이 문학에 분명히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도 “지금의 경험이 어떻게 내 시가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항상 사람들이 제게 물어봐요. ‘시는 무엇이냐, 어떻게 쓰는 거냐’. 아직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시가 뭔지도, 사회학이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사람살이와 세상살이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는 업이라고 막연히 얘기하지만 아직 모르겠고,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작업합니다. 이번 상은 ‘모르는 사람’한테 주는 상이라 생각하고, ‘몰라도 괜찮고, 앞으로 더 알기 위해서 노력해라, 하지만 끝내 몰라도 할 수 없다.’ 이런 인정이자 엄중한 정언이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심 동문은 ‘슬픔이 없는 십오초’, ‘눈앞에 없는 사람’, ‘오늘은 잘 모르겠어’ 등 세 권의 시집을 냈다. 낭독시집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예술비평집 ‘그을린 예술’을 비롯해 최근 낸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등도 시집 못지않게 두루 사랑받았다. 사회학 분야 책을 쓰고 번역하기도 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