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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호 2019년 5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문학적 꼰대란 소리 듣지 않겠다” 제1회 서울대 인문대학 문학상 최일남 소설가

국내 최고령 소설 창작집 ‘국화 밑에서’


“문학적 꼰대란 소리 듣지 않겠다”

서울대 인문대학 문학상 첫 수상자 최일남 동문


최일남 소설가

국문52-57


소설가 최일남(국문52-57) 동문이 2017년 86세에 쓴 작품 ‘국화 밑에서(문학과지성사)’로 제1회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문학상을 받았다. 상금은 1,000만원. 4월 26일 관악캠퍼스 두산인문관에서 열린 문학상 수여식에서 최 동문은 “나이만 앞세워 으스댈 게 없다. 문학적 꼰대란 소리는 듣지 않도록 애쓸 작정”이라며 짧고 굵게 수상소감을 말했다. 행사 후 어렵게 인터뷰했다. 최 동문은 귀가 어두워져서 대화가 어렵고 딱히 할 말도 없다고 했다.


-얼마 전 전화 통화 때 여기서 뵙자고 하셔서 왔습니다.
“무슨 신문이라고 했지?”

-서울대총동창신문입니다.
“내가 낼 돈도 없는데. 뭐 때문에 나를 만나고 싶은 거야?”

-서울대 인문대학 문학상 첫 수상자라서요.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야. 수상자라서 하는 인터뷰라면 재미가 없지. 나한테 뭐를 뽑아 먹을까를 생각하고 왔어야지. 그래 뭘 물어보려고?”

-먼저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동숭동 대학 사무실 앞에 서 있는 마로니에와 지금쯤 만발했을 라일락을 찾던 새내기 그 시절, 문학적 정서가 여간 아니었지. 시골 촌놈에게 마로니에, 라일락 그 이름만으로 감동이 있었어. 그런 정서를 부추기게 한 게 문학이고. 서울대의 국문학이 현대문학에 경홀한 면이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 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요즘도 글을 쓰세요?
“대산문화재단에 옛사람들 이야기 좀 쓰고 있어. 분량이 작은 글이야.”

-소설 집필 계획 있으세요?
“없지. 옛날에 써 놓은 소설은 있는데, 골치가 아파서.”

-선생님 기자 시절 좋은 인터뷰를 많이 쓰셨지요.
“95명 문화계 인사들을 인터뷰 해 세 권의 책으로 나오기도 했지. 책에 수록 안 된 인물 중에 꽃신 작가 김용익과 천경자 선생이 있는데. 그 인터뷰가 지금 봐도 참 좋아. 천경자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글도 잘 썼어. 수필가야. 나 그 사람 존경해. 지금 읽어도 천경자의 미술에 대한 생각, 아까워. 그 사람들 만나 배운 게 많아.”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스승이 있으세요.
“그건 써야 하잖아. 말로 하기엔 너무 길어. 나는 언론인이었으니까 천관우 선생님 존경했고 일석(이희승)은 주례를 서신 분이야. 내가 키가 작은데 이희승 선생은 나보다 작다고. 박완서 씨가 이희승 선생 장례식장에 와서 들려준 이야기인데, 그 양반이 외국에 있을 때 양복을 맞췄는데 양복값을 다 받더래. 나는 절반밖에 안 들 텐데, 했더라는 거야. 재미있지? 이희승 선생 동기 중에 이숭녕 씨가 있어. 그분이 이희승 선생에게 ‘자네는 인터뷰할 때 앉아서 하나 서서 하나… (똑같아)’ 그러고 놀렸대.”

-후학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러니저러니 꼰대 같은 소리 하기 싫어. 다들 알아서 잘 사는데.”

-휴대폰 안 쓰는 이유가 있으세요.
“가끔 불편할 때가 있긴 한데, 집에 주로 있으니까 필요가 없어.”




최일남 동문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활동해온 대한민국 대표적인 원로 언론인이자 소설가다. 1932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했다. 전주사범학교를 거쳐 1952년 모교 국문과에 입학했다. 1953년 ‘문예’에 ‘쑥 이야기’, 1956년 ‘현대문학’에 ‘파양’이 추천돼 문단에 데뷔했다. 1975년 ‘월탄문학상’을 수상했고, 1979년 ‘소설문학상’을, 1981년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1980년 정치적인 문제로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이후 1997년 언론계에 대한 통렬한 고백을 담은 ‘만년필과 파피루스’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1986년에는 ‘흐르는 북’으로 ‘제10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8년에는 한겨레신문 논설고문이 되었고, 그해 ‘가톨릭언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인촌문학상’을 수상했다. 1999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고문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역임했고, 2001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작품집으로는 ‘서울 사람들’(1975), ‘타령’(1977), ‘흔들리는 성’(1977), ‘홰치는 소리’(1981), ‘거룩한 응달’(1982), ‘누님의 겨울’(1984), ‘그리고 흔들리는 배’(1984), ‘틈입자’(1987), ‘히틀러나 진달래’(1991), ‘하얀 손’(1994), ‘아주 느린 시간’(2000), ‘석류’(2004) 등이 있다.


제1회 서울대 인문대학 문학상 시상식 



2017년 펴낸 ‘국화 밑에서’
국내 최고령 소설 창작집
김병익 비평가 “문학상 이름
서울대 아우르는 명칭으로”


최일남 동문(왼쪽에서 다섯번째)이 최정호(세번째), 김중배(네번째), 김병익(여섯번째), 김재홍(마지막) 동문 등 언론계 지인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연세대의 윤동주 문학상, 고려대의 지훈 문학상을 생각할 때 서울대는 왜 문학상이 없나 늘 아쉬웠는데 이렇게 제정돼 참 반갑고 첫 번째 수상자가 최일남 선생이라 더욱 기쁘다.”

김병익(정치57-61)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이 지난 4월 26일 관악캠퍼스 두산인문관에서 열린 제1회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해 “서울대는 타 대학 못지않은 문학적인 업적과 전통을 갖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병익 동문은 축사를 통해 서울대의 문학적 기여를 아래와 같이 시기별로 설명하기도 했다.

“식민지 시대 우리 문학 지식인들이 고민에 빠졌을 때 유진오 선생 등이 지식인의 고뇌를 대변하는 문학을 했고 전후 최일남 선생을 비롯해 오상헌 이어령 유종호 선생 등은 당대 아프레게르의 고뇌와 방황의 길잡이로 우리 문학의 방향을 잡아주셨다. 1965년 전후에서 김승옥, 이청준, 김 현, 염무웅 선생 등이 오늘의 현대문학의 틀을 만드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70년대에는 이성복, 이인성, 최광석, 김정한, 정과리, 성민엽 선생 등이 등장해 한국 문학의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 한국 문학이라고 말할 때의 그 자리는 바로 그런 분들에 의해 지어지고 그런 의미에서 늦었지만 인문대 문학상의 의미를 크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 동문은 또 ‘인문대학 문학상’의 명칭이 인문대학 출신만 주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 것인지를 묻고 그게 아니라면 서울대를 포괄하는 이름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인문대 출신은 아니지만 최인훈 선생도 있고 젊은 비평가 김홍준 등 서울대 출신의 훌륭한 문학인이 많다”며 “가령 관악문학상도 좋고 서울대에서 후학을 양성한 한글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을 기리는 이름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행사 사회를 본 유요한(종교93-99) 인문대학 기획부학장은 “서울대 인문대학 문학상은 인문대 졸업생을 넘어 서울대에서 잠깐 공부했고 재직했던 분도 대상자”라며 “김병익 선생님의 조언을 인문대학 교수님들과 함께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 상의 제정을 주도한 방민호(국문84-89)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국 문학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문학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상을 만들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서울대 인문대학 문학상은 경력에 주는 공로상이 아니다. 시, 소설, 비평 등 장르 불문하고 지난 5년 동안 문학성 높은 작품을 쓴 이에게 시상이 아니라 수여하는 형태이며 작품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선정한다.
이날 행사에는 문학계, 언론계에서 여러 동문이 참석해 최일남 동문의 수상을 축하했다. 언론인으로 최정호(철학52-57) 동아일보 객원대기자, 김중배 언론인, 김재홍(정치69-76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서울디지털대 총장, 문학계에서는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고문,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정홍수(국문82-88) 강출판사 대표, 권여선(국문83-88) 작가, 권성우(국문82-86) 숙명여대 교수, 서영채(국문81-88) 모교 아시아문명학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재영(영문83-87) 인문대학 학장은 “이 상을 만들면서 혹시나 서울대 잔치로만 비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인들이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는 “최일남 선생은 개인적으로 80년대 학창시절 큰 용기와 희망을 준 분”이라며 “엄혹한 시대 남들이 감히 언설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동아일보를 통해 하시면서 젊은이 특히 저 같은 사람에게 큰 용기를 주셨다”고 말했다. 또 “태양력 상의 나이가 있음에도 2017년에 ‘국화 밑에서’를 발표하신 것을 보고 물리적인 시간보다 정신적인 나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보여주셨다”고 축사했다.

김병익 비평가는 “이번 수상작 ‘국화 밑에서’는 우리나라 최고령 소설 창작집으로 생각된다”며 “연세가 이렇게 많으신데도 창작 활동을 하시고 그것도 그냥 쓰는 게 아니라 후배, 제자, 일반 독자들이 실감 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쓴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김 동문은 “1953년 등단 작품이 ‘쑥 이야기’로 가장 전형적인 시골 농촌의 가난, 자연 그 속에서 사는 한국인의 모습을 그렸다”며 “그런 작품의 태도는 지금까지 60여 년 이어져 오며 지금 한국인들의 삶의 모습, 세태를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평했다. 또 “소설에 동원된 언어가 우리도 잊어버린 옛날 말이 많다. 최 선생의 언어 계승력은 상당히 높이 평가해야한다”고 말했다.

김병익 동문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시절 문화부장으로 모셨던 최 동문과 개인적 친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저도 작지만 최 선생님이 더 작아서 젊어 보일지 모르지만 저보다 8년 연상이고 언론계 경력도 두 배 앞서는 선배”라며 “제가 기자로 배우고 성장한 것은 최일남 선생 덕분이다. 스승처럼 때론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수상작 ‘국화 밑에서’ 해설을 쓴 권성우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소설 작품 읽기가 인격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뜻깊은 인문적 체험이라면 그 과정에 가장 어울리는 작가가 최일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일남 소설 읽기는 198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흐르는 북’에서 시작됐는데 그 소설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대한 곡진한 이해와 편견 없는 열린 정신을 느꼈다”며 “이번 수상작 국화 밑에서, 최일남 문학은 이제 대가의 세계 인식이라 부를 수 있을 한층 깊고 감동적인 경지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어 “노년의 실존에 대한 진솔한 응시, 창의적인 언어 감각, 대화에 스며든 인문적 향기와 지성은 ‘국화 밑에서’를 관류하는 최일남표 소설미학”이라고 정의했다.

김남주 기자


▽''버려진 노년에 바친 헌사' '국화 밑에서' 수상작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