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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호 2016년 3월] 문화

오른손이 아픈 날

김광규(독문60-64) 시인


오른손이 아픈 날


김광규(독문60-64) 시인


밤새도록 오른손이 아파서
엄지손가락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서
설 상 차리는 데 오래 걸렸어요
섣달그믐날 시작해서
설날 오후에 떡국을 올리게 되었으니
한 해가 걸렸네요
엄마 그래도 괜찮지?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시달려
이제는 손까지 못쓰게 된 노모가
외할머니 차례 상에 술잔 올리며
혼자서 중얼거리네)
눈물은 이미 말라버렸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 들려와
가슴 막히도록 슬퍼지는 때
오늘은 늙은 딸의 설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였지





*2016년 문학과지성사 첫 번째 시집으로 시력 40년을 맞이한 김광규 동문의 열한 번째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이 출간됐습니다. 김 동문은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이래, 맑은 눈으로 현실을 관찰하여 성찰하고 명료하게 다듬어내 시에 투영해왔습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일상에서 진리를 추출해,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우러나는 김 동문 특유의 관조가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