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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호 2018년 12월] 뉴스 기획

우산육영회 50주년 기념 학술회의, 지식혁명과 한국의 미래

김상헌 네이버 고문 등 6명 다양한 분야서 통찰 보여줘



우산육영회 50주년 학술회의에서 발표자와 모교 대학원생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명규 모교 사회학과 교수, 김빛내리 모교 자연대 석좌교수, 대학원생 조민서 한경희씨, 강상진 강진호 모교 철학과 교수,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도경수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 김상헌 네이버 경영고문.


기술발전과 사회불안 뒤섞인 혼돈의 시대…불신 잠재울 리더십 절실


우산(又山)육영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11월 16일 호암교수회관 삼성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됐다. 1부 학술회의, 2부 동문의 밤으로 구성된 이날 행사에서 김상헌(사법82-86) 네이버 경영고문, 강진호(철학89-95) 모교 철학과 교수, 김승환(물리77-81)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김빛내리(미생물88-92) 모교 자연대 석좌교수, 도경수(심리74-78)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 박명규(사회74-78) 모교 사회학과 교수 등이 연단에 올라 ‘지식혁명과 한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김상헌 동문은 대한민국 대표 IT기업인 네이버를 18년 동안 이끌어온 경험에 기반해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짚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사회 곳곳에서 범람하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동문은 그러한 변화의 양상으로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초산업을 꼽았다. 스마트폰 등 기계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긴밀히 연결되는 것을 넘어 사물 간에도 센서를 부착해 서로 교신하는 상태를 초연결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초연결된 세상에서 수집된 수많은 정보들이 머신러닝을 통해 패턴을 찾아내고 알고리즘으로 구현돼 결국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했다. 산업적 측면에선 산업과 산업이 초융합돼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사업 즉 초산업이 등장할 것이고 전망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자율주행차, 원격의료는 물론 계산원 없이 자동 결제되는 슈퍼마켓, 로봇이 요리하는 레스토랑 등이 해외에서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로봇 요리는 세밀하고 정확한 레시피를 통해 스타 셰프들의 음식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제공함으로써 ‘고급 음식의 민주화’를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동문은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술과 산업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돼 인류의 일원으로서 설레고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중국에 비해 준비가 너무 안 돼 있어 안타깝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심각한 주제의 심포지엄에 참석한 정치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아이러니와 기업의 일방적 요구에 따른 규제 개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리더십의 등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리더십이 학계를 중심으로 발휘될 것이라 기대한다면서 “서울대 동문들이 그 희망이 돼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상헌 네이버 경영고문이 4차 산업혁명과 우리나라의 과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강진호 동문은 21세기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철학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동문은 답을 찾을 수 없는 불분명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철학이 비생산적이고 부질없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철학적 문제들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탐구가 극한에 다다랐을 때 맞닥뜨리는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들”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비록 답을 찾진 못하더라도 어떤 통찰력 있는 생각을 발전시키면 막대한 파급효과를 끼친다고.


강 동문은 그 예로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레게를 꼽았다. 그는 수가 일종의 논리적 대상이며 수학은 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논리주의’를 제시했다. 강 동문은 “논리주의는 비록 실패했지만 프레게가 발전시킨 논리학은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토대 중 하나를 이뤘다”면서 “최근 논의가 무성한 인공지능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프레게와 같은 학자들의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강 동문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룬 것처럼 철학에 있어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승환 동문은 난류의 시작과 비예측성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면서 발전한 카오스연구를 소개하면서 “비예측성의 이면에 존재하는 놀라운 질서구조가 밝혀졌다”고 말했다. 물리·화학·생물학 등 자연계를 넘어 경제·경영·사회학의 시스템에서도 카오스와 비선형동역학(nonlinear dynamics) 연구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 것. 김 동문은 “자연과 실세계엔 이보다 훨씬 큰 자유도를 보이는 복잡계들이 존재한다”며 “프랙탈 기하학 등 복잡계의 물리는 다양한 비선형 복잡계를 분석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학제간 뇌연구자로서 “뇌와 의식현상 등에서 나타나는 집단적 패턴형성과 복잡성의 발현을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빛내리 동문은 유전정보 전달, 단백질 및 DNA 합성 억제, 효소로서의 촉매 작용 등 모든 생명체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RNA 연구를 통해 생명현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은 물론 약물 및 백신 등 의료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식혁명과 한국의 미래 주제 50주년 학술회의

김상헌 네이버 고문 등 6명 다양한 통찰 보여줘


김 동문은 “저분자화합물 또는 단백질로 구성되는 기존 약물은 제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반면 마이크로RNA는 분해효소를 피할 수 있는 화학적 변용만 거치면 쉽고 빠르게 약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의 백신은 단백질 또는 바이러스 자체를 불활성화시킨 다음 면역작용을 높이는 물질과 섞어서 만드는 데 비해 RNA백신은 면역세포 안에 들어가 인체로 하여금 스스로 항원을 만들도록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RNA백신은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만 있으면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 또한 기존 백신보다 짧아 메르스 같은 갑

작스런 전염병에 대처하는 데도 수월하다고.


김 동문은 “벽돌 만한 휴대폰을 들고 다녔던 때가 그리 먼 옛날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손바닥 만한 휴대폰으로 전화는 물론 인터넷 검색, 동영상 시청까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며 “머지않아 유전자와 RNA가 우리의 일상에 친숙해질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도경수 동문은 ‘인간의 정보처리: 2중과정 이론’에 대해 소개했다. 과거엔 허버트 시몬이 주창한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에 대해 설명했지만 최근엔 노력의 필요 여부에 따라 직관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로 나눠 인간의 정보처리 과정을 설명하는 2중과정 이론이 지지를 받고 있다고. 도 동문은 “선택환경을 고안하는 ‘넛지’와 분석적 사고 훈련이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명규 동문은 한국의 미래와 관련해 “사회적 가치와 한반도 평화가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는 경제성장 중심 발전모델의 한계에 대한 성찰로부터 대두된 개념으로 지속가능성, 삶의 질, 신뢰와 협력, 공동체의 가치 등을 담은 개념이다. 이는 과학기술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양극화와 사회불안, 불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살핀 후 유엔에서 제시한 새로운 발전목표다. 박 동문은 “IT산업의 놀라운 발전과 젊은 세대의 좌절이 공존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정책적·제도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 70년 동안의 한반도 대립상황은 한국사회 안에서 성장과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모습과 닮았다”며 “남북이 겉으론 협력과 통일을 부르짖으면서도 이면에선 대립과 갈등이 첨예했었다”고 짚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한반도 평화’라는 화두엔 새로운 변화가 여실한데 이는 모순적·적대적 분단구조를 해체해 새로운 연결·화해·신뢰·발전의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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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육영회 동문회


류우익·권오곤·김빛내리, 고 우산 조차임 여사의 장학생들


50년간 500여 대학원생 지원

44명이 모교 교수로 활동

수혜자들 장학금 모금 선순환


인권변호사로 이름이 높은 고 조영래(법학65-69) 변호사, 류우익(지리67-71) 전 대통령실장, 동양인 최초 독일 괴테 금메달 수상자 전영애(독문73졸) 모교 명예교수, 권오곤(법학72-76 본회 부회장) 한국법학원장, 박찬욱(정치72-76) 모교 총장직무대리 교육부총장, 김상헌(사법82-86) 네이버 경영고문, ‘생명과학계의 보석’이라 평가 받는 김빛내리(미생물88-92) 모교 교수.


나이·성별·직업·전공 모두 다르지만 이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교 대학원을 졸업했다는 것, 그리고 우산(又山)육영회 장학생이었다는 것.


지난 50년 동안 약 500여 명의 모교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온 우산육영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69년 모교 대학원 인문사회계열 장학생 10명을 선발하면서 시작된 우산육영회는 1980년부턴 자연과학계열 대학원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수여했다. 산업화에 필요한 이공계 인재들에게 국가적 지원이 집중됐던 창립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우산육영회는 인문사회계열 분야의 우수한 인재들이 계속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했다.


순수학문 분야를 집중 지원해 장학생 중 44명이 모교 교수가 됐고, 이들을 포함해 배출한 대학교수·전문연구원·법조인 등이 300명에 육박한다. 제대로 된 장학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던 1960년대 말, 매월 생활비를 지급하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운영됐으며 다른 어느 장학금보다 많은 액수를 지급했다.


수혜를 받은 장학생들이 뭉쳐 ‘우산동문회’를 결성, 장학기금을 모아 재단에 전달하는 선순환 또한 활발하다. 1988년 설립 2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열어 장학기금을 모금했던 것을 시작으로 1998년 설립 30주년과 2008년 설립 40주년 때도 기념행사와 장학기금 모금을 계속했다. 이번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서도 1억원 가까운 장학기금을 모았고 재단에 전달할 예정이다.


우산육영회는 고 우산 조차임 여사의 유언에 따라 1968년 설립됐다. 1905년 경북 경산에서 출생한 고인은 30대 젊은 나이에 홀로돼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서울로 상경,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하루 한두 끼로 연명하다 노점상 주인의 후원으로 청계천변 우미관 옆에 국밥집을 개점했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또 한 번 시련을 겪었으나 종로통에 다시 한식당을 개업해 모은 밑천으로 인왕산 자락에 있는 대저택을 매입, 최고급 전통요리집 ‘청운각’을 차렸다.


많은 난관 끝에 개점한 청운각은 1950년대 후반, 당시 정부의 고위 관리와 공기업, 언론기관 및 유수의 대기업 임원들이 찾는 모임장소가 됐고 한국의 근대화와 함께 국책사업이 다변화되면서 외국인 귀빈을 융숭히 대접할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을 떨쳤다. 한국요식업계의 대부로 우뚝 선 조차임 여사는 양자 이두정 남양저축은행 대표를 비롯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이 힘든 고학생들을 도왔으며, 장학사업과 학술사업을 펼쳐 국가발전에 기여하고자 전 재산을 털어 우산육영회를 설립했다.


우산육영회 1기 장학생 중 한 명인 차흥봉(사회62-69)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당시 장학금이 월 2만원, 연 24만원이었는데 모교 대학원 등록금이 한 학기 7,000원, 하숙비가 한 달에 7,000원이었다”고 말했다. 한 해 장학금으로 두 학기 등록금과 열두 달 하숙비를 내고도 14만원 넘게 남는 셈이다.


정인섭(법학73-77 모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대학원동창회장) 우산동문회 회장은 “국내에 장학재단이 1,000개도 더 있겠지만 우산 장학금을 받았던 장학생들은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며 우산동문회 회원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또 “우산 장학금이 없었다면 많은 동문 졸업생들이 대학원을 제대로 다닐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하면서 감사의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