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호 2018년 2월] 기고 에세이
작가의 정원 <2> 헤세가 거닐던 정원, 정원 가꾸기는 일상 속의 철학
문현주 가든 디자이너와 함께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정원 여행
<2> 정원 가꾸기는 일상 속의 철학
헤세가 거닐던 정원
글·사진 문현주(농가정74-78) 가든 디자이너
독일과 스위스의 접경지대에 보덴 호수가 있다. 이 호숫가에 있는 가이엔호펜(Gaienhofen) 마을에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가 살던 집과 정원이 있다. 그 집 앞의 도로 이름도 대문호를 기억할 수 있게 헤르만 헤세 길(Hermann-Hesse Weg)이다.
지금 이곳의 주인은 에버바인(Eberwein) 부부이다. 그들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 주택과 정원을 구입해 2003년 이곳으로 이사했다. 지금은 독일 기념물 보호 재단에 등록돼 있다. 생물학자인 부인 에바는 2016년 -잊혀지는 세계의 재발견-이란 부제로 정원을 옛 모습대로 보수하고 유지하는 과정을 ‘헤르만 헤세의 정원’이란 책으로 출판했다.
정원과 집은 정해진 날이나 신청에 의해 방문할 수 있다. 내가 방문한 날은 12시에 오픈인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뒷마당에 의자가 20여 개 놓여 있다. 정원 투어를 하는 단체 손님인 듯하다. 이를 진행하는 해설사가 있고, 그 앞에 10여 명이 무언가를 적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주인은 정원 투어 팀의 강의를 방해하지 말자며 우리를 건물 옆쪽으로 안내한다. 그가 초입에 있는 100년이 넘은 너도밤나무를 설명하려는데, 고슴도치가 길을 막는다. 그는 잠시 실례한다며 두 손으로 고슴도치를 조심스럽게 잡아서 화단 구석에 넣어 준다. 그곳에 고슴도치의 집이 있고 얼마 전, 새끼를 낳아 어린 고슴도치도 몇 마리 있다고 한다.
건물을 돌아가다 건물 모퉁이에 길게 붙어 있는 빗물 홈통이 눈에 뜨인다. 그 홈통 중간에는 열고 닫을 수 있는 간단한 장치가 붙어 있다. 장치를 닫으면 빗물이 곧장 빗물받이로 흘러 내려가고 장치를 열면 그 옆에 있는 큰 물통에 빗물을 모을 수 있다. 비가 올 때, 빗물을 받아 정원에 이용하는 것이다. 물도 절약하며 친환경 수법으로 정원을 가꾸는 모습이 부럽다.
헤세는 첫 번째 부인인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Maria Bernoulli)와 결혼해 1907년 이곳으로 이사 왔다. 이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정원을 갖게 되었으며 직접 밤나무, 배나무, 채소원, 장미원이 있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는 정원수를 가꿀 뿐 아니라, 관리사의 아들과 정원에 작은 길도 내고 화단도 조성하는 진정한 정원 디자이너이자 정원사였다.
이 정원은 부지 가운데 주택이 있으며 뒤로 텃밭이 있고 앞 쪽으로 화단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로 포도밭이 경사진 기슭을 따라 호숫가까지 펼쳐진다. 정원은 잔디가 시원스럽게 깔린 것이 아니라 블루베리, 힌베리 등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유실수와 장미, 모란 등 꽃이 피는 관목들로 가득하다. 작은 쉼터 옆에는 한련화가 한창이다.
화단을 둘러보다, 정원 투어를 온 무리와 섞이게 되었다. 다행히 독일어는 귀동냥이 가능한 언어라 듣게 되었다. 정원 해설사는 헤세가 좋아한 화훼류와 그가 심은 보리수나무에 대해 설명하다가 헤세의 정원에 대한 생각도 한 구절 소개한다.
“정원 가꾸기는 자연의 위대함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위대함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나의 세계’를 가꾸어 나가는 일상 속의 철학이자 자연 속의 예술이다.” 이곳은 헤세가 가꾸었던 정원을 최대한 복원하여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인간의 내면으로 향하는 그의 작품 철학을 함께 전하고 있는 것 같다.
글·사진 문현주(농가정74-78) 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