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53호 2015년 12월] 기고 에세이

동숭로에서 : 스프링고우트와 황제펭귄

손해일(잠사67-75)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스프링고우트와 황제펭귄

손해일(잠사67-75)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아프리카 고원지대에 스프링고우트(spring goat)라는 염소 떼가 있다. 해마다 봄이면 광란의 질주 끝에 절벽에 집단투신하는 누떼들이다. 광란의 질주로 비관 자살할 만큼 염소들도 센치하게 봄을 타거나 무슨 절박한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러나 생태 전문가들의 분석은 의외였다. 건기 내내 굶주리다가 봄이면 연한 새 풀을 먼저 먹기 위해 다투어 질주하다 벌어지는 해프닝이란다. 맨 앞쪽의 염소들이 앞서 달리니 중간과 뒤쪽 무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뒤따라 광란의 질주로 이어진다. 새 풀의 향연은커녕 막상 절벽에 이르러서도 관성으로 멈추질 못하고 집단 추락할 수밖에 없다. 비록 동물들이지만 우매함의 극치다. 무리 중에 현명한 리더가 있었더라면? 질주 중에 한번이라도 속도조절을 하고 상황파악을 했더라면? 반복되는 참극을 중단시킬 역사적 반면교사가 있었더라면?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 삶의 진정한 목표가 무언지, 행복이 무언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돈과 권력과 명예를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스프링고우트는 아닐까? 그것이 집단 광기로 연결될 때의 결과는 너무도 참혹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약 6백만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독일의 만행, 1·2차 세계대전의 참상, 공산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종교분쟁과 민족갈등의 아프리카와 중동의 인종청소, 군국주의 일본의 약 30만명 남경 대학살, 고난의 행군 때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냈던 3대 세습 공산독재의 북한, 최근 IS집단의 광적 집단테러 등은 인간 스프링고우트의 광태들이다.


이와 대조적인 게 황제펭귄이다. 지구촌 617종인 펭귄중 황제펭귄’(emperor penguin)이 가장 압권이다. 황제펭귄은 남극의 겨울 혹한에 번식하는 유일한 바닷새이다. 3월이면 수컷은 1백여 km나 떨어진 내륙 깊숙이 걸어 들어가 암컷이 올 때까지 약 40일 이상 기다렸다가 짝짓기를 한다. 암컷이 낳은 한두 개의 알을 약 55일간 교대로 품는다. 수컷은 발등에 알을 얹은 채 서서 털북숭이 피부로 감싸며 2개월 이상 먹지도 않고 정성껏 돌본다. 바다로 간 암컷이 돌아오면 수컷이 교대로 한 달쯤 바다로 나가 축난 몸을 추스른다.


새끼들은 어미가 반쯤 씹어 소화시킨 물고기나 오징어를 받아먹고 자라며 솜털이 깃털로 바뀔 때까지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들은 겹겹으로 원을 지어 강강술래처럼 도는 허들링으로 영하 5060도의 혹한과 폭설을 견딘다. 바다표범과 큰도둑갈매기 등 천적에도 대처한다. 새끼 양육이 끝나면 펭귄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1백여 km의 내륙을 걸어 마침내 바다에 이르지만 모두 머뭇거릴 때 맨 처음 바다로 뛰어드는 선구자가 퍼스트펭귄이다.


스프링고우트와 황제펭귄은 둘 다 먹이사슬의 최약체이지만 너무도 대조적이다. 황제펭귄의 지극한 순애보, 헌신적 새끼사랑, 천적 대처능력, 영하 60도 혹한 속의 생존력, 퍼스트 펭귄의 용감성, 현명한 집단생활 등은 한편의 감동 드라마이다

 

필자는 얼마전 베트남과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왔다. 베트남 하롱베이가 신의 걸작품이라면,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인간의 걸작품이다. 크메르족은 약 33천만의 신 중에서 브라흐만, 비슈누, 시바를 3대 주신으로 모시는 힌두교를 받아들였고, 그 뒤엔 불교도 받아들였다. 50km 거리의 쿤룬산에서 옮겨 왔다는 거대한 사암 덩어리들의 걸작 앙코르유적은 약 4백년간 폐허로 밀림 속에 방치되었다가 1860년 프랑스 동식물학자 앙리 무어에게 처음 발견되었다. 캄보디아는 서기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앙코르왕조를 시작한 이래 태국의 아유타야왕조에 멸망한 1431년까지 약 6백여 년간 인도차이나 전역을 제패한 크메르족의 영광이었다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 09-13) 동문

 

그러나 오늘날 캄보디아의 현실은 어떠한가? 월남전의 와중에서 공산 크메르루즈 폴포트 정권은 19751979년 사이에 자국민 8백여 만명 중 약 3백만명을 학살했다. 킬링필드의 만행으로 크메르제국의 영광은 한낱 남가일몽이 되었다. 이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아이들이 학업대신 오빠! 아저씨! 미남! 원 달러!”를 구걸하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인류 역사 중 예수, 석가, 공자 등 성현은 논외로 하더라도 숱한 왕조의 흥망성쇠와 영웅들, 폭군들을 반추해 본다. 숱한 외침 속에 간난신고를 겪었던 반만년 우리 역사에도 성군과 폭군형 지도자가 교차했다. 다행히도 우리 대한민국이 오늘날 단군 이래 최대의 번영을 구가하는 것은 스프링고우트보다는 황제펭귄형 지도자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혹한 적자생존의 국제정세 속에서 빨리빨리병에 중독된 우리에게도 두 동물이 반면교사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