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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호 2025년 1월] 뉴스 기획

관악 종합화 50년② ‘고무줄 짜장면’ 간이식당, 자하연 오작교…세월은 흘러도 추억이 남았다


‘고무줄 짜장면’ 간이식당, 자하연 오작교…세월은 흘러도 추억이 남았다
 
각 단과대에 흩어져 있던 서울대인은 관악캠퍼스에서 처음으로 ‘공동의 추억’을 갖게 됐다. 모두가 모이는 만남의 장소와 추억의 식당, 문화 공간 등이 생겨났고 최대 2만명이 아크로폴리스에 모여 ‘결집의 힘’을 느끼기도 했다. 동문들의 기억에 인상적으로 남아 있을 몇몇 관악캠퍼스 시설들의 초기와 현재 모습을 비교했다. 


아크로폴리스


1979년 아크로폴리스(사진=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현재 아크로폴리스.  

중앙도서관과 본부 사이 계단과 잔디밭 일대를 가리키는 아크로폴리스 광장은 관악캠퍼스 초기부터 이름난 약속장소이자 토론 장소였다. 1975년 대학신문에선 ‘관악의 아크로폴리스’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며 이곳에서 학생 총회가 열리고 집회 때면 자유토론이 벌어지는 모습이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를 들었다. 1980년 5월 군부 퇴진을 요구하는 ‘서울대 민주화총회’에 2만명이 운집하기도 했다. 

학생 총의가 모이는 아크로폴리스의 역할은 변함 없지만 경관은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 보도블록으로 조성된 광장 바닥은 80년대 학생들이 보도블록을 깨뜨려 시위에서 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재포장됐다. 1982년엔 잔디밭에 장미 100그루가 촘촘히 식재돼 학생들에게 집회를 방해하는 ‘정치장미’란 비아냥을 들었다. 장미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철거되고, 콘크리트 바닥은 2016년 보도블록으로 바뀌었다.  


자하연


1984년 자하연(사진=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현재 자하연

행정관과 문화관 사이 조성된 300평 규모의 인공 연못은 조선 문인 자하 신 위의 이름을 딴 ‘자하연’으로 불렸다. 2003년까지 연못에 길이 15m, 높이 5m 크기 아치형 콘크리트 다리가 있었다. 투박한 생김새 탓에 잘못 지어진 다리라는 뜻의 ‘오작교(誤作橋)’로 불렸지만 학생들의 사랑도 받았다. 70∼80년대 입학 시즌엔 다리에서 ‘다이빙 신고식’이 벌어졌고, ‘커플이 함께 오작교를 걸으면 1년 안에 헤어진다’는 등의 짓궂은 속설도 깃들었다. 미관과 안전 문제를 이유로 오작교는 2003년 철거됐다. 관악 이전 초기 연못가에 식재돼 그늘을 드리우던 능수버들도 나무 상태 악화로 지난해 여름 벌목돼 조금은 허전해진 풍경이다. 



수영장 



1975년 관악풀장(사진=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현재 폐수영장 자리에 조성된 휴식공간 

1960년대 ‘관악CC’의 부대시설로 지금의 유전공학연구소 인근 산 중턱에 ‘관악 풀장’이 들어섰다. 맑은 관악산 계곡물을 채우고, 탈의실과 샤워실도 갖춘 당대 고급 시설로 골프장의 인기를 견인했다. 모교가 들어선 후 10년간은 교직원과 학생들이 곧잘 수영을 즐겼지만 1990년대 초 폐쇄된 후 방치돼 왔다. 


그러나 폐건물의 독특한 정경 덕에 ‘서울대 폐수영장’은 록 페스티벌 장소며 촬영 명소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탔다. 최근 블랙핑크, BTS가 이곳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은 후엔 케이팝 팬들의 ‘성지 순례’가 이어지기에 이른다. 한때 모교에선 수영장을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이 외진 수영장에 몸을 숨겼다는 증언도 나오면서 이곳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재조명됐다. 모교는 몇 해 전 수영장 벽면 일부를 남기고 벤치를 놓아 휴식 공간으로 정비했다.  


간이식당


1983년 사범대 간이식당(사진=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현재 사범대 간이식당 자리에 들어선 카페

초기 관악캠퍼스는 불어난 학생 수에 비해 식당 등 복지 시설이 부족해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몇 해 되지 않아 사범대학과 공과대학 인근에 간이식당이 생겼다.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에 들어서 각각 ‘사깡(사범대학 깡통식당)’과 ‘공깡(공과대학 깡통식당)’으로 불린 이곳은 주로 우동과 짜장면 등의 면류를 팔았다. 무엇보다 월등히 싼 밥값이 장점이었다. 1980년엔 라면이 150원, 짜장면이 180원이었고 짜장면값이 3000원대 초반이던 2007년에도 사깡의 짜장면은 단돈 1000원이었다. 다만 면발이 질겨 세대 불문 ‘고무줄 짜장면’의 기억은 공통인 듯하다.


‘사깡’ 자리엔 2011년 2층 건물이 재건축돼 커피숍이 영업 중이다. 사깡과 함께 사랑 받았던 ‘공깡’은 43동 앞에서 30-2동으로 자리를 옮겨 짜장면을 비롯해 짬뽕, 군만두 등 중국요리를 판매하고 있다.       

과거 사진=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