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호 2022년 10월] 뉴스 모교소식
부문별 중장기 발전계획 ②연구 / 개인 연구역량은 충분, ‘서울대표 연구’ 절실
개인 연구역량은 충분, ‘서울대표 연구’ 절실
부문별 중장기 발전계획 ②연구
“서울대학교는 국가와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가?”
모교가 최근 발표한 ‘서울대학교 중장기 발전계획(이하 발전계획)’에서 던진 질문이다. 교원 학생 직원 외부 전문가 등 85명으로 구성된 장기발전계획위원회는 △교육 △연구 △학생 지원 및 복지 △국제화 및 사회 공헌 △멀티캠퍼스 △재정 △대학 운영 체제 등의 부문별로 발전계획을 수립해 보고서에 담았다. 연구 부문에선 모교가 앞으로 ‘국가와 인류 문제 해결을 위한 선도적 연구’를 해야 한다고 내세웠다.
발전계획은 모교가 연구 분야에서 두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고 짚었다. 모교는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지만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초대형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결여됐다. 또 모교가 배출하는 연구자들이 장차 학계를 이끌어갈 ‘학문후속세대’로서 국내외 학계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는지도 의문을 제기했다.
교육은 학과가, 연구는 융복합으로
연구 부문 위원장을 맡은 차국헌(화학공학77-81) 모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서울대 연구 역량이 양적으로는 꽤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대만의 연구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계획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유수 대학은 이미 식량·기후·감염병 유행·인공지능발전 등 인류 공통의 주제를 집중 연구하고 있는데, 서울대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설명이다.
차국헌 위원장은 “서울대도 세계적인 난제에 대해 동아시아 관점에서 나름대로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는 개인 연구 역량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류 난제를 푸는 연구는 일정 규모 이상의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발전계획은 단일 연구주제·단과대학(원)을 초월하는 10여 개의 융복합 연구소와 전담 관리 기관 신설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것을 현재의 학과(부)·단과대학(원) 중심 조직과 ‘씨줄·날줄’로 엮는 공동연구 플레이그라운드를 제안했다.
발전계획이 제시한 모델에서 대학과 학과는 기존처럼 교육의 축을 맡아 교원 채용과 승진 등을 담당하고, 연구의 주축이 되는 융복합 연구소는 전 학과를 가로지르며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미국 MIT의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 CSAIL, 국가 보안 연구소인 링컨 랩 등이 좋은 예다. MIT 최대 규모 연구소인 CSAIL은 컴퓨터 사이언스, 전자공학, 정책 전공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기후변화, 탄소 중립, 인공지능 윤리 등 주요 사안에 구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차국헌 위원장은 “학과 정원 조정과 통합이 쉽지 않은 서울대 실정에도 잘 맞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서도 우수 연구인력 유치해야
융복합 연구를 실현할 연구 인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제안을 내놨다. 특히 교수의 연구 생애 주기에 따라 정년 보장 전후 교수 대상으로 차별화된 계획을 제시했다.
발전계획은 우수한 젊은 연구 인재를 확보하고 정년 보장 이전에는 기초학문 분야의 도전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썼다.
근래 인구 감소와 인재 유출이 연구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우수한 학부생의 모교 대학원 진학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차국헌 위원장은 “앞으로도 서울대에 우수한 학생이 계속 들어올 것이라 가정하는 건 위험하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을 막론하고 해외에서도 우수 인재를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발전계획은 연구 경쟁력 제고에는 국제 협력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짚었다. 대학원혁신 전담지원부서 ‘국제협력혁신사업부’를 설립해 외국인 교수·신진연구인력·대학원생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유수 대학처럼 세계에서 ‘포스닥(박사후 연구원)’이 몰려드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원·박사후연구원에 학비와 생활비 지원 등 좋은 복지수준을 보장해야 한다고 썼다.
한편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은 개인 연구 역량을 인정받은 데서 나아가 융합 연구를 통해 새로운 시너지를 내도록 지원한다는 것이 발전계획의 뜻이다. 공동 연구에 목마른 교수들도 많다. 차국헌 위원장은 “간호대와 공대, 공대와 의대 등 자신의 학과와 단과대를 뛰어넘은 융합 연구에서 역량을 발휘한 교수님들의 사례에서 착안했다”며 “여러 단과대학의 경쟁력 있는 분들이 모여 같이 연구할 놀이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전계획은 교원들의 공동연구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교원을 반의무적으로 각 연구 클러스터에 배치하고, 집단연구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자들이 서로의 관심사를 검색하고 공유할 수 있는 연구정보공유 플랫폼을 구축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많은 연구자들이 과도한 행정 업무로 연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불만을 호소해 왔다. 발전계획은 연구비 절차와 서면으로 제출하는 서류를 최소화 하고, 하루에 최소 6시간의 연구 시간은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직능별로 △연구중점교수 △교육중점교수 △행정중점교수를 분리해 업무 분담과 평가를 차별화하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대학기술 투자펀드로 연구자금 확보
발전계획은 모교 연구비 대부분이 정부지원금에 의존하고 있어 연구비 사용의 자율성이 낮음을 지적했다. 연구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대학 내부에서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수익을 벌어들이고, 이를 다시 연구에 투자하는 선순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대학 기술 투자펀드를 결성해 연구자금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식재산권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계획도 제안했다. 연구원과 교직원의 창업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성도 있음을 언급했다.
관악캠퍼스와 시흥캠퍼스, 구로 벤처타운을 잇는 ‘벤처 삼각벨트’를 구성하고, 시흥캠퍼스에는 신산업 및 혁신성장 산학협력 플랫폼 구축, 평창캠퍼스는 미래지향적 농업연구 허브화 등 멀티 캠퍼스를 산학협력 연구기지로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차국헌 위원장은 “계획을 세우면서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섹션을 나누기보다 여러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했다”며 “서울대가 단과대학의 연합이 아닌 진정한 종합대학이 되기 위해선 융복합 연구가 필수다. 적어도 1년에 수백억을 들여 10년은 꾸준히 해야 결과가 나오는 장기 계획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만의 브랜드가 나올 때, 서울대가 국민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