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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 2021년 11월] 기고 에세이

횡재를 차버렸던 하버드

유종해 연세대 명예교수


횡재를 차버렸던 하버드



유종해
법학50-54
연세대 명예교수

 
한문의 표현 중에 물취이모(勿取以貌)란 좋은 표현이 있다. 즉 외모로만 사물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다. 그래서 예부터 옷이 날개라고 하여 외모에 신경을 써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 아래의 예를 통해서 겉만 보고 사물을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을 살펴본다. 

나는 1978년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대의 교환교수로 1학기를 그곳에 있었다. 버클리대와 스탠퍼드대는 가까이에 있다. 셔틀버스가 두 대학을 연결해주어 여러 번 스탠퍼드대에 갈수가 있었다. 갈 때마다 느낀 일은 스탠퍼드대는 부지가 매우 넓어 자동차의 도움 없이는 원하는 건물에 갈 수 없고 한 마디로 부자 대학이라는 것이 겉으로도 느껴진다. 여기에서 스탠퍼드대 성립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허름한 차림의 노부부가 세계적인 명문 대학인 하버드대의 정문을 막 들어서려고 했다. 그러자 정문에 서 있던 경비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여긴 왜 들어가려고 합니까?” 경비의 물음에 노부부는 “총장님을 좀 만나러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경비가 코웃음을 치며 “아니, 총장님이 당신 옆집 사람이오? 총장님 같이 높은 분이 당신들 만날 시간 어디 있겠소?”하며 노부부를 정문 밖으로 밀어냈다. 경비의 태도가 불쾌했지만 노부부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이만한 대학을 설립하려면 돈이 얼마나 듭니까?” 그러자 경비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댁들이 그건 왜 묻는 거요? 어서 나가기나 해요”라며 화를 버럭 냈다. 그래서 노부부는 발길을 돌렸다.

사실 이들은 리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 부부로 금광과 철도업을 하는 엄청난 재벌이었고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39·42대)을 두 번 지낸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15살에 장티푸스로 죽자 전 재산을 교육 사업에 헌납하기로 결정하고 하버드대를 방문한 것이었다. 하버드대 방문의 원목적은 아들을 위해 기념강당 혹은 강의동(棟)을 기부하려는 것으로, 문전박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요즈음 같으면 경비가 적어도 어디서 온 이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도리인데 그것을 안 한 것이 경비의 직무유기가 된다. 

경비에 쫓겨난 이들 부부는 5년 후 1891년에 팔로 알토에다 직접 대학을 설립했는데 그 대학이 바로 유명한 스탠퍼드대다. 오늘날 스탠퍼드대는 세계의 명문일 뿐 아니라 일명 서부의 하버드라고 불리고 IT와 경영학부는 전 미국애서 1등을 몇 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탠퍼드대는 바로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어 학교 발전에 덕을 봤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하버드대는 그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아쉬워하며 하버드대 정문에 이런 문구를 써 붙였다고 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그것은 마치 수박의 겉만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박의 겉만 봐서는 속에 그렇게 달고 시원한 육즙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의 입은 옷, 학벌, 가문, 외모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있는 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은 그 안의 무엇을 볼 수가 없어 위의 사례와 같은 실수를 하니 신중해야 되는 것이다. 사람은 못난 사람도 잘난 사람도 없다. 사람을 외모로 보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