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호 2021년 9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풍문으로 들은 ‘DNA가 세상을 구할 것’…현실로 만들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풍문으로 들은 ‘DNA가 세상을 구할 것’…현실로 만들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78억 인구에 몸 설계도 제공 꿈
유전체 정보 이용 무병장수 돕겠다
1인 유전체 분석 5년내 10만원
매일 금강경 독송하며 마음 공부
부인·외동딸·사위 모두 동문
대담 : 김희원 (인류89-93) 한국일보 논설위원
대담 : 김희원 (인류89-93) 한국일보 논설위원
“예과 시절, 광장이라는 소설에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광장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풍문이 있다. 인생을 풍문 듣듯이 사는 것은 슬픈 일이다. 풍문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우리는 그곳에서 운명을 만난다. 그곳을 광장이라고 한다.’ 광장의 무대였던 1950년대엔 공산주의가 세상을 풍미했다면, 1970년대 후반 제가 들은 풍문은 ‘DNA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풍문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났고, 이 길에서 인연과 운명을 만났습니다.”
서정선(의학70-76) 마크로젠 회장이 지난 6월 본회 관악대상 시상식에서 밝힌 수상 소감이다. 1997년 서 동문이 모교 유전체의학연구소를 모태로 설립한 바이오 벤처 1호 마크로젠은 2000년 국내 바이오벤처로는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마크로젠 연구팀은 북방계 아시아인인 한국인의 유전체(게놈 Genome) 염기서열 전체를 처음으로 분석해 2009년 네이처지에 게재하고, 2016년에는 아시아인 표준 게놈을 완성해 두 번째 네이처지 논문을 발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9년에는 1700여 명의 아시아인 게놈을 분석한 국제 공동 연구 성과로 네이처지 표지 논문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평생 한 번 내기도 힘들다는 네이처지에 위 논문을 비롯해 18편의 논문을 발표(네이처 자매지 포함)했다.
유전체는 우리 몸의 설계도와 같아서 이를 분석하면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를 알고 예방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서 동문은 ‘DNA가 세상을 구할 것’이란 풍문을 현실로 구현하고 있다. 8월 25일 서울 테헤란로 본사에서 만난 그는 “마크로젠이 전 세계 78억 인구에게 자신의 설계도를 하나씩 줄 때까지 풍문을 확인하기 위한 여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로젠 설립 초창기 때 뵙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변한 게 없으시네요.
“젊은 연구자들과 지내다 보니 덕을 좀 보는 것 같아요(웃음).”
-그때는 유전자보다 실험용 쥐 개발이 주력이었지요.
“지금도 하고 있지만, 매출이 얼마 되지는 않습니다. 유전자 분석에 집중하고 있죠. 현재 본사에만 530명 있고요, 일본, 미국,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싱가포르, 아르헨티나 등에 법인 및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 연 매출은 1,126억원(2020년), 60% 매출이 해외에서 발생합니다. 올해 전반기 영업이익만 93억원이었습니다. 10년 이상 흑자를 내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거품만 있는 벤처와는 다르다고 자부합니다.”
-마크로젠의 역점 사업은 무엇입니까.
“첫째 대학교, 연구소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분야, 둘째 환자 및 의료진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진단 분야, 셋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 유전체 분야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타깃으로 삼았던 연구기관은 전 세계 153개국 1만8000여 기관 고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질병 예측이 본격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인천 송도에 진료센터를 지었고, 병원 건립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전 세계 78억 사람에게 설계도를 모두 주겠다는 큰 꿈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을 대상으로 당뇨병을 비롯한 13개 질병을 예측하는 유전체 검사의 실증연구에 들어간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제쯤 서비스가 가능할까요.
“의료기관 아닌 소비자가 직접 시행하는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 검사는 지금 영양소, 운동, 피부·모발, 식습관, 개인 특성 등 웰니스에 국한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마크로젠이 지난 4월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공용IRB) 최종 승인을 받아 국내 최초로 13개 질병 관련 DTC 유전자 검사 실증특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검사 항목은 제2형 당뇨병, 간암, 대장암, 전립선암, 폐암, 위암, 고혈압, 골관절염,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심박세동, 파킨슨병, 황반변성 등 총 13개 질병이고요. 인천 송도에 위치한 진헬스 건강검진센터에서 지역내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입니다. 이를 통해 질병 예측 유전자 검사의 유용성을 입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 사람의 유전체 분석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현재 기술로는 30만~40만원 정도 들고, 5년 내 10만원까지 낮추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가계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이들이 많기도 해서 DTC 시장이 활성화 돼 3000만명이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2025년에 6000만명이 유전자 검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급성장하는 시장이네요.
“그런 예상 하에 시설과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2025년 이후 유전자 검사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0만원이면 과거도 알 수 있고 미래의 질환까지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으니 규제가 완화되고 프라이버시 문제가 해결된다면 훨씬 많은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측이 정확하냐는 거겠죠.
“사람의 게놈 염기서열 30억 개 중 개인마다 다른 변이를 보이는 게 대략 3000만개입니다. 그중 의미가 있는 유전자 변이는 10% 정도입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게 유전적 질병과 관련된 병이죠.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찾은, 유전성 유방암을 일으키는 BRCA1 돌연변이 같은 겁니다. 그렇지만 유전병은 전체 질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합니다. 암, 당뇨, 고혈압 등 만성병 환자들이 많죠. 이 질환들과 관련된 유전 변이는 20개 정도가 있는데, 사람마다 경로가 다 달라요. 왜 나타나는지 요인이 너무 다양한 거죠. 결국 각 개인의 의료기록 빅데이터와 유전자 분석 정보가 결합이 돼야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죠.”
-유전자 분석 시장 외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는 없습니까.
“마크로젠이 2019년 말에 유바이옴이라는 미국 최대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군유전체)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데이터 30만건, 특허 280개 등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었죠. 미래 사회로 갈수록 노인 인구가 늡니다. 신약,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 시장도 확대될 것이고요. 장내미생물 관련 건강식품 등의 수요가 특히 늘어날 겁니다. 지난 100년 항생제 남용으로 장내미생물이 많이 약해졌는데, 이것이 소화와 대사뿐 아니라 피부 건강, 정신 건강과도 연관돼 있습니다. 이것이 큰 미래 시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 회사의 유전자 분석 기술과 마이크로바이옴 정보를 활용해 각 개인의 장내미생물을 분석, 맞춤 프로바이오틱스를 제공하는 것이죠.”
-10년 뒤 연매출 단위에 0이 하나 더 붙을 것 같습니다.
“마크로젠은 인류 건강에 기여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비전이 밝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세상을 놀라게 했듯이, 마크로젠이 전 세계인에게 값싸게 의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누구나 이 정보를 이용해 무병장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바이오 1호 벤처이신데, 교수로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당시만 해도 교수, 특히 국립대 교수가 사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명예를 가졌는데 돈까지? 그런 분위기가 만연했죠. 사실 미국에 있을 때 학내 벤처회사의 연구 부사장을 한 적이 있어요. 굉장히 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학내 벤처는 생각도 안 했어요. 마크로젠 창업도 제가 자진해서 한 게 아니고, 정부에서 창업을 하라고 하도 강하게 이야기해서 하게 된 겁니다. 당시 생물 분야의 벤처가 없어서 연구 결과물이 많았던 저를 더욱 압박했죠. 정 안 되면 페이퍼 컴퍼니라도 만들라는 겁니다. IMF 극복의 동력을 벤처에서 찾던 시절입니다. 그래도 늦지 않게 코스닥 상장을 할 수 있어서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요.”
-사명은 직접 지으신 건가요?
“그럼요. ‘Macroscopic Phenotype of Gene’(유전자의 거시적 표현)의 줄임말입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교해 마크로하드도 생각했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 유전자도 물질(hard)이니까, 빅젠이란 의미에서 마크로젠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만큼 유전자가 중요하다는 의미죠.”
-애초에 학자가 아닌 경영자를 하셨어도 잘하셨을 것 같습니다.
“경영과 연구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성의를 갖고 문제를 푸는 거니까요. 젊었을 때부터 기업에서 트레이닝 받았으면, 좀 더 수월하게 경영할 수는 있었을 것 같아요. ”
-경영을 배우기도 하셨나요?
“책이 큰 스승이었죠. 마크로젠의 컨설턴트로 ‘스티브 가즈오 윤’을 듭니다. 스티브 잡스, 이나모리 가즈오, 윤종용의 앞자를 딴거죠.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었고, 이나모리 가즈오는 경영이란 무엇인지를 이론과 실제에서 탁월하게 보여준 분이고, 윤종용 회장은 SCM(공급망관리)의 전도사로 불리는 분이죠.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뵐 때마다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벤처 사업 활성화를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이제 우리나라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가야 하는 시점입니다. 특히 바이오 분야는 우리 인력의 능력이 뛰어납니다. 의대, 공대에 우수한 자원이 많기 때문이죠. 의료와 바이오가 만나는 순간, 반도체, 자동차 시장은 경쟁이 안 될 겁니다. 보건의료산업 규모를 1300조로 예상합니다. 이 분야에서 세계의 리더가 될 잠재력이 무궁무진합니다. 대학에서 창업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제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줘야 돼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민첩함에 있습니다. 학생들이 미래 사회를 정확하게 봐야 되고요. 사회가 굉장히 빨리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테스트하고,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방향 수정해야 합니다. 정부도 과거 패스트 팔로어 시절 정부 주도 정책에서 벗어나, 방향을 신속하게 예측하고 규제 풀고 지원해 주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합니다. 미래 사회로 가려면 정말 유연해야 합니다.”
정리=김남주 기자
정리=김남주 기자
서 동문은
1952년 6월 서울 태생. 경기고와 모교 의대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군서울지구병원 생화학과장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1983년 모교 의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1997년 모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인 마크로젠을 창립했다.
2000년 마크로젠 대표이사로 경영일선에 섰다가 2004년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 마크로젠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2017년 모교에서 정년퇴임하며 42년의 공로로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한국 바이오벤처기업 1세대 CEO로서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했다.
정년 3년 전 위시리스트를 고민하다, 몇 권의 중요한 책은 이해해야겠다 싶어 도덕경, 주역, 금강경을 읽고 또 읽었다. 제일 집중한 책은 금강경. 한 지인의 조언을 받아 하루에 한 번 독송하며 100일씩 10번 읽었다. 3년간 그렇게 하니 금강경이 마음에 들어왔다. 요즘도 매일 금강경을 독송한다.
부인, 외동딸, 사위가 모두 서울대 동문이다. 부모님과 형제는 모두 의사다. 회사 주식 상당 부분을 모교에 기증해 후배 의학도의 유전체 분석 교육을 지원했고, 최근 회사 명의로 모교 의과대학 교육연구재단에 2021년 연구지원금 10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