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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2021년 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윤세영 태영그룹&SBS 미디어그룹 창업회장 인터뷰

흙수저 출신 촌놈의 ‘乙 정신’이 나를 일궜다
원로에게 듣는다




흙수저 출신 촌놈의 ‘乙 정신’이 나를 일궜다

윤세영 태영그룹&SBS 미디어그룹 창업회장


윤세영(행정56-61·본회 고문) 동문은 33년생, 56학번이다. 구순을 앞둔 원로다. 원로의 모교 사랑은 남다르다. 수많은 기부와 참여가 모교 사랑의 징표다. 총동창회 SNU장학빌딩에는 그의 부조가 있고 관악캠퍼스에는 그의 호를 붙인 서암(瑞岩) 법학관이 있다. ‘흙수저 출신의 촌놈’을 여기까지 만들어준 데 대한 보은이라고 표현했다. ‘사랑을 받았으니 사랑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특별한 모교 사랑의 근원은 무엇일까? 모교와의 인연은 어떻게 그의 인생을 바꾸었을까? 인생의 갈림길은 언제였고, 영향을 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원로 동문과의 인터뷰는 이런 궁금증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모교 사랑이 큰 만큼 학창시절도 특별한 추억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학업과 군 복무를 같이 했습니다. 특이한 학창시절의 추억이었죠. 1학년 마친 뒤 징집 영장이 발부돼 군에 입대했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 통역장교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해 장교가 됐지요. 그때는 6·25 전란 뒤의 특수 상황이었기에 군 복무 중에도 학업이 허용됐습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군의 특별휴가를 받아 친구들 도움으로 벼락치기 공부를 한 뒤 시험을 봤지요. 성적은 좋을 리가 없었죠. 그래도 시험을 보려면 친구들 노트도 빌려야 하고 학습 도움도 필요했는데 장교 월급 받은 돈으로 밥 사고 술 사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죠. 덕분에 물주로 불렸어요(웃음). 이수성(전 총리), 윤영철(전 헌법재판소장), 정해창(전 법무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안우만(전 법무장관), 고 최동규(전 동력자원부 장관), 최상엽(전 법무장관), 정우모(태영인더스트리 고문), 고 김진탁(전 동양타일회장) 등이 자주 어울렸던 친구들입니다.”

-졸업 후 사회 진출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졸업을 앞두고 5·16을 맞았습니다. 군정 시절 박병권 국방장관의 부관을 거쳐 육군 참모총장실 근무를 한 뒤 제대했습니다. 63년 당시 6대 국회의원이었던 이동녕 의원이 국방위원회 소속이었는데 저의 군 경력을 전해 들었는지 면담 신청이 왔고 면담 후 곧바로 비서관 발령을 내더군요. 저의 첫 사회 경력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제 처가가 이 의원 지역구인 문경 출신이라는 인연도 있었구요. 이동녕 의원이 정계를 떠난 뒤에는 이 의원이 소유하고 있던 봉명그룹 산하 삼주개발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제가 건설과 인연을 맺게 된 첫 계기입니다.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거쳐 73년 태영개발(현 태영건설)을 창업했는데 이동녕 의원과의 인연이 창업으로까지 이어진 셈이죠.”

-‘창업의 기업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
“SBS 창업주로서 민영방송 역사를 만든 일이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단독중계는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김연아 금메달로 대한민국이 뜨겁게 달궈졌던 때 기억나시죠. SBS가 올림픽과 월드컵의 독점 중계권을 따냈었는데, 지인들에게까지 온갖 압력을 받았었죠. 대통령만 빼고는 영향력 있다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단독중계 결정을 거둬 달라’는 회유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단독중계 결단을 내렸고 결국 김연아 우승 때 시청률 44.7%, 시청점유율 78.3%라는 전무후무의 역사적 기록을 남겼습니다.”


FIFA 회장 블라터와 담판 …평창올림픽 유치 도와
모교에 기부한 서암 법학관, ‘정의의 종’ 같은 존재 되길

밴쿠버 동계올림픽 국내 단독중계 짜릿한 추억
윤세영저널리즘스쿨 설립, 미래의 저널리스트 양성


-모교에 대한 통 큰 기부로 유명하십니다. 동기가 무엇인지요?
“서울대는 저에게 됨됨이를 가르쳐 준 곳이죠. 제 자긍심의 산실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보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009년 개관한 서암 법학관에 두 달 전 다녀왔습니다. 서암 법학관 내 공익법률센터 개관식에 초대돼 가족과 함께 돌아봤는데 참 뿌듯했습니다.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법대를 지켜왔던 ‘정의의 종’처럼 후배들이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라는 법언을 가슴에 새기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교 사랑만큼 알려진 것이 고향 사랑입니다. 각별한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제 고향이 강원도 철원(동송면)입니다. 지금은 대한민국 땅이지만 1945년 해방 당시에는 38선 이북으로 북쪽 땅이었습니다. 만 13살 때인 1946년 겨울,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을 건너 월남했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내려왔는데 포천, 양평에서 잠시 거주하다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6·25 동란 중인 51년에는 아버님을 잃는 슬픔도 있었습니다.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말처럼 다시는 고향에 못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었죠. 그러나 38선이 6·25 전쟁 후 휴전선으로 대체되면서 내가 떠났던 북의 고향 철원은 대한민국 땅이 됐습니다. 갈 수 없는 땅에서 갈 수 있는 땅이 된 거죠. 이런 사연들 때문에 고향 철원과 강원도에 대한 애착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그 강원도 사랑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기여로 이어진 것 아닌가요?
“2014 개최지 결정 때 소치에 당한 충격이 워낙 커서 2018 도전은 탈진 상태에서 시작됐습니다. 내부의 회의적 시각과 싸우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다시 한 번 해보자고 분위기가 반전됐고, 막판에는 정말 모두 열심히 뛰었습니다. 인고의 시간이었다고 할까요. 로게 IOC 위원장이 손에 잡은 카드를 뒤집으며 ‘평창’이라고 발표하는 순간의 감격은 일평생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유치된 평창올림픽이 성공 대회로 마무리된 데는 이희범 조직위원장 (현 총동창회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2016년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어수선해질 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이희범 위원장이 임명됐다는 뉴스를 듣고 ‘아, 그 사람이라면 됐다’며 안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유치 과정의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다면?
“이제는 말할 수 있겠죠?(웃음) 블라터 FIFA 회장과의 비화입니다. 2011년은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과 FIFA 회장 선거가 동시에 있었던 해였습니다. 과거 정몽준 회장과의 라이벌 관계 때문에 블라터와 KFA(대한축구협회)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평창 입장에서는 블라터가 IOC 위원을 겸하고 있었기에 블라터가 중요했거든요. 마침 FIFA 중계권 담당 본부장이 SBS를 찾아왔길래 골프 라운딩에 초청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KFA가 블라터를 지지한다면 블라터도 평창을 지지해 줄 수 있겠느냐?’는 윈-윈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일주일 뒤 스위스 FIFA 본부에서 ‘관심 있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KFA와 정부에 블라터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내부 조율을 마친 뒤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 정병국 문화체육부 장관과 함께 스위스로 날아갔습니다. 정 장관이 블라터 회장 면전에서 KFA의 블라터 지지의사를 밝혔고 블라터는 파안대소하며 평창 지지를 약속해줬습니다. 결국 6월에 블라터는 4연임에 성공했고 한 달 뒤 평창은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동문 사랑, 고향 사랑에 이어 문중 사랑도 있던데요(웃음). 해평 윤씨 문장(門長)이라고 들었습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할아버지뻘 되는 문중 어른이십니다. 윤 대통령 본인도 문장(종신직 문중 큰 어른)을 지내셨고요. 살아계실 때는 1년에 두어 번씩 종회에서 인사드렸죠. 윤 대통령 장남인 윤상구씨와는 윤보선 기념사업회 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하셨던 문장 역할은 그 뒤 일동제약 창업주인 윤용구 회장께서 맡으셨고 지금은 제가 이어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대담, 글 : 방문신(경영82-89) SBS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방송사 창업주로서 ‘윤세영 저널리즘 스쿨’을 설립하셨습니다. 그 특별함을 설명해주신다면?
“민주주의는 좋은 저널리즘과 짝을 이룰 때 제대로 작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준 높은 미래 저널리스트 양성 방안을 고민하던 중 이화여대가 운영하던 FJS(프론티어 저널리즘 스쿨)를 확대 개편해 작년에 윤세영 저널리즘 스쿨을 출범시켰습니다. 이대는 본교 건물을 교육공간으로 제공하고 모든 운영비는 서암 윤세영 재단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2기 신입생 입학식이 있었는데 ‘저널리즘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정확한 정보, 깊이 있는 정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미래의 저널리스트가 되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서울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저 역시 출발점이 흙수저이고 촌놈입니다. 기업가로서 항상 ‘乙의 정신’으로 살아왔습니다. 나를 낮추는 자세죠. 그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SBS를 창업한 뒤에는 ‘홍익인간’,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기쁨주고 사랑받는 SBS’라는 슬로건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법’을 방송 차원에서 실천하려는 제 가치와 철학을 담은 것이기도 합니다. 절실함과 정성이 있으면 하늘에 닿습니다. 사랑에 감사하고 받은 사랑은 나누시기 바랍니다. 더 커진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윤 동문은 지극한 모교 사랑으로 2001년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 2008년 관악대상, 2009년 서울대 발전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사랑니 뽑으러 갔다 만난 변금옥(치의학54-59) 동문과 결혼해 1남 2녀를 뒀다. 아들 윤석민(화학공학83-87) 태영그룹 회장도 동문이다.

모교 사랑·고향 사랑…인연 맺으면 끝까지 간다

윤세영 동문의 인터뷰 키워드는 ‘사랑’, ‘감사’, ‘보은’이라는 말이었다. 본인의 여러 후원과 지원활동을 이 단어로 표현했다. 모교 기부 또한 그렇게 설명했다. 법대 낙산장학회에 오래전부터 해 왔던 많은 기부, 총동창회 장학빌딩 건립을 위해 10억, 서암 법학관 건립을 위해 50억을 내놓은 일 등을 ‘보은’이라고 했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도움과 사랑에 대한 감사, 촌놈을 일어설 수 있게 버팀목이 돼 준 모교에 대한 감사. 그 감사의 마음을 갚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아들인 윤석민(화학공학83-87 태영그룹 회장) 동문이 작년부터 총동창회 부회장으로 대(代)이은 모교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도 같은 취지라고 했다. 윤 동문은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가져간다. 시험 노트까지 빌려줬던 56학번 친구들과는 지금도 매월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65년 동안 계속되는 우정이다. 고향 강원도 사랑 역시 끝을 본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평창 올림픽 유치 범도민 후원회장을 맡아 유치의 최전선에서 활약했고 금강 장학회(강원도 출신 기업인들이 만든 장학회)에 대한 후원도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전국 도민회관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강원도민회관 역시 그의 고향 사랑이 빚어낸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