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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2019년 3월] 뉴스 모교소식

화제의 축사 <2>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모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나락으로 떨어진 삶에도 학문은 구원의 손길”

지난 2월과 3월에 열린 모교 졸업식, 입학식 초대 연사들의 축사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방탄소년단을 세계적 아이돌 그룹으로 이끈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와 불의의 사고를 극복하고 장애의 몸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상묵 모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축사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나락으로 떨어진 삶에도 학문은 구원의 손길”


입학식 축사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해양81-85) 모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에 입학하신 새내기 1학년 여러분들과 가족들께 축하드립니다. 환영합니다.

38년 전 서울대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저희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상묵아, 축하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세상을 살아보니까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가 공부 실력이지 그 이후부터는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더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대학 들어갈 때까지는 공부가 중요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아니란 말씀이죠. 또 남자가 40이 넘으면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어떤 학교를 나왔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제게 강조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마도 공부 잘한다고 방심하지 말라는 뜻이었던 같습니다. 저도 오늘 여러분을 마주하니 (하필 오늘 같이 기쁜날 이런 초 치는 이야기를 하는가 싶으시겠지만) 끊임없이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매진하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제가 학자라서가 아니라, 저는 공부, 즉 복잡한 것을 생각하고 추상적인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봅니다. 나아가 저는 인생은 공부밖에 할 것이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공부를 통해 한 학문 분야에 전문가가 되면 다른 분야도 이해하는 머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장애인입니다. 선천적이 아니고 저는 나이 마흔 네 살에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처럼 움직이고 뛰어다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1년에 해외출장을 평균 10번 다닐 정도로 활발한 삶을 사는데 그 이유는 과학자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사고력 교육 때문입니다.

사고 전까지 저도 여러분처럼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 죽을지도 모르고, 설령 산다고 하더라도 평생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 처하면 과연 죽음이란 게 무엇인가, 만약 산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가, 또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등등 우리가 평소 때 생각하지 않는 소위 근본적인 질문들(fundamental issues)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그 해답은 가까운 데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학자가 되는 과정에서 받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연마한 사고법(즉 scholarship)을 바탕으로 해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책장 한 장도 스스로 넘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 입 앞에 있는 빨간 도구로 컴퓨터를 조작하고 이것으로 전자문서의 페이지를 넘길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세어 보니 지난 12년간 아마존 킨들에서 제가 구매한 책이 어느 덧 800권에 이르더군요. 오디오 북까지 합치면 1,000권 이상입니다. 분야는 역사, 철학, 고전, 심리학, 수학, 생물학, 컴퓨터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합니다. 제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것은 한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가 되면 다른 학문 분야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문은 여러분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여러분을 끌어 올리는 구원의 손길이 될지 모른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삶은 우리 인간이 원대한 우주 안에서 자기의 존재와 의미를 이해해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리만이 우리의 앞길을 밝히는 유일한 빛입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분 가운데 메리 에블린 터커(Mary Everlyn Tucker)란 미국 예일대학 교수님이 계십니다. 얼마 전 제가 평창포럼 연사로 모시기 위해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이 유교를 전공하시더군요. 우리의 경우 유교에 관해 어릴 적부터 너무 많이 들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께 왜 전 세계에 수많은 종교들 가운데 하필 유교를 택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분 말씀은 대부분의 종교가 열반에 이르고 천당에 가는 것처럼 개인적인 구원에 치중하는 것에 반해 유교는 스스로의 학문적 연마(self-cultivation)를 통해 내세가 아닌 현재 자기 주변의 가족과 사회에 영향을 주고 세상을 밝히고자 하는 정치·경제·사회적 통합적 믿음 체계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한마디로, 유교는 우리가 귀 따갑게 들어온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지향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수신제가치국평천하)은 여러분이 대학에 들어와 학문에 정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이 참으로 뜻깊은 이유는 이러한 원대한 여정에 여러분들이 그 출발점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서울대학교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이상묵 교수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린다. 모교 졸업 후 MIT에서 해양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해양학을 열정적으로 연구해왔다.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칼텍과 공동 진행하던 야외 지질연구 중 예기치 않은 차량 전복사고로 목 아래를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6개월 만에 강단으로 돌아온 그는 턱과 뺨으로 동작하는 전동 휠체어와 입김으로 동작하는 마우스를 사용해 사고 전과 변함없이 활발한 교육과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뺨을 움직이고, 입김을 불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로 긍정적이다. 저서로 ‘0.1그램의 희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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