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54호 2016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한국형 자본주의를 그려본다

유장희(경제59-63) 前 동반성장위원장·매일경제 상임고문


한국형 자본주의를 그려본다

유장희(경제59-63) 동반성장위원장·매일경제 상임고문



지난 70년간 한국경제의 성장과정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기조 위에서 일단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전쟁의 잿더미에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이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회양극화의 심화현상이다. 부의 편중현상이 우려스러운 수준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윤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경제는 이 시점에서 무한경쟁, 승자독식, 적자생존 등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태생적 문제점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하고 개선방법을 찾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상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제시한 자본주의의 속성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 온 한국식 시장경제 보다는 훨씬 인본적이고 도덕적인 것이었다. 남을 배려하고 이웃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는 것으로부터 나의 행복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내재적 도덕성이 시장경제의 기본 운영 요건임을 스미스는 이미 오래전에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이론은 스미스뿐만 아니고 프랑스의 Emmanuel Levinas, 중국 노나라 때의 묵자(墨子)등에 의해 꽤 강력하게 전개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의 속성을 대입해 볼 때 이러한 경제체제, 즉 배려, 동정, 공감, 나눔, 상생, 협동, 공익이 존재하는 경제를 충분히 건설해 갈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가설이 성립한다. 즉 건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의 민족정신, 예를 들면 홍익인간, 화엄사상, 유교문화, 기독교사상, 전통민속 등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유한 생활철학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간단한 서베이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점을 발굴하여 선양할 때, 자본주의의 근본 특성을 살려 가면서도 배려하고 상생하는 경제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나 시장이 해 낼 수 없는 배려, 동정, 공감, 나눔, 상생, 협동, 공익을 주관하고 선양하는 제3의 섹터를 구성하고 이 섹터에 소정의 역할을 맡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민간부문에 12백개가 넘는 다양한 자원봉사 단체들이 있다. 이들을 효율적으로 엮어 그늘진 곳, 어두운 곳을 밝혀 주는 역할을 부여하면 부의 편중과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경제를 좀 더 공평하고 공유가 가능한 경제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 자율적인 성격이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에 결코 배치되는 기구가 아닐 것이다. 다만 이 기구가 시장에서 선한 행위를 찾아내고 기록하며 참여자들(개인, 기업)에게 소정의 혜택이 돌아 가도록 정부와 협력하는 메커니즘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3섹터의 구축은 이론적으로 그럴듯한데 누가 어떻게 무슨 힘으로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탄생할 때는 원래 시장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는데 이를 보이지 않는 손에게 맡기기 위해 정부의 간섭을 빼내는 일이었으므로 간섭이라는 실체를 제거하는 작업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에 비해 제3섹터의 구축은 자발적으로 산재해 있는 것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구체화 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 작업의 구심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한나라의 국론을 주도하고 사회로터 존경을 받는, 그리고 완전히 이타적인 지식층이 앞장서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그런 지식층이 형성되어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정희성 시인이 그랬듯이 필자도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라고 외치고 싶다. 55년 전 4?19혁명을 통하여 독재를 몰아냈던 지성들이라면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 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작년 11월 25일 한국선진화포럼 주최 ‘선진화를 위한 한국자본주의의 정신을 묻다’라는 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을 수정, 요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