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호 2015년 7월] 문화 꽁트
나를 향해 빛나는 별
최정림 소설가
나를 향해 빛나는 별
崔晶林(상학65-69)소설가
만 60세가 되어 오래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던 날, 나는 가족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폭탄 선언을 해버렸다.
-인생 구십이라 치자. 나는 초반 3분의 1, 30년은 오로지 부모님 뜻을 따라 살았고, 다음 30년은 가족들을 위해 살았다. 이제부터 남은 인생은 나 자신을 위해 살겠으니 그리 알아라!
그로부터 일 년이면 서너 달씩 나 홀로 떠나는 여행벽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거의 오지에 가까운 곳을, 산티아고 순례길 가듯 걷고 또 걷는 여행이었으니…. 사서 고생 고행길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간 모범생으로 살아온 내가 무슨 특별히 참회할 게 많아서 그랬던 건 아니다. 무작정 걷다 보면 고통의 절정을 넘어 ‘러너스 하이’가 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 짜릿함의 마약 같은 중독성에 빠지고 만 것일 뿐.
처음엔 입이 댓발이나 나왔던 마누라도 어느덧 나를 칭송하게 되었다. 딴 여자들은 삼식이 할배 땜에 골 아프다는데, 우리 남편님은 일년에 서너 달은 아예 ‘영식님’이시라네.
예고된 가출 경력 십 년째가 되던 해, 문득 이번엔 일본 올레길 여행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규슈로 떠난 것이 대형 사고(?!)의 발단이 될 줄이야!
길에서 만난 도보여행자 일본 젊은이들과 이 말 저 말 섞다 보니 내 첫사랑 얘기까지 나왔지 뭔가? 하필 또 나의 첫사랑이 일본 처자였으니, 그 애들 눈이 빛날 수밖에.
반세기 전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 펜팔로 알게 된 그녀와 꼬박 만 3년을 영어로 편지 교환을 했었지. 교복입고 찍은 사진도 보내고, 책갈피에 넣을 고운 단풍잎도 보내고. 편지의 내용도 점입가경 달달해지다가 마침내 뜨거워졌는데. 아아, 목석 같은 나에게도 그런 사랑꾼 시절이 있었구나!
대학에 입학하던 해 한일회담 반대데모가 났다. 한일관계는 악화되고, 그녀가 나를 만나러 서울에 오겠다던 약속도 물거품이 되었다. 아직도 그녀의 마지막 편지 말미에 쓰였던 글귀가 또렷이 떠오른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당신의 목을 끌어안고 뜨거운 키스를 하겠어요!
그때 심쿵 심쿵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니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도 어쩌냐? 시절이 그러했던 만큼, 내 마음의 하얀 등대 불은 꺼지고 걷히지 않을 어둠이 내려 버린 걸.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니고,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이 이야기를 들은 일본 처자들 반응이 어땠냐고? 눈물이 글썽글썽할 정도로 열광적인 감동의 도가니였지. 망각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추억 한 토막에 그런 폭풍 리액션이 돌아올 줄이야!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ㅇㅅㅎ’ 신문에 ‘무려 50년의 순애보!’라는 제목으로 대문짝만하게 내 스토리가 실린 것이다. 물론 달콤한 조미료를 잔뜩 첨가해서. 맙소사!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신문사 측에서 내 첫사랑 미찌꼬를 기어코 찾아내서 만나게 해 주겠단다. 내가 아직도 미찌꼬의 주소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나도 참 이상하다! 그녀를 미치게 죽도록 사랑한 것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오랜 세월 주소를 까먹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암기력 하나는 비상한 편인데, 오로지 그 때문이었을까?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09입) 동문
더 미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사에서 수소문해 보니, 50년이 지난 지금도! 미찌꼬가 그 주소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세기의 재회가…. 어쩌고 저쩌고…. 기사는 한층 더 부풀려졌다. 내가 한 평생 그녀를 찾아 삼만 리를 헤맨 것처럼.
TV에서 만남을 생중계하겠다고 난리가 났다. 제발 그것만은 극구 사양한다고 손이야 발이야 빌어서 겨우 진정을 시키고, 그녀를 만나러 도쿄로 행하는데….
갑자기 길섶에서 웬 호호백발 쪼글쪼글한 노파가 튀어나오더니 나를 덥석 껴안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긴상 감사하무니다, 긴상 감사하무니다, 연방 볼을 비비는 것이다. 아니 그럼 이 호호 노파가 설마 설마 미찌꼬??
휴우, 다행히 ‘나의 미찌꼬’(!)는 아니었다! 현실에 이런 러브 스토리가 존재한다는 게 감동스럽다는 일본 할머니의 격한 환영 해프닝이었던 것. 그 뒤로 이런 해프닝이 몇 번이나 되풀이 되었고. 급기야 나의 호칭은 ‘긴상’에서, ‘욘사마’와 동급인 ‘긴사마’로 공식 승격되기에 이르렀다.
‘ㅇㅅㅎ’ 신문사에서 만나기로 약속된 그 전날 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반세기 전 사진 속의 준수한 고등학생은 어디로 가고, 머리 벗겨진 늙은이 하나가…. ‘아니야 이건 아니야!’ 얼른 바깥으로 나가서 거금을 주고 멋진 모자를 하나 샀다.
*그녀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미리 가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내 옆에는 사진 기자를 비롯 신문사 사람들이 북적북적 진을 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 소리가 내 가슴에 쿵쿵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미찌꼬였다가, 미찌꼬였다가, 미찌꼬일 것이었다가…. 문이 닫혔다. 또 다시 문이 열리고 마침내 그녀가 들어섰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한 떨기 수선화 같은 그녀! 무용을 전공했고, 무용수를 하다가 지금은 선생님이 되었다고…. 그러고 보니 우리가 헤어진 지 너무 오래서 나는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한 번 미치게 놀라운 일은 반세기 전 내가 보냈던 편지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가 가져 온 것이었다. 한시도 나를 잊은 적이 없었다고…. 아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지고, 나는 그만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세기의 러브 스토리라고 대서특필된 그 다음날의 기사는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는 조촐한 만남을 딱 한 번 더 가졌다. 그녀가 마지막 편지에 썼던 대로 ‘뜨거운 키스’를 했는지? 안 했는지? 그건 그대들 상상에 맡긴다. 다만 그녀와 둘이서 처음으로 또 마지막으로 바라본 밤하늘의 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해도 하나, 달도 하나. 하지만 별은 인생의 곡절처럼 하나가 아니라서 더 좋은 것 같다. 수많은 별 중에 나를 향해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 나에 관한 추억을 반 세기씩이나 고이 간직해 준 내 첫사랑 미찌꼬, 고마운 사람! 그녀가 있어 내 청춘이 빛났었음을 내가 몰랐었구나!
* 황지우 시인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인용
최 동문은 2008년 한맥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사막으로 간 남자’가 당선돼 등단했다. 서울상대 동창회보 ‘향상의 탑’에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