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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호 2025년 7월] 오피니언 재학생의 소리

15년차 재학생의 무더운 여름나기


재학생의 소리
윤병훈 (사회10)
박사수료생
올해로 학교에 들어온 지 십오 년째가 됐습니다. ‘재학생의 소리’란에 글을 실을 수 있는 학교 구성원 중에서는, 어느새 나이도 학교에서 보낸 시간도 꽤 많은 축에 드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겠습니다. 연구 인터뷰이로 만난 또래 미술 작가 한 분이 스스로를 가리켜 우스개처럼 말한 표현을 빌리자면, 저도 ‘청년은 청년인데 좀 노숙한 청년’이 되어가는 중에 있습니다.
그 사이 캠퍼스 안팎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교정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고,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학교를 떠나고 또 새로이 학교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학교 주변 동네에는 ‘샤로수길’이라는 것이 생겼고, ‘녹두리아’는 자리를 옮겼습니다.
계절은 더욱 덥고, 더욱 춥고, 무엇보다 무서울 정도로 변화무쌍해졌고, 뉴스에서 만나는 가깝고 먼 곳의 소식들은 한두 해 전의 일들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생경하고 긴박한 것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종종 제가 ‘프로’ 학생이자, 연구자 지망생이자, 어정쩡한 생활인으로 학교에서 보낸 시간을 돌이켜보는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만난 여러 사람이 학교 바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꿈을 실험해 보고,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동안, 저는 얼마간 안온한 학교에 남아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선택을 한 것이겠습니다. 저 또한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고, 한편으로는 운이 좋게도 큰 어려움 없이 배움의 시간을 누려왔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조바심과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제가 학교에 남아 하는 일이라는 것은 대체로 종일 시간을 들여 커다란 암벽에 조그마한 홈을 하나 패놓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어서 남기를 선택한 학교에서 점점 다른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일이 갈급하게 손을 필요로 하는 세계에서 나는 암벽을 제대로 고른 것인지, 궁금해할 때가 많습니다.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갔고, 바깥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푹푹 꺾이는 한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조급하거나 답답한 마음이 스밀 때면 김수영의 ‘봄밤’이라는 시를 되뇌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슬픈 기적소리가 들리더라도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는 시인의 말 중에서도 제가 제멋대로 좋아하는 구절은 시인이 봄밤에야 보인다고 말하는 ‘천만인의 생활’에 대한 것입니다. 시인도 그런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만, 저는 그 구절을 읽을 때면 제가 알고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 봅니다. 늦은 봄밤 어둠 속에서야 희미하게 보인다는 ‘천만인의 생활’을 더듬어 나가기까지, 좋은 연구자가, 좋은 학생이,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여름을 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