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1호 2024년 12월] 기고 에세이
교직원의 소리: 이끼 낀 계단길
이정원 (농화학82-86) 모교 약학과 교수
교직원의 소리
이끼 낀 계단길


이정원 (농화학82-86)
모교 약학과 교수
사시사철 중, 많은 기간 동안 이끼 낀 모습이 보이는 계단길이 교내에 있다. 물론 다른 곳에도 있을 개연성은 있지만, 나의 활동 영역에 한정하자면, 그곳은 바로 버들골에서 교수회관으로 연결되는 오르막 계단길이다. 내가 운동 삼아 변방의 29동에서 도시적 자하연 식당으로 점심 찾아 오르내리는 길.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지금은 일부러 간헐적 단식을 통해 체중 조절을 하려고 하다 보니 덜 오르내리고 있지만, 그래도 생계형 운동 삼아 오르내린다. 혼자 걷다 보니 이리저리 상념들을 정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교수라는 업이 한 가족의 가장과 아빠로서의 입장과, 작은 회사의 사장 같은 입장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경우처럼 느껴져 왔다. 교육, 연구·학술 활동에다가 연구원들의 갈등과 흥까지도 조금은 살펴보곤 했어야만 했다. 그들뿐인가? 한 개인으로서의 위상과 삶의 재미까지 포함하여 나름 알차게 챙겨야 했기에 여러 상념이 있었던 것일 거다.

사진=이정원 교수

사진=이정원 교수
팔방미인처럼 인성과 능력·여유 등 여러 측면의 성향이 필요했을 듯한데, 과연 그러했던가 하는 식으로 반성도 하게 된다. 혹시 뿌듯함과 언짢음을 다스리는 자세 또한 어떠했을까? 이러 저러한 집단과 개인의 영역에서 느껴오는 괴리감, 권리와 책무감들에 대한 대응 자세는 얼마나 포용적이었는지? 좋은 것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옳은 것이 좋았던 건지? 한참 어른이 되어 새로이 만나면서 소울 친구로 여겨졌던 초등학교 동창의 조언처럼 ‘옳은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계단길에서 범람하곤 했었다. 하지만, 20~30대의 젊은 학생·연구원들과의 반복적 일상 중에는, 그 상념들이 얼마나 투영되어 왔을까? 자유롭게 새로운 개념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우리가 벼룩보다 못한 사회적 행태를 보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끼 잔뜩 낀 계단길을 걷다 보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벼룩은 옳음과 그름을 구별할 줄 알까? 자신에게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을 구별하는 것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