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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2024년 2월] 기고 에세이

교직원의 소리: 변명하지 않을 권리

최희진 모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교직원의 소리
변명하지 않을 권리



최희진
대학원13-15
모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2023학년도 1학기와 2학기 사이에 소소한 변화가 있었다. 학생들이 강의의 수강을 취소하고자 할 때, 더 이상 교원의 승인이 필수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는 ‘서울대학교 학업성적 처리 규정’ 개정(2023.6.1.)에 따른 것이다. 정직히 말하자면 이 변화가 반가웠다.

해당 규정의 개정 이전에는 교원이 학생의 수강취소를 승인해야만 학생의 수강취소가 최종적으로 완료될 수 있었다. 문제는 수강취소를 신청할 때 학생들이 수강신청 취소 사유를 반드시 입력해야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모든 취소 사유가 정직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수강을 취소한다는 정도의 사유면 정말 정직하다. ‘개인 사유’라는 네 글자는 결국 어떠한 이유도 알리지 않는, 그저 그 칸을 채워야만 신청 버튼이 활성화되기에 채운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 외 생각도 못한 이유들이 갑자기 (특히 중간고사를 마친 직후에)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쓴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말 피치 못할 사유로 수강을 취소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직하지 않은 취소 사유들을 함께 보고 있으면 제도가 학생들의 거짓말을 부추기는 느낌마저 드는 날도 있었다. 이미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를 피력하는 데까지 승인을 받아야 하다니 그것도 기이했다. 무엇보다 교원의 입장에서도, 강의를 진행해나가는 데에 중요한 것은 학생의 수강 의사일 텐데, 그 의사가 이미 없는 학생에게 변명까지 요청해야 하는 제도는 여러모로 민망했다.

해당 규정 개정 이전 학생들이 수강취소를 위해 담당 교원의 승인을 구해야 했던 것은, 사제지간의 예의를 지킬 것을 제도화해둔 역사의 산물이었던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예의의 제도가 당초 취지를 벗어나 무의미한 변명과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꼴이 되어버렸다면, 그 제도는 이미 허울만 남은 예의를 공허하게 붙들고 있었던 셈은 아닐까. 그래서 변화가 반가웠다. 학생들에게는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교원에게도 공허한 변명이나 거짓말을 듣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다. 무엇보다, 그런 것을 제도가 부추겨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난 학기가 편했다. 애먼 변명을 하지 않아 주어서, 수강을 취소했던 학생들에게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