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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2022년 12월] 뉴스 기획

내년엔 ‘아주 싸거나 아주 비싸거나’…짠테크·스몰럭셔리 바람 분다


내년엔 ‘아주 싸거나 아주 비싸거나’…짠테크·스몰럭셔리 바람 분다

트렌드 코리아 2023

코로나가 여전히 기세등등한 가운데 경기마저 나빠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과 ‘매일경제신문’이 개발한 경제예측모델에 따르면 향후 1년 안에 외환 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66%에 달한다. 국제 정세도 심상치 않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기려 든다. 러시아의 유럽 가스 수출 금지가 계속되면 그 충격은 세계 경제에까지 미칠 것이다. 안팎으로 시련이 밀어닥치는 상황에서 김난도(사법82-86) 모교 교수가 이끄는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신간 ‘트렌드 코리아 2023’을 출간했다. 책에 담긴 통찰을 동문들과 공유하고자 정리했다.

2023년 트렌드 코리아 10대 키워드

평균 실종
Redistribution of the average
오피스 빅뱅
Arrival of a new office culture: office big bang
체리슈머
Born picky, cherry-sumers
인덱스 관계
Buddies with a purpose: index relationships
뉴디맨드 전략
Irresistible! the new demand strategy
디깅모멘텀
Through Enjoyment: digging momentum
알파세대가 온다
Jumbly alpha generation
선제적 대응기술
Unveiling proactive technology
공간력
Magic of real space
네버랜드 신드롬
Peter pan and the neverland syndrome



2022년 7월 9일 관악캠퍼스 222동에서 열린 ‘2023년 트렌더스날 워크숍’ 행사 전경.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매년 200~300명 규모의 트렌드 헌터 집단을 운영하면서 대규모 토의를 진행한다.


‘일하는 방식’ 변화 열망 표출
‘뗐다 붙였다’ 대인 관계 관리

‘트렌드코리아2023’은 2023년을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는 검은 토끼의 해’로 이름 짓고 ‘RABBIT JUMP’ 10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첫 키워드는 ‘평균 실종(Redistribution of the average)’. 집단을 대표하는 평균값이 의미를 잃고 있다는 진단이다.
자본주의의 태생적 불균형이 코로나19 팬데믹의 차별적 영향을 거치면서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양극화를 유발하고 있다. 각종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준거 집단이 다원화되고 시장의 개인 맞춤화 경향이 강해지면서 시장의 전형성이 사라졌다. 모집단이 정규분포를 이루지 못하고 양극화, 다극화되니 평균값이 의미를 잃게 된다.

경제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된 양극화

청년층 사이의 자산 양극화를 보면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2021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30대 상위 20%의 자산 규모는 하위 20%의 약 35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시장도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아주 비싸거나 아주 싸거나’의 경쟁이다. 사치품을 주로 취급하는 백화점의 2022년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6.8%, 3대 대형마트의 저렴한 자체 브랜드 상품의 매출도 10%가량 증가했다.

불황형 소비인 ‘짠테크’ 열풍이 부는 동시에 아낀 돈을 소소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위해 쓰는 ‘스몰럭셔리’ 트렌드가 나타난다. 소비 측면에서 양극단 전략을 보이듯 투자 시장에서도 극안전 자산과 극위험 자산으로 몰리는 ‘바벨 전략’이 눈에 띈다. 종합주가지수는 거들떠보지 않고 개별 종목의 추이를 눈여겨보는 것.

교육 현장에선 특히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일상의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원격수업으로 학생들 집중도가 떨어진 탓에 중위권 학생들 학력이 기초학력 미달 수준으로 하향된 경우가 늘었고, 사교육의 양극화가 더해지면서 학력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두 번째 키워드는 ‘오피스 빅뱅(Arrival of a new office culture)’이다. 최근 유튜브에선 3040 젊은 직장인들의 ‘퇴사 브이로그’가 인기다. 재택근무, 자율출퇴근제, 하이브리드 워크 같은 용어가 회자되고, 보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업무 환경이 어떤지를 두고 고민한다. 노동시장의 판이 가히 폭발적으로 변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오피스 빅뱅을 촉발한 결정적 계기이자, 코로나 이전부터 축적돼온 ‘일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의 열망을 표출시킨 시금석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업무 방식에 적응했고,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임금노동의 가치가 하락한 것. ‘회사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고 여기는 조직 동일시 문화에서 ‘조직보다 나의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개인 중심 문화로 변하고 있다. 과거에 잦은 이직은 조직에 적응 못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였지만, 최근엔 이직을 못하면 능력없는 ‘고인물’로 비춰질까 우려한다.

인재를 지키려는 회사 차원의 노력도 주목받고 있다. 연봉이나 성과급 인상은 기본, 젊은 직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혼자 사는 직원을 위해 가사 청소와 반려동물 보험을 지원하거나 북 콘서트, 가죽공예, 와인 테이스팅 등 다양한 원데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인사팀과 별도로 직원들의 업무 환경과 복리후생을 컨설팅하는 ‘피플팀’을 신설한 회사가 늘고 있다. 다만 오피스 빅뱅의 주된 변화는 어디까지나 사무직 중심이다. 일부 기업에서 물꼬를 트곤 있지만, 전체 노동시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해석해선 안 된다.

세 번째 키워드 ‘체리슈머(Born picky, cherry-sumers)’는 구매는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챙기는 사람 즉 ‘체리피커(cherry picker)’의 진화된 형태다.

소량구매·공동구매로 가성비 극대화

딱 필요한 만큼만 사는 ‘조각 전략’, 함께 모여 공동 구매하는 ‘반반 전략’, 계약 위반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말랑 전략’ 등 기존의 소비 방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며 효용을 극대화하는 지출을 보여준다. 편의점에서 소포장 형태의 신선식품으로 하루이틀치 장을 보고, 목적지가 같은 타인과 동승해 택시비를 아끼며, 필요할 때 OTT 서비스를 ‘징검다리’ 구독하는 등이다. 기업도 단기 보험 상품을 제공하거나 서비스 해지가 쉽게 제도를 바꿔 달라진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네 번째 키워드 ‘인덱스 관계(Buddies with a purpose: index relationships)’는 소통의 매체가 진화하면서 관계 맺기의 본질이 바뀌는 현상을 짚었다. SNS로 촉발된 목적지향적 만남이 오늘날 대세가 됐고, 사람들은 각종 색인을 뗐다 붙였다 하며 관계를 관리한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 ‘뉴디맨드 전략(Irresistible! the New Demand Strategy)’은 사지 않고는 못 배길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개발해 수요를 창출하는 방법론을 가리킨다.

여섯 번째 ‘디깅모멘텀(Through Enjoyment; digging momentum)’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를 파고들어 자신만의 ‘행복 버튼’을 찾으려는 매진을 뜻한다. 소위 ‘덕질’, ‘찐팬’ 같은 것들인데, 현실도피냐 건전한 취미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일상과의 조화다. 디깅은 자기 성장이라는 큰 지향점 아래 현실과 적절히 어우러져야 한다.

일곱 번째 ‘알파세대가 온다(Jumbly alpha generation)’에선 2010년 이후 태어난 어린 세대의 자기 중심성, 디지털 친숙성을 설명하면서 이들의 행복에 대한 사회 전체의 관심을 호소했고, 여덟 번째 ‘선제적 대응기술(Unveiling proactive technology)’에선 소비자가 필요를 깨닫기도 전에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불편을 해소하는 기술에 대해 소개했다.

아홉 번째 ‘공간력(Magic of real space)’은 사람을 모으고 머물게 하는 힘으로써 기술의 발달에 따라 가상현실이 정교해지는 가운데서도 브랜드와 상품의 가치를 한층 높여주는 공간의 역할에 대해 짚었다.

열 번째 ‘네버랜드 신드롬(Peter pan and the neverland syndrome)’은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더 젊게 살 수 있게 되면서 소위 ‘어른’의 전형적인 모습이 사라진 세태를 뜻한다. 나이 들지 않으려 하고, 아이처럼 쉽고 명랑하게 노는 것을 좋아하며, 어린 시절 장난감을 구입한다. 유아적 자기중심주의가 아닌 청년의 활기찬 기운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정리=나경태 기자




“트렌드 주목 필요하지만 결정은 내 생각대로”


전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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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전미영 연구위원은 2008년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첫 책이 출간될 때부터 함께 한 공저자다. 삼성경제연구소 리서치 애널리스트를 지냈으며 KBS ‘궁금한 이야기 장영실쇼’, tvN ‘김현정의 쎈터뷰’ 등에 출연했다. 12월 1일 전 연구위원을 전화 인터뷰했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1997년부터 소비 행태·소비 문화·소비 사회 등을 주제로 연구해온 김난도 모교 교수의 트렌드 연구팀을 모태로, 2004년 모교 생활과학연구소 내에 설립된 트렌드 분석·예측 기관이다. 출판뿐 아니라 컨설팅, 트렌드 교육 및 매거진 발간, 컨퍼런스 개최, 디지털 콘텐츠 제작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기업과의 협업은 활발한지.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등 IT 기업을 비롯해 식품·패션·유통·자동차·건설사 등 다양한 기업들과 함께 소비 트렌드 및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에 기반한 제품을 개발하거나 마케팅 전략도 짠다. 농심과는 2년에 한 번씩, 코웨이와는 최근 8년 동안 연속으로 함께 일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접점이 다양해져 많은 기업에서 찾아온다.”

-공저자의 수가 들쑥날쑥하던데.
“기본적으로 센터 소속 연구원들과 외부 교수를 영입해 구성한다. 학위를 받고 학계나 업계로 나가는 분들도 있고 센터에 새로 들어오시는 분들도 있어 유동적이다.”

-TV 드라마나 스마트폰 앱 같은 실생활을 파고드는 동시에 사회 전체의 변화를 조망한다. 집필 과정이 궁금하다.
“교직, 공직, 스타트업 및 대기업 등에 종사하는 200~300명 규모의 ‘트렌드 헌터 집단’을 운영한다. 매년 3월 출범해, 한 달에 한 번씩 트렌드 보고 등 과제 수행과 소비자 연구를 병행한다. 7, 8월쯤 대규모 워크숍을 열어 집단 토론을 통해 여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이후 집필진이 네 차례 정도 더 깊이 있는 워크숍을 열어 키워드를 정제해 쓴다.”

-나눠진 키워드의 전체를 꿰뚫고 일관된 톤을 유지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 듯한데.
“그 과정이 집필의 핵심이다. 김난도 교수의 역할이 크다. 원체 글을 잘 쓰고, 어렵고 생소한 개념도 일반인 눈높이에 맞게 풀어준다.”

-매년 10가지 키워드의 두문을 따 그해 띠에 맞춰 말을 만든다.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나.
“첫 책 출간 전 트렌드 분석한 것을 신문에 낸 적이 있다. 독자의 흥미를 끌자는 취지에서 띠를 접목했던 게 시작이었다. 한번 시작하니 중단할 수가 없어 계속하는데, 책 판매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더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일 때 반응이 좋았다.”

-트렌드 관련 조언 한 말씀.
“변화에 부응한다는 측면에서 트렌드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갖기 쉽다. 그러나 중요한 건 앞서가는 것, 남들이 모르는 것을 미리 아는 것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 언제쯤 확산될 것인가, 하는 타이밍을 맞추는 게 훨씬 중요하다. 어떤 면에선 트렌드를 쫓더라도 다른 면에선 자기 주관을 지키는, 그런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말씀 또한 드리고 싶다.”

협업 및 컨설팅 문의 snuct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