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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호 2021년 4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연고 하나 없는 곳서 6주 농촌체험…여기다 싶었다”

졸업 직후 경북 의성 정착한 이소향 동문


“연고 하나 없는 곳서 6주 농촌체험…여기다 싶었다”


졸업 직후 경북 의성 정착한
이소향 동문





도시보다 오히려 기회 많아
농사·창업 등 청년 귀촌 지원


“서울대라고 해서 의성에 못 사는 것도 아닌데요, 뭐.”

3월 30일 경북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 봄바람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소향(식품영양13-20) 동문이 멋쩍게 웃음지었다. 한 신문 기사에서 ‘소멸 위기 농촌에 정착한 S대 출신 젊은이’로 주목했다는 말에 돌아온 답이었다.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취업은 어떻게…’ ‘촌스러운’ 물음을 꿀떡 삼켰다. 대신 물었다.

“의성이 대관령 다음으로 춥다는데, 첫 겨울은 어땠나요?” “엄청 추웠죠. (평야를 가리키며) 여기 아무것도 없잖아요. 기온은 낮지 않은데 바람이 많이 불어요.”

대학을 갓 졸업한 1년 전 이맘때다. 이 동문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아무 연고 없는 이곳을 찾았다. 농사일용 허름한 옷과 세면도구, 카메라 한 대. 의성군이 처음 시작한 도시청년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 ‘청춘구 행복동’에 입주하기 위해서였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과 6주간 좌충우돌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의성에서의 첫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농사지을 생각도 없고, 딱히 창업 아이템도 없는데”. 모든 게 불편했다. 내일이라도 못 견디고 서울로 올라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6주의 프로그램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나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군민으로 전입신고까지 했다. 무슨 마음의 변화였을까.

“힐링 잘 했으니 돌아가서 취업 준비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죠. 마지막날 밤 의성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마음이 바뀌었어요. 어두운 표정에, 사진에 잘 보이지도 않던 제가 시간이 갈수록 환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같이 지낸 친구들도 하나같이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이 너인데, 네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서 힘들어 하면 슬플 것 같다’고 하고요.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되니까 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성에 오기 전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도시에선 뭘 해도 경쟁이었다. 요리 강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했다. 첫 학기에 학사경고를 받았다. 전공 공부는 재밌었지만 한 번 보고 이해하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가 많았다.

스펙 쌓기보다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았다. 아픈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학교와 집만 오갔다.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도 정하지 못한 채 맞이한 졸업.

그때 ‘청춘구 행복동’ 광고를 봤다. 서울서만 살고 농활 한 번 가본 적 없는 그가 농촌에 가겠다고 A4용지 7장 넘게 지원서를 썼다. “절실했던 것 같다”고 했다.

“청년 공동체로 다같이 뭔가를 만들어간다는 게 좋았어요.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여기선 남보다 잘나야 한다는 생각이 없고 오히려 내가 뭔가 하겠다면 친구들이 도와줬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간 힘들게 지냈는데,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어머니 얘기를 여기선 터놓고 할 수 있었죠. 언제 오냐고 재촉하던 가족과 친구들도 행복해 하는 제 모습에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이 동문은 지역 개발 업체(메이드인피플)에 취업해 자신과 같은 청년들의 귀촌을 돕고 있다. 계속되는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외지인인 이들과 지역 주민 간 소통도 담당한다.

청년이 적어 인구 소멸 위험 지역으로 꼽히던 의성에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누비는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단기 프로그램 체험자 절반 이상이 정착하고, 10명 이상이 전입신고를 한 건 지자체도 깜짝 놀랄 성과”다.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도 하러 온다.

“처음엔 외지 청년들이 와서 지원금만 받고 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죠. 일부러 마을에 찾아가서 ‘어머니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쓰레기도 줍고, 저희가 먼저 마을에 스며들려고 노력했어요. 이젠 식당 가면 알아봐 주시고, 지나가다가 ‘쌀 남았다, 너희 먹어라’ 하며 챙겨주기도 하세요.”




이소향 동문이 촬영한 의성 풍경. (제공=이소향 동문)


20~30대 나이인 청춘구 행복동 참가자들에겐 의성이 ‘제3의 고향’이다. 이들은 농촌에서 자립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고 주목받지 못한 지역 특산물을 상품화해서 창업한 사람도 있다. 

“도시보다 오히려 기회가 더 많다고 느껴요. 서울에선 창업 지원을 받으려 해도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에 여기 남는 것 같아요.”

이곳에선 밤마다 하늘에 별이 쏟아지고, 빌딩숲에 걸리지 않고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끝까지 볼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오길 잘했다’ 싶다. 그리고 뿌듯함이 있다. ‘도시에서 일했다면, 지금처럼 나와 비슷한 청년들을 위해 새롭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동문의 어머니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딸의 서울대 합격 발표날을 꼽곤 했다. 의성에선 대학을 굳이 밝히지 않았는데, SNS에 올렸던 졸업 사진이 알려진 후론 툭하면 ‘역시 서울대는 다르다’고 놀림만 받는다며 웃었다. “언젠간 지금의 경험에 전공을 접목한 일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대학에서 얻은 거라면 멋있는 사람들과 함께한 경험 같아요. 교수님과 선배님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 큰 프로젝트를 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휠체어 이용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영양식도 제공해주는 휴양시설을 지방에 세우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지금은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러 온 청년들이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목표예요. 열심히 하는 모습 지켜봐 주세요.”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