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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호 2023년 8월] 뉴스 기획

비어 가는 농촌에서 미래 가치를 봤다, 자연에 터 잡은 젊은 서울대인

이지현·강윤영·나현우·김요나 동문

비어 가는 농촌에서 미래 가치를 봤다 
자연에 터 잡은 젊은 서울대인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향했다. 녹음이 우거진 산이든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든 피서지에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냥 여기서 살까’ 그러나 휴식을 위해 잠시 머무는 자연과 생활의 터전으로 눌러앉은 자연은 엄연히 다를 터.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귀농한 40대 이하 젊은 동문들의 농촌 생활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농촌과 농업의 가능성을 자신하며 새로운 사업을 꿈꾸고 있었다.


농부의 멋 자랑하는 이지현 동문




이지현(대학원12-14) ‘뭐하농’ 대표는 농부의 멋, 농업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뭐든 하는 농부’다. 뭐하농은,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선 먹고 없어지는 농산물만으론 부족하며, 농업의 진가를 각인시키는 또 다른 활동이 절실하다는 깨달음에서 세운 농업회사법인. 2020년 1월 이지현 동문과 그의 남편을 비롯한 젊은 농업인 6명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농부는 사람과 자연을 동시에 살리는 가치 있고 멋진 일을 하는데, 직업으로서는 무시당할 때가 많습니다. 농민 스스로 농업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농부로서 계속 살아가려면 농업에 대한 제대로 된 철학이 문화·예술·교육의 형태로 대중에게 스며들어야 한다고 판단했죠. 당장은 아니지만, 멀리 보면 농업의 생존이 걸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농업의 가치, 농부의 멋을 더 깊이 깨닫기 위해 이 동문은 귀농 후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농부로서 느끼는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되짚었다. 결과로서 생산물을 소비하거나 판매해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농사짓는 과정 그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흙에서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생명력을 볼 때마다, 경이롭고 겸손해지며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고.

“행정안전부 ‘청년 마을 만들기 사업’을 맡아 귀농에 관심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봄이나 가을 경작기 때 두 달 간 살아보면서 농촌의 생활 주기를 직접 경험하고 이웃과 어울리며 삶의 터전으로서 농촌이 자신에게 잘 맞을지 생각해보도록 했어요. 동시에 ‘비즈니스 스쿨’을 운영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니즈와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교집합을 찾게 했습니다. 20여 명의 참가자 중 18명이 정착을 택했죠.”

청년들은 농촌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전직 승무원이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됐고, 새에 관심이 많던 전직 영화감독은 앵무새 브리딩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선후배가 동업을 시작해 막걸리 양조장을 차렸고, 이곳에서 만나 커플이 된 남녀가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다. 대부분 이웃에 살게 되는 까닭에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교류한다. 2021년 문을 연 ‘뭐하농하우스’는 저마다 생동하는 젊음의 에너지가 만나고 부딪치고 응축하고 버무려져 새롭게 발산되는 곳이다.
“뭐하농하우스는, 괴산의 제철 채소와 과일만 사용하는 디저트 카페로 일찍이 입소문을 탔지만, 더 정확히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복합 문화 플랫폼입니다. 자연 속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농부취향책방’은 지역사회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농촌의 아름다움을 담은 다양한 굿즈를 제작·판매하는 ‘로컬디자인편집숍’은 컵·엽서·노트·스티커 등 문구 팬시용품과 함께 농작물을 담는 패키지를 만들죠. ​세미나·포럼·강연 등 행사를 위해 마련된 ‘공유창작공간’은 인터넷과 개인 책상, 사물함도 갖춰 공유 오피스 역할을 합니다.”

마주 보고 나란히 줄지어 선 기둥에 커다란 ㅅ자 지붕을 올린 형태의 뭐하농하우스는 돌과 흙이 바닥을 가로질러 들어올 뿐 아니라 그 위로 풀과 나무가 심어져 건물이라기보단 거대한 그늘막 같다. 유리로 3면을 에워싸 안팎으로 거침이 없는 개방감도 그렇다. 뭐하농하우스의 핵심은 ‘모두의 밭’. 뭐하농 단지 한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 전체 1200평 부지 중 900평을 차지한다. 자연순환 농법을 기반으로 한 정원형 농장이자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 식재 디자인 모듈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모두의 밭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동반 작물을 심어 식물과 식물이 서로 돕게 하죠. 예를 들어 비트와 루꼴라를 함께 심으면 루꼴라의 매운 향기가 달콤한 비트 잎을 감춰줘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해주고, 비트 잎의 망간과 철 성분이 거름 역할을 해 루꼴라가 잘 자라게 해 줍니다. 잎의 생장 시기와 속도, 뿌리의 크기가 달라 서로의 생장에 방해가 되지도 않죠. 바질과 토마토를 같이 심으면 바질의 향이 토마토를 괴롭히는 벌레를 쫓고, 토마토는 바질 향에 지지 않으려고 당도를 높여요.”



이지현 동문의 뭐하농하우스 내부


뭐하농은 도시에서 다른 직종에 종사하지만, 자연과 함께 즐거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올해 ‘라이프 파머’ 멤버십 프로그램을 출시했다.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35명이 가입해 지난 봄 경작기 때 허브 씨앗을 심고 수확도 해 갔다.

“주말농장 같은 경우 구획이 나뉘어 자기 구역 작물만 돌보는데 반해, 모두의 밭은 그런 제약 없이 함께 돌보고 함께 수확의 기쁨을 누립니다. 전문 농사꾼이 멘토 역할을 해주고요. 시골살이의 즐거움에 눈 뜨게 해주는 ‘반딧불 야관회’, ‘김장나눔 파티’, ‘환영 파티’, ‘연말 파티’ 등 다채로운 라이프 프로그램도 마련했어요. 한 회원은 불면증 때문에 2년여 동안 약을 먹었는데, 희한하게 모두의 밭에서 일하고 간 날 저녁엔 바로 잠들더래요.”

뭐하농하우스에서 건강한 한 끼를 즐기는 ‘계절의 식탁’, 간편하면서도 맛있는 요리법을 배우는 ‘쿠킹클래스’를 괴산에 귀농한 유명 셰프와 함께 진행하며, 상품성이 떨어져 폐기되는 지역 유기 농산물을 활용해 제로웨이스트 비누도 만들면서, 라이프 브랜드 ‘엑스농(X_NONG)’을 런칭했다. 농업이 어디든 접목될 수 있다는 뜻에서 미지수 ‘X’에 ‘농업’을 붙여 지은 이름. 지난 4월엔 채소 구독서비스를 오픈, 상추 배추 같은 엽채류뿐 아니라 초당옥수수, 감자 등 괴산의 제철 채소와 건표고, 과일잼 등을 발송하고 있다.

그밖에 농부의 단상, 농부가 만난 농부, 농촌에서 사는 100가지 방법 등을 담은 뉴스레터 ‘인생경작’의 구독서비스를 준비 중이며, 농촌의 일상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체험 전시공간이자 공간 프로젝트 ‘농작소’를 오는 9월 오픈한다. 어떻게 이 많은 일을 감당하느냐는 물음에, 농업에 진심인 함께하는 직원들도 있고 지역사회 인사들과의 협업도 많다며 “외부에서 보면 무척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저는 그저 재밌게 놀고 싶어서 저지르는 일들”이라고 답했다. 거의 잠을 안 자고 일한다는 건 반전.

“귀농을 준비할 때 열심히 알아봤어요.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을 찾아봤고 표고버섯을 선택했죠. 2017년 표고버섯 특산지인 충북 괴산군 감물면에 둥지를 틀어 귀농 3년 만에 도시에서 벌던 수입을 넘어섰습니다. 지금은 버섯 농사는 거의 못 하고 뭐하농 사업에 올인하고 있죠. 벌이로 따지면 표고버섯이 훨씬 좋습니다. 직원들 월급 챙겨주고 나면 제게 돌아오는 몫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러나 저희가 추구하고 내세우는 가치에 진정성을 담으려면 돈에 연연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여러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품농산물 생산하는 강윤영 동문




올해 2월 귀농한 새내기 농업인 강윤영(대학원13-15) 동문은 농산물 브랜드 ‘농부로’를 운영하는 농촌연구소 대표다. 농부로는 ‘농촌으로 돌아오는 길, 또 농촌이 잘 사는 길’이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강 동문이 경남 밀양에서 부모님과 함께 경작한 쌀·감자·초당옥수수 등을 취급한다.

모교 졸업 후 강윤영 동문은 베트남 현지의 대형 유통회사에서 마케팅팀장으로 일했었다. 일벌레였던 그는 휴가를 받으면 귀국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몸을 추스르면 베트남으로 돌아가 다시 격무에 시달렸다. 문득 나를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뭘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고등학생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어요. 서울로, 베트남으로 타지 생활을 하도 오래 해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꿈이 됐죠. 제 아버지는 1991년 기계화영농사로 전국을 다니시며 경지정리 및 영농대행 사업을 하셨습니다. 2000년엔 트랙터용 쟁기 실용신안을 등록하실 정도로 국내 농업 기계 영농화에 노력하셨고, 2004년엔 호치민 농업기술전문대에서 기계화 영농교육을 가르치는 등 베트남 농업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셨죠.”

2006년 귀국한 강 동문의 부친은 쌀·감자·배추 등 10여 개 작물을 대상으로 기능성 농산물 개발에 돌입했다. 수차례 현장검증을 거쳐 2019년 나노 유기 게르마늄 및 나노 유기 셀레늄을 동시에 함유한 기능성 작물 재배에 성공했다. 2021년 국내 특허를 받았고 2022년엔 미국, 중국, 베트남, 유럽, 일본 등지에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맛, 안전뿐 아니라 먹거리를 통해 건강을 지키는 메디푸드의 시대, K-농산물의 시대를 열고자 온가족이 힘을 모은다. 강 동문이 농부로의 농산물을 ‘명품’이라고 일컫는 이유.

“농부로의 경작물은 45년 경력의 전문 농업인이 17년 넘게 현장 실험과 검증을 지속해 획득한 특허 농법을 적용해 재배됩니다. 인체에 부족해지기 쉬운 필수 미네랄과 다양한 약리작용을 하는 유기 게르마늄까지 한 번에 섭취할 수 있게 해줘요. 나노 크기(머리카락 굵기 10만분의 1)의 유기 셀레늄과 유기 게르마늄을 농작물 옆면에 살포함으로써 해당 함유량을 조절할 수도 있죠. 현미 소화가 부담스러운 분들이나 혈당 관리가 필요하지만 백미를 원하는 분들에게 특히 좋습니다.”

현미·5분도미·7분도미·백미 등 농부로 쌀은 맞춤 도정도 가능하다. 딸기, 포도보다 달콤한 초당옥수수도 인기.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수분함량이 많아 가볍게 즐기는 간식으로 좋다. 일반 옥수수와 달리 물에 오래 닿으면 당분이 빠지니 물에 직접 넣어 삶는 것보단 찜기를 이용하거나 지퍼백 등에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익혀 먹는 게 더 맛있다. 껍질을 벗겨 흐르는 물에 씻어 생으로 먹을 수도, 냉동고에 넣어 얼렸다가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게 먹을 수도 있다.



노을 아래 황금물결을 일으키는 강윤영 동문과 부모님의 경작지.


“산업화 시대, 지금은 기성세대가 된 농촌 청년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났습니다. 저는 제 또래 청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농촌으로 돌아오는 시대를 꿈꿉니다. 우리 농촌의 고품질 농산물이 더 널리 알려져 그에 합당한 값을 받고 팔려 열심히 농사지은 농부들이 부자로 사는 시대를 꿈꿉니다. 청년들이 그런 꿈을 품고 농촌으로 몰려오길 바라고요. 농촌엔 없는 게 많지만, 있는 것도 많습니다. 계절을 벗 삼아 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과 옆 동네에서 재배되는 또 다른 품종의 과실들, 길 가다 마주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도시와 다를 뿐 누리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농촌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강 동문은 귀농·귀촌에 관한 책과, 지역 작가와 공동 제작하는 웹툰 등 다양한 농촌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유튜브로 소통하는 나현우 동문



나현우(소비자아동10-20) ‘곰도리다육’ 대표는 모교에 재학 중인 2013년 다육식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매출은 해마다 유동적이지만 다른 사업모델에 비해 수익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올해는 3억3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전망. 5개 동 1000평 규모 농장에서 약 500여 종의 다육식물을 재배한다.

다육식물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이파리나 줄기에 물을 저장하는 식물을 말한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부터 국내에 자생하는 품종도 있고, 수입되거나 만들어진 새로운 품종도 있다. 2000년대부터 관상식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해 2015년을 지나면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다육식물이 다양해졌다. 우리가 잘 아는 선인장도 다육식물의 일종. 나현우 동문은 어머니가 취미로 다육식물을 기르는 것을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었다.

“그때그때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을 좋아해 ‘한번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사무를 보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더 적성에 맞기도 했고요. 금전적 보상도 나쁘지 않아 마음을 굳혔죠. 사업의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은 무거웠지만, 스케줄 조정이 비교적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어요.”



나현우 동문이 재배하는 다육식물

나 동문이 꼽는 다육식물의 매력은 계절에 따른 극적인 변화. 특히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은 계절엔 더욱 선명한 색감과 통통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관리가 까다롭지 않아 단순한 생육조건만 이해하고 제공하면 누구나 쉽게 다육식물의 예쁜 모습을 볼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피가 커지는 관엽과 달리 다육식물은 나이가 들수록 외려 작아지면서 색감이 더 선명해져 10년 이상 무난히 키울 수 있다.

나 동문은 그럴듯하게 꾸미고 몇 만원씩 받는 것보단 그저 저렴한 것을 골라 일단 키워보면서 안목을 높여가길 권했다. 예전보다 많이 안정되긴 했지만, 다육식물은 시장 규모가 작아 몇몇 유통망에서 짜고 가격을 교란, 소비자의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고.

“농업 종사자를 좀 낮춰 보는 사회적 시선은 잘 알지만 저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아요. 다만 시장을 어지럽히는 몇몇 동종업계 종사자의 행태에 대해선 무척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다육식물은 작은 규모로도 농장을 시작할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거든요. 초기 투자비용 대비 물건 단가가 높다 보니 한탕 벌고 빠지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들어오는 업자도 적지 않죠. 유튜브 채널을 열어 다육식물과 다육식물 시장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이유입니다. 소비자가 현명해져야 해요.”

나 동문은 다육식물을 테마로 한 ‘가드닝센터’를 구상하고 있다. 취미농과 직업농이 한 곳에서 만나 교류하는 일종의 원예상품 아울렛. 농사에 관심 있는 도시 사람에겐 농촌 체험이나 작물 혹은 농경 장비를 제공하고,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겐 관련 교육도 제공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농삿일에 드론 활용 김요나 동문




김요나(대학원06-08) 친환경농업연합회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모교 박사 출신 농사꾼이다. 2008년 자연대 석사, 2015년 수의대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나 2018년 아버지가 간암 진단을 받고 생업에 종사하기 힘들어지면서 귀농했다. 직전까지 전북 정읍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에서 일했던 김요나 동문은 위로 형이 있지만, 해외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까닭에 부모님을 모시게 됐다. 2013년 결혼해 슬하에 2녀 1남을 둔 가장이다.

“전 직장이 아버지 계신 본가와 멀지 않았어요. 저도 가정이 있기에 거리와 별개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저의 비전과 아이들 장래, 부모님 건강, 경제적인 문제 등 많은 것이 떠올랐죠. 부모님께서 힘들게 농사지어 긴 시간 뒷바라지해주셨어요. 그런 부모님과 우리 가족이 좀 더 오래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 생각 하나로 내려왔습니다.”

5년이 넘었지만, 농사는 여전히 어렵다고 말하는 김 동문. 그래도 웬만한 농기계는 다 다룰 줄 알게 됐고, 한 해 농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현재는 농업을 6차 산업으로 연계하는, 능동적 수익 창출 모델을 구상 중이다.

김 동문이 생산한 쌀은 주로 함평군 내 학교에 급식으로 납품되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학생 수가 줄어 소비가 여의치 않은 상황. 광주, 부산 등 농경지가 드문 인근 도시의 학교에 진출해 판로를 개척하는 것은 물론 부산물인 쌀가루를 활용해 거래처 학교 학생들에게 체험학습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가까운 지역에 사는 동료나 친구들은 주기적으로 놀러 옵니다. 함께 일했던 시절 이야기와 육아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꾸준히 오가는 친구들은 회색빛에 익숙한 도시의 아이들에게 시골 생활의 다채로운 즐거움과 재밌는 추억을 만들어 준 것 같다며 굉장히 좋아들 합니다. 이에 착안해 농촌의 즐거움을 체험학습 형태로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접목해보려고 해요. 1차로 쌀을 생산하고, 2차로 제빵용 쌀가루를 만들고, 3차로 체험학습을 서비스하는 6차 산업인 거죠.”



드론으로 친환경약제를 살포하는 김요나 동문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친환경 약제만 사용해 유기농 쌀과 밀을 생산하는 김요나 동문. 환경을 위하는 일은 대개 손이 많이 가고, 생산비용도 좀 더 들어가지만, 오리농법, 쌀겨 농법 등 친환경 농업을 개척해 지역사회에 전파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 앞으로도 환경을 해치지 않는 건강한 농산물만 재배하겠다고 말했다. 인력충원과 공장 리모델링을 마치면 온라인 커머스 등 다양한 판로를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계획이다.

“이웃 영농인들은 대부분 제 아버지뻘 되기 때문에 40대 초반인 저를 어리게만 봅니다. 아직 신입 딱지도 안 떼줘요. 수의학박사 타이틀을 명함에 넣었더니 나름 효과가 있더군요(웃음). 지도교수셨던 성제경(수의학86-90) 교수님께서 매년 먼저 안부 전화를 주십니다. 올 초에도 제가 생산한 농산물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하니 연락 달라고 하셨죠. 모교에 재학하는 근 10년 동안 잘해주셨는데 도리를 못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김 동문은 ‘좋아하는 일이 있고,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게 궁극적인 자녀교육 목표라고 말했다. “많은 걸 보여주고 알게 해주고 싶은데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하면서도 자연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을 볼 때 제일 행복하다고 전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