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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2021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시애틀서 1시간 거리 숲속, 월 100만원으로 사는 행복”

온가족 미국 시골살이 하는 박혜윤 동문


“시애틀서 1시간 거리 숲속, 월 100만원으로 사는 행복”


온가족 미국 시골살이 하는 박혜윤 동문



미국 알링턴에 거주하는 박혜윤(왼쪽) 동문과 남편 김선우씨.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다양”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 출간


‘말은 멋있는데, 좀 이상하다’. 20여 년 전, 영문과 전공수업에서 ‘월든’을 읽은 박혜윤(영문94-98) 동문의 감상은 이랬다. 호숫가에 움막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산 헨리 데이비드 소로. 본받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동경한 것은 ‘조화로운 삶’을 쓴 스콧 니어링 부부. 일간지 기자 시절 사내연애로 만난 남편 김선우씨와 첫 아이를 봤을 무렵이다. 숲으로 들어가서 완벽한 무소유를 실천한 니어링 부부처럼 살아보자 설득하고, 싸우고, 포기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박 동문은 숲속에 산다. 미국 시애틀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알링턴의 100년 된 주택에 40대에 은퇴한 남편, 두 딸과 함께. 정기적인 임금노동 없이 통밀을 갈아 빵을 굽고, 야생 블랙베리와 나물을 채집하며 네 식구 100만원 안팎으로 먹고산다. 벌써 7년째. 그 삶의 깨달음을 담아 최근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냈다.

왜 ‘자본주의자’일까. 이메일로 만난 박 동문은 “내 삶을 실험하는 것이다. 그 실험에서 절대 바뀌지 않을 조건이 자본주의”라고 했다. “이 외진 곳에서도 사회와 깊이 연결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건 자본주의 덕분임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는 것.

처음엔 친환경 농사를 지어 가까운 도시에 직판할 계획이었다. 음식다운 음식을 높이 쳐주는 미국인에게 통하리란 심산이었다. 번아웃이 왔다며 도시를 떠나온 남편과 열심히 농사를 배웠다.

사슴이 그 계획을 망쳤다. 애지중지 틔운 새순만 귀신같이 뜯어먹은 흔적을 보면 ‘살의에 가까운 적의’가 들었다. 그런데 그 증오심이 생각을 바꿔놨다. ‘미워하며 사느니, 사슴처럼 살아보자’고.

“일단 몸이 편해요. 더 좋은 건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버릇을 단박에 고친 거죠. 농약 쳐서 대량생산하는 농산물은 나쁘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이 많은 인구가 굶어 죽거나 야생동물과 싸우는 것보다 낫겠더라고요. 살아남으려 안간힘 쓰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알았죠. 그 일부인 저도 최선을 다해 살아남기로 했어요. 문명의 혜택도, 야생 블랙베리도 잘 이용하면서요.”

야생 채집이 근간인 식생활이지만 국수 뽑고 된장 담그는 밀과 콩은 자본주의의 생산성에 감사하며 저렴하게 사온 것이고, 아이들 생일엔 패스트푸드도 즐긴다. 코로나19 이전엔 빵을 구워 팔았다. 자연발효만 고집했던 소로와 다르게 이스트를 넣어 만들었다.

전기오븐, 압력솥 같은 ‘문명의 이기’도 삶을 편하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판단하면 들여놓는다. 낡은 집 수리, 머리 손질은 직접 하는 일. “모든 건 이 시대의 혜택과 우리만의 개인적인 결정이 합쳐진 것. 옛날 방식이라서, 현대적인 기술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고 자신만의 행복을 설계해서 행복한 것이다”. 특이하지만 완고하지 않다.




미국 시골살이 중인 박혜윤 동문의 생각이 담긴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 


고교 2학년, 초등 4학년 두 딸이 기꺼이 그의 ‘실험’에 동참하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 박 동문은 워싱턴대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가 안 되어도, 언제나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가슴 뛴다고 했다.

“루소의 ‘에밀’에 나온 ‘자연의 교육’이란 아이가 타고난 본성을 사회 안에서 어떻게 유지하고, 꽃 피우듯 발전시켜 나가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이해했어요.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화와 개성이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시대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취해야겠다 싶었죠. 타고난 본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거칠게 말하면 좋은 대학 나와도 취직이 안 될 수 있고 취직 돼도 고민 끝이 아니란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자세를 길러주려고 해요.”

‘자본주의자’답게 “아이와 놀고, 국수를 함께 만드는 모든 시간이 기회비용”임을 알기에, 더욱 ‘살아있는 순간’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물과 소금 양을 맞추고, 밀가루의 촉감을 느끼고, 이야기를 나누던 경험이 무수히 쌓여 어느 날 완벽한 침묵 속에 손이 착착 맞아 국수를 만들어 냈을 때, 우린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걸 얻었음을 실감합니다.”

필요한 만큼만 벌겠다는 초연함엔 ‘믿는 구석이 있겠지’ 의심도 따른다. “빚은 없으니 풍요로운 셈”이라며 부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10년 정도 치열하게 벌고, 모으고, 투자도 했어요. 그 노력조차 사회적 지지와 교육이 있어 가능했고요. 저흰 돈 벌기를 거부한 게 아니에요. 숨 막힐 정도로 열심히 벌고, 모으고, 그러면서도 모자랄까봐 두려워하길 멈춘 것뿐입니다.”

김선우씨가 수영장 안전요원 아르바이트로 버는 것을 제외하면 부부의 수입엔 여전히 지식 노동의 비중이 높다. 자녀교육과 일상, 은퇴생활, 독서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서 ‘노멀 피플’이란 이름의 이메일 구독서비스를 운영한다. 사실 삶의 마디마다 매듭짓듯 꾸준히 책을 냈다. “막연히 영어 잘하려고 간 영문과에서 ‘자기 생각을 제대로 글로 써야 한다’고 배운 영향이 컸다”고 했다.

지금의 삶을 과시하거나 자신처럼 살기를 권하려는 게 아니다. 니어링 부부의 완벽함엔 닿기 힘들었지만, 소로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박 동문은 소로의 말처럼 ‘삶의 골수’를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길 바란다.

“우리 부부가 정규직을 그만뒀을 때, ‘그만큼 배웠으면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 참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모든 사회 기여가 똑같은 모습은 아니죠. 제가 글로 전달하고 싶은 건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개인의 일상에 의미를 주는 사소하고 시시한 질문들요.”

박수진 기자


▷박혜윤 동문의 글을 볼 수 있는 블로그: blog.naver.com/wildwild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