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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2016년 10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기록의 대가 김안제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57년 서울대 등록금 2만1,215원, 72년 전임강사 월급 5만원”

기록의 대가 김안제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57년 서울대 등록금 2만1,215원”



숨이 턱 막혔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2,700페이지 인생백서를 받아들고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칠순까지 일기, 사진, 노트필기, 상장, 가족 대소사 등을 빽빽하게 정리했다. 기록 항목만 765개. 골프일지에는 라운딩 멤버, 타수, 스폰서한 사람까지 기입했다. 평생 수입, 지출도 월별로 정리했다.


심지어 그동안 피운 담뱃갑, 마신 소주병 수까지 나온다. 김안제(물리57-62) 모교 환경대학원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올해 팔순을 맞은 김 동문은 지난 10년간의 자료를 업데이트한 ‘안제백서’를 연말 재발간할 예정이다. ‘기록의 대가’에게 서울대 역사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청했다. 지난 9월 27일 건국대동문회관 6층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건국대 석좌교수로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웃음) 초등학생 시절 만화와 동화책을 많이 읽었어요. 4학년 때인데, 책을 한참 읽다보면 전에 읽었던 책이에요. ‘읽은 책을 기록해뒀으면 시간 낭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만화는 만화대로, 동화는 동화대로 책 목록을 가나다식으로 분류, 정리했습니다. 책에서 시작된 기록 항목이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개로 불어났죠.”


-귀찮지 않으세요?
“이 안 닦고 출근길 지하철 타면 어때요? 찝찝하죠? 저는 기록하지 않으면 찝찝합니다. 기록을 하면 자기에게 정직해지고 생활이 성실해집니다. 때론 기록하고 싶지 않은 가정사도 있지만, 다 적었어요. 반성할 기회가 됩니다.”
인생백서에는 좋고 기뻤던 일과 슬프고 괴롭던 일로 나눠 매일의 감정을 기록한 항목이 있다. 슬프고 괴롭던 일에 아내와의 불화(1990년 7월 29일 처와 언쟁을 하고 호암관에 혼자 투숙함), 자녀와의 갈등 등이 솔직하게 기록돼 있다. 부모의 일생에 대해서도 남겼는데 ‘1936년 1월 부친 오랫동안의 예골 고씨댁 머슴살이를 청산하고 독립생활을 시작하다’는 내용이 있다.


-기록외 수집물도 많던데 어디에 보관하셨어요?
“2006년 전주 한국종이박물관에 모두 기증했습니다. 3톤 트럭에 가득 차더군요. 그 전까지 캐비닛에 항목별로 분류해 보관했죠. 이사 갈 때가 좀 힘들었는데, 혹시 분실될까봐 기록물들은 제 차로 옮겼어요. 아내가 싫어했죠. 종이박물관을 만든 한솔제지에서 가져간다고 했을 때 저는 좀 망설였는데 아내는 좋아했죠.(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아요. 언제 전주 내려가시면 박물관 한 번 들러보세요. 통장, 여권, 필기노트 등 제 기록물들이 잘 보관, 전시돼 있습니다. 이후 쌓인 기록물들도 기회를 봐서 기증해야죠.”


-1957년 입학해 2002년 퇴임까지 45년을 서울대에 계셨죠. 관련 기록도 많겠는데요.
“성적표부터 필기 노트, 논문, 행사 사진, 월급 명세서 등 아주 많죠. 특히 노트가 많습니다.”


-입학 당시 등록금은 얼마였나요?
“1957년 1학기 등록금이 2만1,215원이었습니다. 그때 한 학기 생활비가 3만6,368원이었으니 수업료가 저렴한 편이었죠. 4학년(1961년) 1학기 등록금이 5만3,745원이었고요. 1963년에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당시 등록금이 6만9,100원입니다.”


-교수 월급은요?
“1972년 5월 10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전임강사로 발령받아 공식적인 교수직을 갖게 됐습니다. 그때 월평균 보수가 5만원입니다. 1982년 부교수 때는 67만원, 1992년 정교수 시절 150만원, 퇴임 때인 2002년 527만원입니다. 학교에서 받는 보수보다 외부 활동으로 받는 게 많았어요. 1972년 수고비(위원회 활동 등)가 월평균 9만원, 1982년 210만원, 1992년 645만원, 2002년 532만원 이었으니까요.”


-그 외 서울대 역사 관련해서 어떤 기록이 있을까요.
“인생의 절반을 보낸 곳이고 가장 왕성한 활동시기니 기록물이 어마어마하죠. 1973년 행정대학원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가 승격해 환경대학원이 발족됐습니다. 당시 동숭동 교정에서 찍은 현판식 사진이 있습니다. 1995년 1월 환경대학원에서 고위정책과정(SGS) 준비위원장을 맡아 일했던 당시 기록들이 있고요.”




팔순 맞아 1700쪽 분량 ‘안제백서’ 출간 계획
11살부터 기록·수집한 자료만 3톤 트럭 가득



-책에 보면 바나나 시식 및 운동화 착화 11세(1946년), 이발관에서 이발 12세 등 재미있는 기록이 많습니다. 담배, 소주병 수까지 나오던데, 최근까지 업데이트된 양은 얼마입니까.
“담배를 33세부터 폈습니다. 지금까지 못 끊고 피고 있는데 2만5,000갑 됩니다. 술은 맥주, 양주, 막걸리, 와인 등 여러 가지를 먹잖아요? 소주로 환산해서 2만3,000병 정도 마셨어요.”
인생백서에는 개인사 자료 외에도 ‘객설 : 경험에서 얻은 진실’이란 제목으로 중간 중간 에세이, 단상 등이 나온다. 그 글만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도 좋을 정도로 위트와 통찰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글이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결혼한 남편에게 어떻게 해 줄까? 남자의 생리를 잘 알고 있으니까 입의 혀처럼 잘해 줄까, 아니면 남자의 심리를 잘 조정하여 손아귀에 거머쥘까? 그때 가서 만난 남편의 질과 수준을 보고 결정해야겠다.’


-올해 팔순이신데, 업데이트된 인생백서가 또 나옵니까.
“지난 10년간 기록을 보완해 1,700페이지로 요약한 책이 곧 나옵니다. 비교표 등을 많이 뺐어요. 책 제목은 이름을 따 안제백서로 정했어요. 칠순 때 발간한 인생백서가 국한혼용으로 쓰여 한글세대들이 읽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한글화 한 것도 이번 책의 특징입니다. 후세 사람들에게 한 사람의 한국인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했는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한 인생의 종합보고서입니다. 왕조사만 있고 민속사(民俗史)가 없는 우리 현실에서 먼 훗날 값진 문헌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셨는데 전혀 다른 길로 가셨어요.
“노벨상을 받고 싶어서 물리학과에 갔습니다. 안동 사범학교 출신인데, 선생님들에게 무슨 분야를 공부하면 노벨상을 탈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웃어요. 그러면서 물리학과가 좋지 않겠냐 하시더군요. 제가 수학, 과학을 잘 했습니다. 입학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꿈같은 일인 겁니다. ‘저 훌륭한 은사님들도 노벨상을 못 받았는데, 내가 감히 어떻게….’ 포기하고 찾은 게 행정학 분야 입니다.”
김 동문은 지방자치 행정학의 권위자다. 2003년 신행정수도건설 추진위원장을 맡아 세종시 이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 ‘세종시 이렇게 만들어졌다(보성각)’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악캠퍼스가 포화 상태고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세종시 분교 건립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관악캠퍼스 종합화 계획 아래 농생대, 수의대, 보건대학원이 모두 왔어요. 그러다 다시 농생대는 평창캠퍼스를 짓기도 했죠. 시흥캠퍼스 건립도 추진되고 있고요. 과밀 상태인 건 분명해요. 신행정수도 위원장 때부터 서울대 세종시 분교를 제안했습니다. 세종시가 성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서울대가 큰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


-행정수도를 이전한 것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초기에 비효율,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과거 서울에 있던 정부 부처 일부가 과천으로 갔을 때도 부작용이 상당했습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요. 또 차관급 부서를 대전으로 이전했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차츰 안착이 됐죠. 하물며 세종시가 하루아침에 되겠습니까. 문제는 국회, 청와대인데, 저는 세종시로 가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 국토균형 발전, 수도권 인구 분산 위해 한 거니까 그렇게 돼야죠.”


-역대 많은 정부와 일을 해 왔습니다. 내년이 대선인데, 원로로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통일의 의지와 슬기를 가진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갖고 있었지만 방법을 잘 못 찾았어요. 국제관계 등 쉽지 않죠.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와 묘법을 찾는 슬기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선진국 문턱에 걸려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국민 화합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집안도 화합해야 뭐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김남주 기자



지방자치 행정학의 권위자


김 동문은 지방자치 행정학의 대부로 불린다. 1937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 물리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미국 신시내티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지역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토지개발공사 이사,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이사,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한국지방자치학회장, 청와대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모교 명예교수이자 한국자치발전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지방자치발전론’ ‘인생백서’ ‘오자성어 집해’ 등을 펴냈으며, 보국훈장 천수장·국민훈장 동백장·서울시 문화상 수상에 이어 지난해에는 문경문화대상·지방자치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