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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호 2016년 5월] 뉴스 기획

스승의 날 특집 : 나를 키운 은사님을 그리며

동문 500명 대상 '기억에 남는 대학 은사' 설문 결과



나를 키운 은사님을 그리며



스승의 날을 맞아 동문 500명을 대상으로 ‘기억에 남는 대학 은사’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김노경(의학58-64) 의학과 명예교수, 고 허문회(농학48-54) 식물생산과학부 명예교수, 고 이응백(국어교육46-49)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등 405명의 교수가 꼽혔다. 본지는 이번 설문 자료를 토대로 각 단대별로 많이 언급된 교수 15명을 선정해 이분들과 얽힌 추억담을 소개한다.
*사진 및 이름은 은사, 글쓴이는 말미에 표시




“냉정함 뒤에 따스함 품은 의사”

김노경 / 의대



88년 2월 혈액-종양내과 송년 모임에 선생님께선 당일 대통령 주치의 자리를 마치고 참석하셨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일어설 무렵, 귀갓길을 모시고자 차를 황급히 대기시키고 오르시기를 권유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선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대통령 주치의로서 기사가 딸린 차량이 배차됐던 터이고 날씨도 추워져 제자이자 후배인 저희들로선 자연스런 반응이었지요.


그러나 선생님께선 ‘네, 괜찮다구요. 난 지하철 타면 갈아탈 필요도 없이 한 번에 갑니다. 이렇게 빠르고 편한 지하철이 있는데 내 걱정들은 말고 남은 시간 재밌게들 보내세요’라는 말씀을 남기시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철역으로 향하시는 겁니다. 순간 모두들 당혹하면서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당신 갈 길을 가시는 선생님을 감히 만류하지 못했지요.

평소 원칙적이고 공사의 구분이 명확한 분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 역시 우리 선생님께서는…’이라는 감탄과 존경의 외마디가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의학과 75학번 제자



“한문학·고고학 능통한 농업인”

고 허문회 / 농생대


통일벼육종학자이신 허문회 교수님이 어느날 댁으로 부르셨습니다. “김 군은 시인이니, 내가 은퇴한 후 지은 한시(漢詩)인데 우리말로 번역한 시를 검토해 주게.” 한시 중 허 교수님이 당신이 묻히실 묘지를 정해 놓고 오신 후 쓰신 시를 읽다가 뜻밖에 지으신 환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농학과 63학번 제자


졸업 후 회사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손수 먼 길을 오셔서 상담하고 고민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농학과 78학번 제자


한국 벼농사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고고학적인 접근과 인문학적인 접근을 시도하시면서 중국 한문학 전문가 및 서울대 고고학과 교수님들과 소통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농학과 81학번 제자





“악필 고쳐줘 글 쓸 때마다 생각”

고 이응백 / 사범대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시고 개인적인 상황에 깊은 관심을 갖고 늘 배려해주셨습니다. 교수님은 제 지도교수도 아니었고 그냥 제자들 중 하나였을 뿐인데도 제가 유학하고 있을 때, 귀국해서 교수로 있을 때 등 저를 기억하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국어교육학과 58학번 제자


학생일 때나 졸업한 뒤에도 선생님은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뵐 때마다 위안과 힘을 얻었습니다. 학부 졸업논문 지도교수를 흔쾌히 맡아 주셨고 졸업 후 취업에 힘써 주셨으며 결혼 때 주례를 서 주셨습니다.
국어교육학과 63학번 제자


저는 악필 중의 악필이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제 글씨를 보시고는 그게 손으로 쓴 글씨냐 하시면서 펜글씨 교본을 한권 주셨습니다. 이후 한 달 넘게, 등교하는 날마다 펜글씨 교본을 들고 선생님 연구실에 가서 숙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글씨체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지금도 손으로 글씨를 쓸 때면, 그때 선생님께서 지도해 주시던 그 열정이 생각납니다. 국어교육학과 64학번 제자



“강의 때 불러주신 노래 못 잊어”

오봉국 / 농생대



양계학 강의 첫 시간에 뜻밖에도 헨델의 라르고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때 받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감동으로 지금도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축산학과 56학번 제자


부산 지역 선배님들과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격의 없이 대화하는 모습과 ‘노털카’라는 신선한 주법(酒法)을 알게 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축산학과 83학번 제자


고향을 떠나 공부하면서 부모님처럼 큰 의지가 돼주셨습니다. 시골 사정을 감안해서 근로 장학생도 추천해주시고 기타 장학금도 많이 주선해주셨습니다. 동물자원학과 87학번 제자








“교수돼 보니 교수님 못 따라가”

고 박동서 / 행대원



난생처음 대학 강사로서 강단에 설 수 있도록 천거해 주셨습니다. 한국최초로 인사 관리자 모임을 창설하게 도와주시고 한국판 Civil Service commission을 우리 정부에 설치케 하는 운동에 격려와 도움을 주셨습니다. 행대원 석사 65학번 제자


강의실 긴 탁자 모서리에 한 사람의 수강생을 마주하시고 앉아 주 3시간 16주를 단 한 시간도 거르지 않고 수업하셨습니다. 수업시간은 학생 발표 절반과 교수님 강의 절반이었죠.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면 감동이 밀려옵니다. 저 또한 교수를 하면서 선생님이 보이신 모범을 따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고 또 절감합니다. 행대원 박사 79학번 제자







“‘한 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 실천”

고 이한기 / 법대



특별한 일화는 없지만, 항상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졸업한 지 44년이 지나도록 잊을 수 없는 분이 이한기 스승입니다. 요즘 법대나 법학전문대학원에 적을 두고 정치성 발언에 치중하는 몇몇 법대 교수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법학과 68학번 제자


법학은 나라를 위한 학문임을 강조, 항상 이신작칙(以身作則)과 화이불류(和而不流)를 당부하셨습니다. 가르침은 졸업 후에도 계속하셨습니다.
교수는 ‘한 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라는 생각으로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셨고 그렇게 실천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행정학과 제자















동문 500명이 답한 ‘기억에 남는 스승’ 405명의 이름을 카네이션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연구실서 야한 사진 본 것 죄송”

조유근 / 공대


1992년 언젠가 박사과정 때 일입니다. 당시 떠오르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써본답시고 야한 사진 사이트를 열심히 탐닉 중이었죠. 뒤에서 누군가가 ‘어떤 처자가 어찌 저리도 홀딱 벗고 저러누’ 하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아이 쫌 가만히 있어 봐요. 중요한 일 하고 있는데…’ 라며 무시했는데, 아뿔싸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느낌이 이상하더라구요. 돌아봤더니 지도교수님이신 조유근 교수님께서 떡하니 서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1초 동안 오만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난 이제 죽었다’부터 ‘난 졸업은 끝났다’, ‘아∼ 랩을 옮겨야 하나?’


그러던 찰나! 교수님께서는 ‘건강 나빠진다. 너무 많이 보지 마라’ 하시며 제 어깨를 툭 치고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연구실을 나가셨습니다. 그 때 연구실에서 야한 사진 봐서 죄송했습니다. 컴퓨터공학과 86학번 제자






“교수님 한마디가 자퇴결심 꺾어”

박인수/ 음대


26살에 늦깎이로 성악과에 진학했으나 한참 밑인 동생들의 놀라운 소리에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섣부른 판단과, 입학한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에 자퇴를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첫 레슨 때 ‘네게도 좋은 점이 있구나’란 한 마디에 용기를 얻어 대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고, 지금껏 노래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성악과 83학번 제자










“겨울 밤 전기장판 데워 주신 분”

이영환 / 보대원



24년 전, 아이 셋을 둔 가장인 저는 대구에서 전일제 주간 석사과정을 공부하러 매주 오르내리느라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힘들고 고달팠습니다. 지도교수님인 이영환 교수님 몰래 연구실 조교석 책상에 엎드려 자기를 며칠째, 아침 일찍 연구실 문을 여시던 교수님께 들키고 말았죠. 부끄럽고 죄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제게 교수님은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같이 기거하자고 제안하셨고, 뜻밖의 제의는 제게 고민할 여유도 주시지 않고 그날 저녁부터 그대로 현실이 됐습니다. 사모님 또한 자애로운 어머님처럼 언제나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셨지요.


야간수업이 끝나는 늦은 밤까지도 교수님은 언제나 저를 기다려 주셨다가 함께 도봉산역까지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셨고, 단 한 번도 버스 토큰 한 개조차 내지 못하도록 언제나 제 토큰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아이를 셋이나 두고 지방에서 공부하러 오기가 얼마나 어려울 텐데 그런 버스 토큰 하나라도 아꼈다가 아이들 분유라도 사주라시던 아버지같은 말씀은 24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그해 1992년 겨울 영하 15도로 내려가던 그 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오래된 단독주택이라 단열이 잘 안 되다보니 혹한의 추위에 사모님이 내주신 이불을 있는 대로 다 덮었지만 엄습해오는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요. 더욱이 그 며칠 전 교수님댁에 도둑이 들어 방문을 꼭 닫아 두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아 교수님댁 2층 다락방 침대에 누운 저는 머리맡에 항상 야구방망이를 두고 있었습니다.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던 한밤, 추위와 며칠 전 도둑의 공포로 잠을 못 이룬 채 이불속에서 떨고만 있을 때,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아랫쪽에서 제가 있는 다락방쪽 계단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방망이를 잡은 손에 긴장감이 느껴질 순간 갑자기 침대 매트리스 위로 화끈함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얇고 넓적한 물체를 매트리스 위로 밀어 넣었습니다. 따뜻하게 데워진 전기장판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데워진 온기로 이내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두 분의 모습이 보이시질 않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교수님 내외분의 방문을 살그머니 열어보았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두 분은 에스키모처럼 있는 옷에다 이불은 다 뒤집어쓰신 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전날 혹한으로 보일러가 동파됐고, 유일한 전기장판을 데워 제게 깔아주시곤 두 분은 밤새 추위로 잠도 못 주무셨던 것이었습니다.


그후 은사이선 이영환 교수님의 그 뜨거운 제자사랑을 1백만분의 일이라도 본받고자 다른 대학의 교수가 된 나 또한 아프리카 사막 난민촌에다 학교를 세워 흑진주같은 제자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길 빌면서... 보대원 석·박사과정 제자



“교수님 성함 오타, 결례 감싸줘”

고 김준섭 / 문리대


1968년 한국 철학회 간사 시절 학회 공지 발송문 수취인에 교수님 존함 석 자중 끝자리 ‘燮’자를 잘못 기재해 ‘變’자로 발송했습니다. 사무실에 찾아 온 김 교수님은 오타를 지적하며 대노 격분하기는커녕 웃어 가며 아랫사람 감독을 철저히 하라고 본인의 무지 결례를 에둘러 감싸주셨습니다. 유구무언이지만 저는 그날 밤 꿈 속에서 김보살의 옆얼굴을 보게 됐습니다. 철학과 61학번 제자












“학생에겐 ‘은하수’ 준 애연가”

현정준 / 문리대



확률과 관련된 수업 중 들려주신 이야깁니다. 담배를 즐기신 선생님께서 평생 피우신 담배 개수를 계산하시고 던져서 버린 꽁초 중 3개가 바로 섰다고 예를 드셨죠. 당신께서는 싼 담배를 피시면서도 방문한 학생들에겐 당시 최고급이자 ‘천문학과 담배’인 썬과 은하수를 권하셨습니다. 천문학과 75학번 제자













“누드모델 앞모습 그리게 해줘”

고 김종영 / 미대


촌놈 출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발가벗긴 모델 앞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노상 맨 뒤켠에서 등짝만 그리고 있었더니, 어느 날 교수님이 저를 불러 ‘돌과 같아, 바윗돌 보기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저는 모델의 정면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회화학과 68학번 제자












“데이트에 쓰라며 용돈도…”

홍여신 / 간호대


간호학과 조교 시절, 소개로 만나 알고 지내던 동문 남학생과 함께 교정을 걷다가 홍여신 교수님과 마주쳤습니다. 미소를 지으시며 지나가신 교수님은 다음날 연구실로 절 부르셨죠. 웬일인가 하고 달려가니 봉투 하나를 내미셨습니다. 한 자리에 계셨던 이귀향 선생님이 “웬 거야?” 하시니 웃으시며 “데이트 자금 하라고요” 하셨죠. 교수님, 세월이 반 세기 가까이 지나서야 그 따뜻한 마음에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어리석은 후배는 결국 생전 처음 받은 데이트 자금을 그분과 쓰진 못했지만, 친동생같이 마음 써주신 것 평생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살고 있습니다. 간호학과 63학번 제자












“교수님 따라 생애 첫 야구 관람”

이현재 / 상대


교수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참 많습니다. 종종 예약도 없이 댁을 불쑥 방문하고 저녁까지 얻어먹었던 것은 이제와 얼굴이 붉어지는 일입니다. 어느 날은 야구 구경을 시켜주신다기에 따라 나가 난생 처음 야구 경기도 봤었지요. 미국 피츠버그대 교환교수로 계실 때 교수님 뵈러 캐나다 오타와에서 2,000km을 운전해서 찾아가 사제의 정을 나눴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교수님께서 캐나다의 제 집으로 방문해주신 적도 있습니다. 그 시절 넓은 마음으로 베풀어주신 스승의 정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상과대학 56학번 제자









“폭우 속 산행에서 구해준 은인”

고 문동선 / 치대


교수님께서는 치대 산악반 지도교수로서 우리를 지도해 주셨습니다. 설악산을 등반하던 날 거센 폭우로 인해 계곡물이 가슴까지 차올랐을 때 삼지점을 이용해 도강하는 지혜를 주셨지요. 교수님 덕분에 산악반 10명의 일행이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습니다. 고대 산악반 3명이 물살에 떠내려간 사고가 발생했던 날이었습니다. ‘생명의 은인’과도 같았던 교수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치대 62학번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