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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호 2015년 8월] 뉴스 기획

광복 70주년, 그립고 아픈 효순가(孝順歌)

박상설(기계공학 45입) 국내 최고령 캠핑 호스트


일제 중학1년 때. 뒤쪽 오른쪽 2번째 필자


일본어가 국어였던 구시대 사람들


나는 한글을 소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 때의 국어는 일본어가 국어였다. 역사도 일본 국사를 배웠다. 그 당시에는 한글을 언문’(諺文)이라고 하였는데 이 언문’조차도 가갸~ 거겨~를 뇌까리며 정식으로 배우지 못한 문맹자이다.


그 후 맞춤법 규정을 되풀이해 읽으며 응용하지만 막상 아리송할 뿐이다. 그렇다고 알 만한 사람에게 묻는다는 것도 한두 번이고 그럴만한 사람이나 참고서 해석도 마땅치 않다.

말은 하면서 글은 모른다···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이렇게 조국 말인 어문(語文)에 대하여 죄인이 되어갔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일본말 대신에 조선말을 하면 학생들 간에 벌점딱지를 빼앗아 선생님께 일러바쳤다. 그래 처벌이 두려워서 아주 절친한 친구끼리만 우리말로 소곤대며 마치 지하모의 레지스탕스라도 된 듯 어두운 구석을 신나했다.


일제의 학정(虐政)은 성씨(姓氏)마저도 창씨개명(創氏改名)을 시켰고 조선말을 뿌리부터 말살시키는 잔인한 정책을 참혹하게 펼쳐나갔다. 나와 같은 연배의 노인들은 이와 같이 日帝에 희생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인 것이다. 그래 세계문학 전집을 시작으로 루소 톨스토이 작품과 국부론, 자본론, 심리학 등의 인문과학 책들은 일본어 책으로 읽었다.


한글을 정규코스로 배우지 못해 지금도 맞춤법 어려워


어려서부터 한글을 정규코스로 못 배운 탓에 글쓰기가 무척 고역스럽다. 겁부터 버럭 난다. 눈이 나빠져서 제대로 글을 볼 수 없는데다가 그놈의 한글맞춤법인가 하는 것과 띄어쓰기 등이 왜 그리도 어려운지 글쓰기가 무섭다. 국어사전에는 단어의 뜻만 매정하게 간단히 적혀있기 때문에 막상 문장을 만들려면 문법을 시작으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인가 무언가 하는 복잡한 표기법 등이 얄밉도록 밉다. 나는 우리말은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은 탓 인가보다.


'언문’은 발음 나오는 대로 기호화 하고 밭침법은 지금과는 영 달랐기 때문에 어렸을 때 무의식 중에 각인된 '언문’은 이렇게 늙어가면서도 쉽게 떨쳐지지 못하여 글 쓰는데 갑절의 애를 먹는다. 더구나 나의 오른쪽 눈은 세살 때부터 실명이 되어서 왼쪽 한 눈으로만 보는데 이것마저도 사년 전에 황반변성 눈병이 생겨서 반 정도 겨우 보이지만 그래도 좋다.


남들은 한 시간에 쓸 글을 나는 하루 종일로도 부족하다. 한글에 중죄를 지은 내가 근근이나마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기자의 은전인가.


'언문'에 눈뜨게 한 어머니의 ‘효순가’ 읊조림


나의 어머니는 그 옛날에도 언문’(諺文)을 깨우치고 이야기책을 자주 펼쳐 들었다. 집 안팎일을 하면서도 개화기 때부터 고향에서 불려온 <효순가(孝順歌)> <농부가> <관동 팔경가>등의 창가(노래)를 심심풀이로 중얼거리기를 그렇게도 좋아하셨다. 내 인생을 바꾼 그 ‘효순가’의 읊조림!


그 ‘효순가’를 철부지였을 때부터 하도 많이 들어서 이 왕 늙은이는 잊지 못하고 모태본능으로 어머니를 늘 떠올리며 나는 무의식중에도 ‘효순가’를 중얼대면 괜스레 가슴이 저려온다.


아마도 어머니는 이 ‘효순가’를 통해 나에게 '언문’을 눈뜨게 해주고 이웃의 가난하고 슬픈 사연을 부지불식간에 배냇짓 때부터 몸에 배게 해주어 자연스럽게 사람 됨됨이가 되게 길들이려고 한 터이다. 소박한 삶을 통한 맑은 가난의 풍요로움을 깨닫게 해주고, 나를 흙에 몰입하게 하여 모든 욕망의 속박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자연신앙의 길을 인도해주신 것이다.


<효순가>
1절: 건너집이 일남(一男)이는 가난하여서/하루에 죽(粥) 한
끼도 어렵습니다/아버지 어머니는 속이상해서/하루는 마주앉아 슬피 웁니다.
2절: 이때에 일남이는 책을 끼고서/학교서 밥 먹으러 돌아왔도다/

그 애는 지금 열두살인데/소학교 4학년에 첫 째랍니다.
3절: 아버지 어머니는 왜 우십니까/오늘 친 시험에 만점입니다/

아침에 배부르게 먹고 갔더니/아직도 배고프지 아니합니다.
4절: 모래는 방학이니 방학한 뒤에/낮에는 김도 매고 소도먹이고/

밤에는 새끼 꼬고 신도 삼아서/쌀사고 나무 사께 걱정 마시오.


일제 중학2년 때-뒤 왼쪽부터 4번째 필자-55명 중 현재 생존 5명뿐


좋은 책 한권 읽으면 대학졸업과 맛먹는다는 이야기도


내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는 안방에서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마실 사람들을 매일 모아놓고 '언문’으로 인쇄된 이야기책을 읽어주며 한밤중에 밤참을 먹는 게 일상의 습관이었다. 그때 나는 부모의 턱밑에서 밤잠을 안자고 책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언문’을 아름아름 깨우친 게 전부이다. 그래 나의 언어에는 감자바위 사투리와 어눌한 촌뜨기가 공생하는 경합 죄를 받아 마땅한, 개화기 언어를 쓰는 토박이 촌놈이다.


안채 안방에서 어머니가 읽어주는 책은 <장화홍련전> <심청전> <놀부와 흥부> <이순애와 심수일> 등인데 오만간장을 녹이는 민초들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문고 형 단편소설’이다. 바깥채 사랑방에서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춘원 이광수의 <사랑> <무정> <유정> <단종 애사> 등이고 김동인의 <감자> 염상섭의 <만세전> 현진건의 <고향> 주요섭의 <일력거꾼> 나도향의 <물레방아>등으로 개화기 시대의 급변하는 정경들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낭만과 구시대와의 갈등을 담은 작품들이다. 근대 조선을 뒤흔든 경성기담, 모던뽀이 등 신문잡지에 연재된 충격적인 장르를 통해 개화기 후의 세상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시대에는 좋은 책 한권 골라 잘 읽으면 대학졸업과 맛 먹는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돌아다녔다. 그래 신식 하이칼라들은 서구 계몽기 르네상스 책과 개화기의 현대문학과 낭만소설 물결에 열을 올렸다.


"상설아, 막국수 시켜 와라" 야 신난다


책 읽는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는 자정 때 쯤 되면, 심청이가 ‘인당수’에 제물로 빠져죽는데 이 비통한 하이라이트에서는 안방의 헐벗은 아낙네와 할머니들은 엉엉 울며 서로 엉켜 붙어 대성통곡을 한다. 이때 어머니는 옛날의 변사처럼 애처롭게 흐느껴 읽으며 슬픔을 부추긴다. 배우지 못하고 못살던 개화기 후의 아낙들은 한 맺힌 삶을 온통 눈물로 얼룩지었다.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자자라 들면 사랑방에서는 보란 듯이 아버지가 큰기침소리를 연거푸 낸다. 밤참을 청하는 암호인 것이다. 아낙네들은 그렇게 죽도록 울다가도 언제 그랬더냐 싶게 희희 낙낙하며 아줌마 본성을 드러낸다. 움막에 나가 독안의 어름을 깨고 동치미와 김장거리를 잔뜩 담아와 부엌에서 숭숭 썰며 한바탕 웃음보가 터진다. 불쌍한 조선여편네 들은 처절하게 궁핍한 가난을 끈질기게 이겨내며 세상을 이렇게 보냈다.


자정 무렵에 막국수 집으로 밤참을 시키러가는 시간이 제일 신나는 시간이다. 눈 위를 검정고무신을 신고 총총걸음으로 걸으면 뽀드득 뽀드득··· 지금도 귓전에 아련하다. 같이 따라나선 꼬마친구들 사이를 복실이가 이리저리 눈 위를 뛰어 누비며 킁킁댄다. 그 당시는 허기진 배를 움켜쥔 백성들이 야식을 먹는 습관이 있어 막국수집이 새벽 첫닭이 울 때까지도 문을 열었다, 막국수집이 가까워지면 김 서린 불빛이 밤하늘에 뽀얗게 설이며 구수한 메밀냄새가 진동을 쳤다. 나는 하던 버릇대로 방안을 훔쳐보는 재미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막국수 집 방에서는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구슬픈 노래 가락이 흘러나온다. 앳된 여인의 목소리에 섞인 젊은 남자 두서너 명의 노래··· 그 당시에는 춘천에 막국수집이 한군데 있었는데 술집으로 팔려가는 직전의 길목이 이런 곳 이여서 뜨내기 아가씨가 가끔씩 흘러들어오곤 했다. 부자 집 아들인 동경유학생이 방학을 맞이하여 오고 갈데없는 여심을 잡고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가슴쓰린 희망 없는 내일···.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그 시대를 ‘단장(斷腸)의 애가라 했던가.’


코스모스 나부끼는 이맘때쯤 되면 개화기 때에 ‘근대의 벽을 허문 불꽃의 화가 나혜석’을 그리며 나는 한 없이 한 없이 막국수 집 여인을 떠올린다. 또 가을은 오고~


*박상설 동문은 올해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캠핑을 즐깁니다. 작년에는 40년 캠핑 인생에서 체득한 자연살이 삶을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란 책으로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베스트셀러 가까이 갔다는 후문입니다. 한 세기의 삶에서 나오는 통찰을 가끔 동문들과 나누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