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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호 2015년 6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서울대와 6.25] 서울대와 6 25기념비

최종고 모교 법대 명예교수 대학원동창회장


6˙25 전쟁이 지난 지 65년이 지난 오늘도 서울대는 기념비 문제로 양심 테스트를 받고있다. 이른바 민주열사들을 위한 추모비는 캠퍼스 여기저기 서있는데, 민족 최대의 아픔이요 상처인 전쟁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비는 없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비양심적이라는 지적이다. 세계의 유수 대학들에 전쟁에서 희생된 학우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없는 곳은 없다.


 서울대가 굳이 변명을 한다면 전쟁을 치른 제1공화국은 겨를도 없이 4?19에 의해 전복됐고, 그 후 군사통치 아래서 대학가는 민주화투쟁으로 질주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캠퍼스는 민주화의 열기로 차서 그것 자체가 현대사와 대학사를 이뤄왔고, 그런 가운데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무관심했던 것이 전쟁에 대한 기억이었다. 숨가쁜 복구와 눈부신 발전 속에서 지나간 아픈 기억을 하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작용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전쟁 속에서 서울대가 입은 인명적?재산적?정신적 피해는 얼마나 컸던가, 그것을 잊어버린다면 지성공동체에서 무엇을 소중하다고 하겠는가. 우리는 희생된 선배들의 고귀한 피 위에 서 있다. 그간 어쨌든 국립대학교로 그냥 지내와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이제라도 반성, 시정해야할 것이다.


지난 1995년 개교 50주년에 자그만 기념패를 제작해 문화관 대강당 입구 위에 박아놓았는데, 솔직히 그것은 너무 초라하고 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보는 이들의 중평이다. 그 후 몇 분들의 지적과 주장으로 정식의 전쟁추모비를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여왔고, 역대 총장들도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지지부진한 가장 큰 원인은 그동안 조용하게 이런 뜻있는 일을 챙겨야 할 대학본부가 법인화라는 구조개혁에 몰려서 차분히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 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관을 지으면 그 속에 넉넉한 공간을 전쟁 추모의 공간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왔는데, 최근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문화관을 재건축해 역사연구기록관으로 혼합할 전망이다. 아직 설계도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뭐라 말하기는 어려우나 내용적으로 서울대의 역사가 충실히 정리되고 풍부하게 전시돼 서울대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감명 깊게 관람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희생자를 위한 추모공간은 충분히 제대로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작부터 내용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필자는 수차 주장을 해왔는데, 지금도 교사(校史)편찬위원회가 있지만 역사관의 전시 준비와는 연결돼 있지 않다. 그리고 이 편찬위원회도 120년사의 초기사만 끝내면 언제 해체될지 모른다.


서울대는 그동안 여러 해 모색해온 이런 중요한 정리작업을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 하나로 지금까지 미루어온 전쟁기념비의 문제도 매듭지어야 한다. 필자의 개인적 소견으로는 역사연구기록관에 제대로 전쟁기념공간을 만들지 못한다면, 현재의 4?19기념공원을 민족사추모공원으로 확대 설계해봄직하다고 생각한다.


총동창회가 역사관을 위한 재정까지 약속했다면 그 일환으로 전쟁추모비 건립부터 착수해 추진해 나가야할 것이라 믿는다. 솔직히 지금은 서울대가 돈이 없어 못한다는 변명은 안 통하고 진지한 성찰 속에서 뜻있는 일을 차분하게 추진해나가겠다는 확고한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대가 민족의 대학이라고 자부해왔고 그것을 기초로 세계 속의 명문대학으로 위상을 유지해나가려면 캠퍼스에 들어와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보여줘야 한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이 들어와서 보고 느끼는 서울대 캠퍼스의 허탈감은 이제 이런 면으로 승화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