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42호 2023년 5월] 뉴스 모교소식

동아리탐방: “선배님들 로켓 쏠 수 있는 넓은 땅 어디 없나요?”


“선배님들 로켓 쏠 수 있는 넓은 땅 어디 없나요?”

로켓 설계부터 제작, 발사까지 직접 
6월 국제대회, 총동창회 지원



2019년 아마추어 로켓대회 SACup에 참가한 하나로.  사진=하나로 

“5, 4, 3, 2, 1! 올라간다! 계속 올라가!”

땅을 박차고 솟아오른 로켓이 호쾌하게 하늘을 갈랐다. 2019년 6월 21일 국제 과학로켓 대회 SA Cup(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컵)이 열린 미국 뉴멕시코주의 사막지대. 모교 로켓동아리 ‘하나로’ 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극마크와 서울대 마크를 단 로켓 ‘HALO’가 최고고도 4800ft(1.5km)까지 날아올랐다. 단 몇 초였지만 이들에게 잊지 못할 희열을 안긴 날이었다.

오는 6월 하나로는 또 한 번 SA Cup에 도전한다. 세계 14개국에서 대학 159개 팀이 출전하는 이번 대회의 유일한 동아시아 참가팀이다. 본회에서 경비 1000만원을 지원했다. 참가자 11명이 소요하는 비용의 1/3 정도다. 5월 2일 학내 카페에서 만난 조용현(기계항공공학17입) 하나로 회장은 “한국에서 로켓을 제작하고 미국으로 넘어가는 단계가 막막했는데 총동창회 지원 덕분에 고비를 넘겼다”며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새내기 부원 서지완(항공우주공학23입) 씨가 동석했다.

조 회장이 노트북으로 그래프 하나를 보여줬다. “예쁘죠? 로켓의 궤적이에요. 발사 후 최고점을 찍고 낙하산을 펼치는 과정인데 고도 307m까지 올라갔어요.” 이 포물선 하나를 얻기 위해 비좁은 동아리방에서 땜질을 하고 꼴딱 밤을 샌다. 그래도 즐거워만 보이는 이들은 1998년 설립한 모교 유일의 로켓 동아리 하나로다. 현재 69명이 활동하면서 로켓 설계, 개발, 실험, 제작, 발사까지 전 과정을 다룬다. SA Cup에는 올해 두 번째 출전. 24.9kg 무게 로켓을 1만ft(약 3km) 고도까지 쏘아올린 뒤, 최고고도에서 낙하산을 펼치고 8.8lb(약 4kg)의 페이로드(위성체)를 공중에서 사출해 영상 촬영 등 임무를 수행하는 목표로 개발에 한창이다.

부원 대부분 항공우주공학 전공자고 간혹 타 전공자도 들어온다. “누리호 발사 후 지난 학기에 가입이 확 늘었어요. 나로호 때 관심이 생긴 선배, 동기도 있고요.” 조 회장은 2012년 우주선 ‘큐리오시티’의 화성 착륙을 보고 우주선과 로켓에 매료됐다. 서지완씨는 “이소연씨가 소유즈 호를 타고 우주에 가는 걸 본 후 우주비행사를 꿈꿨다. 2018년 누리호 시험 발사 때 2021년에 제대로 준비해 쏜다는 얘길 듣고 비전이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올해는 입학 전부터 신입생 톡방에 동아리를 홍보하고 부원을 모았어요. 개강 전에 로켓 쏘는 걸 꼭 보여주려고요. 로켓을 날리기 전 로켓엔진 지상실험을 했는데 터져버린 거예요. 새로운 엔진으로 다시 시도했지만 연료 제작 중 사소한 이유로 연료가 빠지지 않아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못 했죠. 누리호를 보셔서 알겠지만 로켓, 항공우주 쪽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요. 사고 나면 복구하고, 이유 알아보고. 저희 동아리 활동이 규모는 달라도 국가 항공우주 산업의 축소판 같아요.”(조용현)

지난 SA Cup 출전을 위해 개발한 로켓 HALO는 M class 모터(총 충격량 5120-10240 N·sec)를 사용했다. 발사는 성공적이었지만 최고 고도를 날면서 분해돼 ‘shred’ 판정을 받았다. 지난 경험을 발판으로 부원들이 로켓에 적합한 유리섬유 등 소재를 수소문해 구하고 연료까지 직접 만들며 준비하고 있다. 하나로의 지난 개발 일지를 보면 아예 ‘발사에 실패했다’는 기록도 적지 않다. ‘공들여 만들었는데 잘 안되면 슬프지 않냐’는 질문에 이들은 “실패할 걸 알아도 로켓을 날려봐야 얻는 게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스페이스엑스의 우주선 스타십이 폭발했을 때 직원들은 오히려 박수를 쳤죠. 발사에 실패해도 데이터는 남고, 그렇게 땅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배울 수 있거든요. 아기에게 ‘손발을 이렇게 하면 달릴 수 있다’고 알려줘도, 실제론 넘어지게 되잖아요. 로켓을 날리는 건 그 첫 걸음마를 지켜보는 기분이에요. 물론 아쉽긴 하지만, 무엇이 잘못됐는지 배우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행복하죠.”(서지완)

이렇게 한 번의 발사 경험이 귀중한데 국내에선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없다. 그렇게 넓던 하늘이 로켓만 쏘려면 좁아진다. “군부대가 많은 국내 특성상 450m 이상 날리려고 하면 항공청에 공역 허가를 받아야 해요. 사실상 300m 쏘는 것도 어렵고 그나마도 쏠 곳이 없습니다. SA Cup의 목표 고도가 1만ft인데, 한 번도 실험해보지 못한 고도를 현지에서 도달해야 하는 거예요. 힘들게 부지를 찾았는데 사용 못 하게 돼서, 밤새 만든 로켓을 싣고 갔다가 그대로 돌아온 적도 있죠. 발사가 잘 안 될 때보다 그럴 때 더 서러워요.”



하나로 로켓 발사시험 장면.


서울대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심지어 하나로 부원인데도 때가 안 맞으면 로켓 한 번 못 날려보고 졸업하는 학생이 많다는 말은 놀랍기까지 했다. 전국대학교로켓연합회(NURA)에서 매년 여름 전남 고흥항공센터를 빌려 여는 로켓 경진대회가 대부분 대학 로켓 동아리에는 유일한 기회다.

“1년에 한 번밖에 쏠 수 없으니 우리나라 로켓동아리 발전에 한계가 있죠. 마음껏 로켓을 쏘고, 낙하산이 안 펴져서 땅에 꽂히고, 박혀도 안전할 정도로 넓고 탁 트인 부지만 있다면 좋을 텐데. 혹시 신문을 읽으시는 선배님들 중에 넓은 부지를 갖고 계신 분들도 계실까요? 저희에겐 로켓을 쏠 수 있는 땅이 정말 간절합니다.”

졸업 후 항공우주 분야에 진출한 선배가 많지만 동아리와 계속 연락하는 경우는 적다고 했다. 대신 치밀하고 복잡한 로켓 제작은 거의 도제식으로 이뤄져 활동할 때 선배의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이 많다. 올해 6년째 활동 중인 조 회장도 하나라도 더 경험과 지식을 남겨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가득했다. “10번 이상 로켓을 쏴봤지만 확실한 건, 로켓 쏘는 건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아요. 발사하면 어떤 데이터든 남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희열이 있어요. 선배님들의 지원 덕분에 이번 대회 출전이 가능했듯이, 저희도 로켓을 사랑하는 후배들을 위해 좋은 성과를 내고 오겠습니다.”

△하나로 홈페이지에서 후원 문의하기: http://hanaro.snu.ac.kr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