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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2022년 12월] 뉴스 기획

서울대 상징을 만든 사람들: 정문·쌍학 제작한 강찬균·엄태정 명예교수



서울대 상징을 만든 사람들

어느 학교나 ‘이것 모르면 타대생’인 조형물이 있다. ‘샤’ 모양의 관악캠퍼스 정문은 대학 정문으론 드물게 ‘전국구’로 유명해진 조형물이다.
서울대를 뜻하는 접두어가 된 ‘샤-’가 이 정문에서 기인했고, 최근 광장으로 새단장해 명소가 됐다.
문화관 앞 쌍학 조각도 캠퍼스 투어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다. 서울대의 상징을 만든 동문들을 만났다.


“교명이 문에 나타난 직관적인 상징물”

정문 제작
강찬균(응용미술57-63) 모교 명예교수



1977년 손수 제작한 금속 입체 축소 모형과 강찬균 교수. 



모교 휘장 속 ‘샤’모양에서 착안
“굳이 교명 병기할 필요없어”


서울대의 제1 상징물은 정문이다. 반론의 여지가 없다. 교명을 형상화해 어떤 대상보다 상징성이 뚜렷하다. 정문의 모양은 서울대 휘장 안의 ‘샤’(열쇠형 마크) 문양에서 왔다. 휘장의 도안을 정문으로 형상화한 사람은 강찬균 미대 명예교수다. 담벼락 또는 기둥 등을 두고 문을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어떻게 이런 모양의 정문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지난 11월 23일 경기도 의왕 작업실에서 만난 강찬균 교수는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신문, 사진 자료 등을 보여주며 서울대 정문 탄생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강 교수는 보신각 종을 제작했으며,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1975~1980년 서울대 종합화 계획에 따라 단과대학들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는 과정 중 정문 설립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1976년 정문 제작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 4000만원을 마련했다. 강 교수는 “예산안 통과에는 당시 광화문 이순신 상 제작 등을 한 김세중 미대 학장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1977년 1월 윤천주 총장이 주재한 학장회의에서 미대와 공대 건축과에 설계도를 위촉한다. 김세중 학장은 강찬균 당시 조교수에게 맡겼다.

1977년 3월 학장회의에서 7개 시안이 오르고 이 가운데 3개 안이 선정됐다. 이는 1977년 4월 4일 대학신문에 자세하게 나온 바와 같이, 일반적인 형태의 교문 모습이었다. 동숭동 문리대 교문과 유사한 형태(본부안), 현대적 기념비 형태(미대안), 고전적 불국사 형태(공대안). 이 세 개 시안 가운데 교수, 학생 의견을 종합해 선정할 계획이었으나, 학장회의에서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새로운 시안을 보완 후 재결정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전문위원회는 공대 건축과 이광노, 윤장섭, 정일용 교수, 미대 응용미술과 강찬균, 민철홍 교수, 미대 회화과 임영방 교수,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양승이, 유병림 교수, 문리대 고고학 김원용 교수 등 9인으로 꾸려졌다.

1977년 6월 10일 전문위 1차 회의에서 교문 설립에 대한 네 가지 원칙을 수립했다. 첫째, 주위 환경 조화, 둘째 상징적일 것, 셋째 서울대인이 공감할 수 있을 것, 넷째 개방적이며 미닫이식.

6월 21일 2차 회의에서 강찬균 교수가 제안한 서울대 휘장 안 ‘샤’ 형태의 정문이 8명 위원의 찬성으로 채택된다. 상징성, 공감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전문위는 정식도면을 요청하고, 7월 5일 강찬균 교수는 투시도와 20분의 1로 제작한 금속 입체 모형을 선보였다. 보통 정문에 교명이 들어가지만, ‘샤’에 이미 교명이 반영됐기에, 교명은 생략하는 것으로 했다. 이 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고 황동색의 정문이 1978년 완공됐다.




투시도


초기 나왔던 정문 안




강찬균 교수는 “랜드마크의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 서울대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교문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고민이 많았다. 더구나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내야 했기에 밤새가며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일반적인 교문에서 벗어난 정문 구조물에 이견을 표하는 사람들은 없었을까.

“사실 작가로서도 휘장 안에 모양을 그대로 형상화 하는 데 부담이 컸다. 일반적 형태의 교문에서 벗어난 철 구조물에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러한 대형 철 구조물이 드물었기에 독창성과 서울대를 직관적으로 상징한다는 것 때문에 전문위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게 아닌가 싶다.”

현재 새 단장한 정문 광장에 대해 강 교수는 광장 바닥 색깔과 정문 색깔을 조금만 달리 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내비쳤다.


강 교수는 매일 의왕 청계 작업실에 출근하며 금속공예 작품 제작을 하고 있다. 한국공예가 협회 고문이며,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인전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여러 전시회에 참여했다.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 국전에서 문공부장관상, 목양공예상 등을 수상했다.

김남주 기자




문화관 앞에 내려앉은 학 두마리, 세월 따라 깊어지는 색

‘쌍학’ 제작
엄태정(조소58-64) 모교 명예교수



 사진=엄태정 동문 제공


“학은 품격과 불멸, 지혜 상징”

내년 2월까지 원서동서 개인전



관악캠퍼스 문화관 앞 쌍학   사진=엄태정 동문 제공


‘쌍학’은 문화관과 행정관, 자하연을 잇는 삼각형의 중간에 자리했다. 쭉 뻗은 두 다리, 활짝 펼친 날개. 모교 교조인 백학 두 마리다. 금속 조각가 엄태정(조소58-64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조소과 명예교수가 모교 52주년인 1998년 10월 서울대 상징조각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11월 29일 엄 동문이 세운 경기도 화성 엄미술관을 찾았다가 그의 작품이 곳곳에 놓인 뜰에서 작은 ‘쌍학’을 발견했다. 엄 동문의 부인이자 엄미술관 관장 진희숙씨가 ‘제작 당시 만든 축소모형’이라고 설명했다. 이 미술관에 면한 스튜디오에서 쌍학을 제작했다.

“서울대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서울대를 상징하는 야외 조각 제작을 의뢰받고 쌍학상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조각은 서울대 상징 동물인 학을 주제로 하여 ‘쌍학상’을 구상안으로 제안했으며, 학내 관련 교수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몇 차례 심의를 거쳐 결정됐습니다. 예로부터 학은 선비들의 이상적인 높은 품격과 영원한 생명과 불멸, 행복과 행운, 지혜를 상징하고 있어, 학문과 예술을 도야하는 대학의 정신으로 볼 때 그 상징적 의미는 대학을 상징하는 데 아주 큰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어요. 조각은 이러한 학의 이미지에서 조형적 공간성과 조각적, 구조적 역동성의 과정 속에서 반복과 차별의 대칭적 요소들이 교차하며 하나의 체계 속에 내적 질서를 예비하고 있습니다. 학의 고고한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향해 교내 특정한 장소에 설치됨으로써 서울대를 상징하는 쌍학의 존재와 장소성을 건립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이는 우리들에게 유토피아를 열게 하는 화해의 공간이며, 우리들 서로서로를 환대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쌍학은 다른 곳에 놓일 수도 있었다. 행정관 앞 잔디광장 중앙이 후보지였다. “잔디를 훼손하면서 보게 하기도, 멀리서 바라보게만 하기도 싫었어요. 논의 끝에 관악산이 보이는 문화관 앞으로 결정했죠. 처음엔 학 날개만 낮게 펼치는 구조를 생각했는데 공간이 좁아질 것 같더군요. 학도 다리가 기니까 다리를 세워보자 해서 지금의 형태가 됐습니다. 건물과도 균형이 맞고요.”

본래 금빛에 가까운 청동색이던 쌍학은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녹청을 입었고, 그의 바람대로 서울대인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잔디광장이며 문화관 재건축 등 쌍학 주변의 변화를 알려주자 ‘그래요’라며 놀라워 했다



1998년 제작 직후의 쌍학. 녹청을 입기 전 청동 색을 띠고 있다.   사진=엄태정 동문 제공


그의 작품에 새와 날개가 많이 등장하는 건 우연일까. 지금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공간 사옥)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제목도 ‘은빛 날개의 꿈과 기쁨’이다. 동명의 대표작에 대해 쓴 작가 노트에서 엄 동문은 ‘은빛 두 날개는 무한한 사이를 품고 있습니다./ 태양과 달도/ 밤과 낮도 모두를 품습니다”라고 썼다. 쌍학의 날개가 비상을 준비한다면, ‘낯선 자’의 은빛 두 날개는 우리에게 치유의 충만한 기쁨을 베풀고 영혼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하강했다. ‘삼익조’ 작품은 세상에 없는 새로 ‘위대한 수수께끼를 공간 속에서 찾는다’고 설명한다.

추상조각 1세대인 그는 대학 시절 김종영 조각가의 철 작품을 보고 금속에 매료됐다. 철에서 구리, 알루미늄으로 재료가 바뀌는 동안 형태는 더욱 순수해지고 물성은 오롯이 드러났다. 전시에 출품한 미공개작 10여 점과 2022년 신작에서 작품 연대기가 보인다. 김수근 건축가의 역작인 공간 사옥의 미로 같은 공간과도 신비하게 어우러진다.

작품의 기저엔 그가 평생 흠모하며 연구해온 조각의 대가 ‘브랑쿠시’에 대한 오마주도 흐른다. “브랑쿠시는 조각은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평생 그를 뒤따라온 내게도 조각은 사물을 사유하고, 그 안에 내재된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일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조각가는 자신이 사유하는 내용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물성을 만나는 게 중요해요. 내가 생각한 것을 부여할 수 있는지, ‘내가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집인지’ 아닌지 자꾸 두드려보는 거죠. 물성이 나를 초대해줘서 그 초대에 응했을 때, ‘낯선 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내 조각 일은 쇠, 그 부름과 일입니다.”



현재 전시 중인 엄 동문의 조각 ‘철의 향기’(앞 작품)   사진=엄태정 동문 제공 



알쏭달쏭한 표정의 기자에게 “그저 보는 사람 마음대로”라며 웃는 엄 동문. “문외한이라도 내 작품을 보고 조각의 개념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이야길 들으면, 내가 만나는 기쁨을 또 다른 각도에서 만나고 있구나 싶어 기쁘다”고 했다. 왜 우리에겐 조각이 필요할까? “그건 예술이 왜 우리에게 필요하냐는 질문과 같아요. 살기 위해 돌을 깨서 칼을 만들던 게 놀이가 되고 문화가 되어 생활에 스며들었죠. 또, 수평과 수직의 건축물에는 감성적 요소도 필요하죠.”

대법원 ‘법과 정의의 상’, 잠실운동장 ‘웅비’ 등, 세상 곳곳에 내 작품이 우뚝 선 기분은 어떨까. “활동하다 보니 그런 흔적들이 남아요. 내가 예술가로서 이런 일을 해봤구나 생각하죠. 꽤 열심히 작업했다 싶어 애착이 가는 것도 있고요.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보람은 느껴요.” 모교의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트로피도 1991년부터 제작해오고 있다.

‘내가 조각이 되기를, 내 죽음이 조각이 되고, 내 영혼이 조각이 되기를 기도하나이다.’ 등단 시인이기도 한 그가 쓴 시의 한 구절이다. 올해 85세인 그는 아직 전시에 ‘회고전’을 붙일 생각이 없다. 현역 조각가의 자부심이다. 진희숙 관장은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작업을 하신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오전엔 조각 작업, 조용한 밤엔 드로잉을 한다. 오늘도 용접을 하고 오셨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6일까지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