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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호 2022년 5월] 뉴스 모교소식

BTS 키운 방시혁, 대중문화 분야 첫 모교 명예경영학박사


BTS 키운 방시혁, 대중문화 분야 첫 모교 명예경영학박사





모교는 4월 28일 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의 방시혁(미학91-97) 이사회 의장에게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대중문화 분야 인사 가운데 모교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방 의장이 최초다. 방 동문은 전체 113번째, 한국인으로는 13번째로 모교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앞서 모교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고 김수환 추기경, 고 박완서 작가 등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날 모교 교수회관에서 열린 수여식에서 최해천 대학원장은 추천사를 통해 “방 의장은 K-팝을 세계 최고의 대중문화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혁신적인 음악산업 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전 세계인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팬 커뮤니티의 신기원을 개척했다”고 말했다. 또 “지금의 성취를 이루기까지 대학 시절 미학에 대한 학문적 노력이 큰 뒷받침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미학과 출신인 방 의장이 서울대 인문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했다고 밝혔다. 오세정 총장은 방시혁 동문 학위 수여에 대해 “서울대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도 있었다”고 전했다.

방시혁 동문은 답사를 통해 “기업의 제1 목표는 생존이어야 한다”며 “기업이 생존해야 이후 질적, 양적 성장을 모두 도모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고용을 창출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부여한 과제로서의 문제를 개선하고,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또 “그저 살아남기만을 위한 1차원적 생존이 아니라 기업 고유의 목적에 연동되는 장기 비전을 가지고 이를 실현하며 지속 성장해나가는 생존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아래 답사
이날 행사에는 방시혁 동문의 부모인 방극윤(행대원64-66 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최명자(영문64입) 동문을 비롯해 본회 김종섭 회장, 이경형 상임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김남주 기자




방시혁 명예경영학박사 학위 답사

“당장 눈앞 문제 해결하기보다, 본질에 집중해 왔다”



(왼쪽부터) 오세정 모교 총장, 방시혁 동문 아버지 방극윤 동문과 어머니 최명자 동문, 방시혁 동문.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는 각성으로 기업경영”
2005년 빅히트 엔터 창업, 2012년 도산 위기
팬데믹, 기업의 본질을 단단하게 만든 기회 돼
“사회에 어떤 역할할 지 치열하게 고민하겠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학위를 수여해 주시는 자리인 만큼 어떤 답사를 준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경영인으로서 큰 자질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 자신이 탁월한 경영인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회사를 경영해 온 지금까지의 세월이 있는 만큼 과거에 기본 지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때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의 성장은 있었겠지요. 하지만 요즘도 중요한 경영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20년이 넘게 해왔어도 경영이란 건 늘지를 않는구나’란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특히 회사의 경영진들이 능숙하게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걸 볼 때면 지금이라도 원래 제가 잘하는 일인 프로듀싱에만 집중하는 게 회사를 위해 더 맞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제가 경영자라 할지라도 오히려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그간 어떻게 경영을 해왔는지를 말씀드리는 건 단지 감사의 의미를 전하는 걸 넘어 후학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영인 자질 있다 생각해 본 적 없어

저는 직업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음악 프로듀서로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제작하는 곡, 앨범과 아티스트의 성공이 가장 중요했기에 제가 속한 회사의 경영 상태나, 산업군 전반의 지형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경주마처럼 눈앞의 프로젝트에만 집중했던 당시의 제가 시선을 돌려 자신이 속한 음악 시장 자체를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보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많은 깨달음과 성장의 순간들이 필요했습니다.
깨달음이 시작된 건 디지털라이제이션으로 인해 음악산업이 급격히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부터 였습니다. 1999년 성장의 정점을 찍은 음악산업은 디지털 음원의 등장과 함께 산업 전반에 있어 큰 폭의 하강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민감하지 않았고, 그래서만은 아니었지만, 하필 바로 그때 창업을 했습니다. 2001년 박진영 씨가 창업하는 JYP에 공동 창업자로 합류한 것이 경영인으로서의 저의 시작이었습니다. 회사를 창업하고 야심 차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결과는 혹독했습니다. 창업 후 처음으로 낸 아티스트의 음반은 예상치 대비 50% 미만의 판매 성적을 기록했고 회사는 창업한 지 1년 만에 자금난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산업 자체가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을 맞았을 때 경영인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전문가로서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고스란히 체험했던 첫 번째 순간입니다.

회사 창업 1년 만에 자금난 봉착

이때를 기점으로 제 안에 경영과 사업, 산업이란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각 개념들에 대한 이해도 역시 느리지만 꾸준하게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메일 체크조차 귀찮아하던 제가 경영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를 시작했던 것도 이즈음부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2005년 JYP를 떠나 홀로서기를 택한 저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지금의 하이브의 모체가 된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깨달음과 공부에도 불구하고 당시 저는 자신의 특출한 기술이나 역량을 과신하는 창업자들이 으레 하는 실수들을 또다시 저질렀고 결국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2012년 거의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이었던 점은 도산 위기를 맞기 1년 전 회사의 모든 구성원들이 모여 ‘우리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하는 장기 워크숍을 가졌던 것이었습니다. 2011년까지만 해도 빅히트는 2AM, 에이트, HOMME 등 회사에서 선보인 모든 아티스트들의 대성공을 기반으로 승승장구 중이었습니다. 시리즈A 투자 역시 성공적으로 유치하여 자금적으로도 탄탄했기에 워크숍을 통해 현재를 되짚으며 미래를 절박하게 준비할 이유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왜 성공의 한가운데에서 회사의 성공이 제대로 된 궤도 안에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꼈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물론 훌륭한 경영자라면 회사가 아무리 탄탄한 실적을 보이고 있더라도 항상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대비하는 게 맞지만, 많이 모자란 경영자였던 당시의 저에게는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번외의 이야기이지만 2011년에 승승장구하며 투자 유치까지 성공한 회사를 1년 만에 도산 위기까지 끌고 갔다는 걸 생각해 보시면 당시 저의 경영자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2년의 도산 위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도산을 걱정하던 그때 1년 전에 진행했던 전사 워크숍은 제가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는 2011년 워크숍 주제였던 ‘우리 업의 본질’을 다시 파고들었고, 지난 실패들을 하나씩 모두 복기하면서 기업의 본질, 기업의 최우선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보다 진지하게 탐구하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사람이어서 그랬을까요? 경영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음에도,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 진단과 처방을 내렸던 것이 돌아보면 지금까지 회사를 살아남게 한 결정적 이유가 돼 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제가 집요하게 탐구해 찾은 답은 어찌 보면 너무나 상식적이고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쉬운 답을 얻고자 수많은 실패 끝에 다시 공부까지 했다는 것이 지금 와 생각하면 저 자신도 믿기 어려울 정도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그렇기에 이것이야말로 제가 놓치고 있던 ‘본질’의 정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생존 외 장기 비전·지속 성장 중요

기업의 제1목표는 생존이어야 합니다. 기업이 생존해야 이후 질적, 양적 성장을 모두 도모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고용을 창출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부여한 과제로서의 문제를 개선하고,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저는 과거의 오만과 속단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기업의 본질로서 ‘생존’ 그 자체에만 집중하려 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인적 물적 자원을, 회사를 다시 설립하는 수준으로 재분배했으며, 이 과정 모두를 철저하게 기업의 목적에 동기화된 기준에 따라 행했습니다. 2012년 도산을 앞두고 가슴에 새긴 이 해답은 이후 제가 가본 적 없는 길을 들어설 때마다 나침반이 되어 저를 오늘로 이끌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또 하나 발견한 답은 그저 살아남기만을 위한 1차원적 생존이 아니라 기업 고유의 목적에 연동되는 장기 비전을 갖고, 이를 실현하며 지속 성장해나가는 생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기업이 추구하는 바와 개선하고자 하는 문제의 해결을 꾸준히,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실질적으로 올바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비전문가로서 시작한 경영이지만 고군분투하며 찾아낸 답이 맞았던 것인지 2013년도에 방탄소년단이 데뷔한 이래 회사는 큰 폭으로 지속성장할 수 있었고, 방탄소년단이 국내외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16년도부터는 큰 실패 없이 그간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자 증명들을 하나씩 이뤄갈 수 있었습니다.

방탄소년단 투어 네 번 연기 하기도

그런데 이제 과거와 같은 실패는 없을 거란 또 한 번의 조금 오만한 생각 속에서 다음 단계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한 잰걸음을 걷던 중, ‘팬데믹’을 맞닥뜨렸습니다. ‘팬데믹’은 시장이 거스르기 힘든 변화의 흐름 정도가 아니라, 몇 가지 특수한 산업군을 제외한 모든 산업 군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전 지구적 재앙이었습니다.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는 각성으로 기업을 경영해왔는데 정말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오프라인 공연을 기반으로 한 팬 경험이 가장 중요한데, 산업의 중심축 자체가 갑자기 사라진 것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팬데믹의 종식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암담한 예측만 나오던 때엔 이것이 과연 경영 역량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 스스로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전 세계의 팬들이 고대하던 방탄소년단의 투어 일정은 무려 네 번 이상 연기를 반복하여 안내하다 결국 취소와 다름없는 무기한 연기를 공지해야 했고, 마침 그 당시 준비 중이던 코스피 상장에 대해서는 상장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었습니다. 이처럼 팬데믹은 약 20여 년 전 디지털라이제이션이 일어났을 때나 10년 전 저의 모자란 경영 능력으로 회사를 도산 위기에 빠뜨렸을 때보다 훨씬 더 막강하고 불가항력적인 파도와 같이 몰아쳐 회사를 침몰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실패를 경험했던 때와 달랐던 것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존과 장기 비전에 집중하자’, ‘우선은 살아남자’라는 생각으로 전쟁터에서 퇴보 없이 나아가는 데 필요한 각고의 노력들을 했습니다. 회사 전체의 사업 계획도 그만큼 수없이 수정되었고, 약 2년간의 시간 동안 회사의 모든 계획을 ‘컨틴전시 플랜’, 즉 비상 계획이라 부르며 일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막연하게 꿈만 꾸면서 키워왔던 일들이 있다면 팬데믹의 상황에 맞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으로 재검토하기도 했고 사업 자체를 취소한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또한 코스피 상장, 그리고 전문경영인인 박지원 님의 합류를 통해 하이브라는 기업을 좀 더 기업답게 만들어 조직적, 사업 구조적, 재무적 경쟁력을 높이고 내실을 다지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음악산업의 혁신’이란 대의를 선포해온 회사가 이렇게 고꾸라져 버릴 수는 없다는 결연함도 있었나 봅니다. 생존을 위한 분투 속에서도 팬데믹의 위협을 지렛대로 삼아 보겠다는 패기가 생겼고, 오랫동안 비전으로만 두던 IT 영역으로의 확장을 속도감 있게 현실화하고자 최선을 다해온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에 특별한 전략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장 몇 달 시장 상황도 예측하기 힘든 재앙과 같은 시기였기에 기업의 코어, 본질을 단단하게 만들어 팬데믹 이전에 계획했던 방향대로 나아갈 힘을 기르는 데 집중했을 뿐입니다. 즉흥적으로 위기에 대응해야 했던 순간들도 물론 있었고, 회사가 잠시만 집중력을 잃어도 방향이 엇나갈 것이라는 불안감에 힘들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본질을 믿고 지키려 하다 보니 어느새 팬데믹이란 긴 터널의 끝을 기대할 수 있는 시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박사학위, 더 잘하라는 당부로

어느새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리오프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발끝만을 보느라 혹 멀리 보이는 목표를 놓쳐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하이브는 팬데믹을 지나는 동안 생존과 함께 경계 없는 확장을 이루는 것까지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팬데믹 이전에 출범시킨 플랫폼 비즈니스는 더욱 견고해졌으며, 이제는 스토리 사업은 물론 NFT와 게임까지 사업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최근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방탄소년단의 라스베이거스 콘서트와 ‘더 시티’ 프로젝트처럼 팬데믹 이전의 기획보다 더 멋있게 현실화 된 아이디어들도 있습니다. 이 또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면서도 기업이 추구하는 바를 놓지 않았기에 이룰 수 있었던, 플랜A를 뛰어넘는 플랜B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저와 하이브의 여정은 현재 기준으로는 해피엔딩으로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생존을 위해 절박하게 고민해야 했던 순간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고 없이 팬데믹이 찾아왔듯, 예측할 수 없는 위협은 언제든 또 예고 없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오프닝의 국면에 들뜨기보다는 기술과 문화의 융합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미래 세대의 음악 산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지속적으로 연구하면서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애쓰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기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지키며 궁극적으로 사회의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가, 경영인이 되려고 합니다.

답사를 시작하며, 오늘 제게 수여해 주신 학위가 개인적으로 격려와 위안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감사 인사를 끝맺는 순간이 되니 한편으로 단지 격려와 위안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부담도 생깁니다. 지금까지 잘해왔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당부의 의미가 담긴 학위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제가 속한 음악산업,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회에 궁극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경영인이 되어야 하는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라는 당부와 함께 묵직한 책임감을 더해주신 것이라 받아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