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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2021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8년 전 런던서 만난 판소리, 바로 내 인생이 됐다”

안나 예이츠 국악과 교수


“8년 전 런던서 만난 판소리, 바로 내 인생이 됐다”
 
안나 예이츠 국악과 교수




민혜성 명창한테 배운 애호가
전통은 낡았단 선입견 깼으면


판소리 애호가 안나 예이츠 모교 국악과 교수가 서울대학교에 부임한 지 만 1년이 됐다. ‘한국인에게 한국 전통음악을 가르치는 외국인’으로 일찍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그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흥보가’ 이수자 민혜성 명창에게 사사했으며, 2015년 유럽 지역 판소리 대회인 ‘K-vox 페스티벌’에 참가해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학자로서 연구에 매진하는 것은 물론 직접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치는 등 판소리를 세계에 알리고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9월 27일 관악캠퍼스 음대 연구실에서 안나 예이츠 교수를 만났다.

“서울대학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악과가 개설된 곳입니다. 국악 연구자라면 해외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죠. 같은 교단에 서는 교수님들 모두 정말 훌륭한 분들이세요. 연구자 혹은 연주자로서의 기량에서나 학생들을 지도하는 측면에서도 항상 최고를 추구하십니다. 그런 멋진 분들이 친절하기까지 하세요. 학생들 또한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왕성해서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하고요. 연구자로서 서울대에 적을 두고, 국악의 본거지인 한국에서 자주 판소리를 즐길 수 있게 된 건 행운이 아닐 수 없죠. 지난 1년 동안은 비대면 수업만 했는데, 앞으로 대면 수업이 확대되면 어떨지 기대가 돼요.”

옥스퍼드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쳤던 그는 부임하자마자 화상 강의에 적응해야 했던 어려움보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처지를 먼저 생각했다. 음악을 주제로 한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찾아 제공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관심사를 쫓아 공부하게 한 것. 3시간짜리 수업 일부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으니 학생들 입장에서도 효율적이다. 각자의 흥미를 쫓아 뻗어 나간 학업을 일일이 체크하고 피드백하는 수고가 따르지만, 제자들과 소통할 기회가 늘어 외려 즐겁다고.

“한국 음악 개론 수업 땐 저의 판소리를 생중계로 들려줘요. 창작국악 세미나는 이름 그대로 국악곡을 창작하는 수업이고요. ‘공연과 연구의 인류음악학’과 국악을 세계에 알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학생들이 직접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는 ‘국제 국악 실습’은 서울대에 와서 제가 새로 개설한 강의입니다.”

안나 예이츠 교수의 국악 사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한국문화원에서 우연히 접한 판소리 공연에 매료돼 인류음악학 박사과정을 시작한 것. 당시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그는 한류 관련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었던 만큼 이전부터 판소리에 대해 모르지 않았지만, 공연장에서 직접 관람한 판소리는 영상으로 시청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말한다. 소리꾼 한 사람이 창·발림·아니리 등 노래와 연기의 요소를 모두 소화하는 풍부한 표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고.

“한국어에 능숙지 않았을 때인데도 자막이 필요 없었습니다. 인생의 면면을 아우르는 스토리가 일인극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게 지금도 신기해요. 뛰어난 표현력과 함께 현장성을 판소리의 최대 매력으로 꼽고 싶습니다. 소리꾼과 고수, 청중이 서로 교감하면서 발휘하는 시너지가 생동감을 증폭시키죠. 때문에 커다란 무대에서 수많은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하는 K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무대가 너무 크면 추임새가 나와도 소리꾼에게 닿지 않고 사그라들어 버리거든요.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론 그 진가를 알 수 없는 게 당연하죠. 다른 공연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 시대에 판소리가 처한 어려움은 그래서 더욱 위중합니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안나 예이츠 교수는 국악의 가능성을 찾는다. 직접 관람하는 데는 못 미치지만, 판소리 공연 영상도 제작하기를 거듭,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 단순히 공연 영상을 녹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르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띈다고 말한다. 

밴드 ‘이날치’의 멤버 안이호(국악99-06) 동문은 임채묵(기계항공공학99-05) 동문의 2018년 등단소설 ‘야드’를 판소리로 각색해 2020년 영국 사우샘프턴 필름 위크(Southampton Film Week) 국제 단편영화제에서 베스트 아티스트 필름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안나 예이츠 교수가 박사과정 현장 연구 때 만난 이날치의 또 다른 멤버 이나래(국악05-13) 동문은 스페인의 플라멩코, 미국의 재즈 음악가들과 협연을 선보이기도 한다.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동문 국악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2015년 현장 연구를 위해 1년간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90편의 판소리 공연을 관람했고, 공연이 끝나면 무작정 분장실 앞에서 기다렸다가 소리꾼에게 인터뷰를 청했죠. 민혜성 선생님을 그렇게 만났고, 민 선생님 소개로 고 박송희 명창을 뵙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시대적 고난까지 감내하며 전통음악을 계승해온 국악인들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우리 전통음악이니까 들어달란 호소는 힘이 실리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우리 것은 낡은 것, 국악은 노인들이나 듣는 음악이란 선입견을 깨는 것만으로 충분하죠. 판소리를 접할 기회가 더 많아지고, 지금처럼 젊은 국악인의 참신한 시도가 계속된다면 국악 향유층은 세계적으로 더 늘어날 거라 생각합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