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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2018년 6월] 문화 전시안내

화제의 전시: 어느날 인수봉이 다가왔다, 26년을 이 산에 매달렸다

사진가 임채욱 동문 ‘임공이산’전


어느날 인수봉이 다가왔다, 26년을 이 산에 매달렸다
사진가 임채욱 동문 ‘임공이산’전




인수봉과 사람, 동행
“인수봉은 한국 산악인들에게 고향같은 존재다. 히말라야 14좌와 알프스 3대 북벽을 오른 것도 인수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수봉 귀바위에 사람이 올라가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두 사람이 올라가 있을 때 한 컷을 찍고 다시 찍으려 하니 순식간에 하강하고 보이지 않았다. 한 컷으로 끝나버린 찰나의 사진에 인수봉과 클라이머, 그리고 동행의 모습이 절묘하게 드러나 있다.”
임채욱_insubong 1840, 160×10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18



“북한산에 오르지 않아도 서울 어디서든 인수봉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수봉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죠. 주목하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 풍경에 불과해요. 인수봉이란 존재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습니다.”

지리산, 인왕산, 설악산 등 한국의 산을 담아온 사진가 임채욱(동양화95-02) 동문이 북한산 인수봉을 주제로 연이어 전시를 선보인다. 지난 5월 열린 ‘인수봉’전에 이어 7월 1일까지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열리는 ‘임공이산(林公移山)’전이다.

산을 피사체 삼았지만 산악 사진이란 말보다 ‘카메라로 그리는 산수’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먹의 농담을 닮은 흑백 톤의 사진을 인화지 대신 한지에 인화해 한 폭의 진경산수화처럼 보인다. 사진계와 미술계, 산악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이유다. 지난 5월 20일 ‘인수봉’전이 열린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임 동문을 만났다. 4층짜리 전시장을 가득 채운 단 하나의 봉우리, 인수봉을 그는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작업의 고향”으로 소개했다.




“1992년 철원에서 군생활을 할 때 휴가차 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갔어요. 차창 너머 인수봉이 늘 서울에 도착했단 걸 알려줬죠. 큰바위 얼굴을 닮은 그 모습이 제겐 큰 위안을 줬기에 대학에 들어와서도 계속 인수봉을 그렸어요. 11년간 인수봉 사진을 찍으면서도 몰랐는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인수봉 작업의 출발점이 그때부터였단 걸 깨달았어요.”

동양화를 전공한 임 동문은 2008년 강원도 삼척 ‘솔섬’ 사진전을 시작으로 사진가로 데뷔했다. 홍콩과 영국 등 해외에서 먼저 한국의 산 사진으로 좋은 반응을 얻어 지금의 작품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림과 사진은 각자 고유한 특성이 있지만 한계도 있기에 두 가지를 결합하고 싶었어요. 그림은 창작으로 폭넓게 표현할 수 있는 대신 오롯이 그 대상을 바라보기 어려워요. 사진은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기록하느라 창의적 표현엔 한계가 있죠. 두 장르의 접점에 산을 접목하면서 제가 표현하려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게 됐어요.”

보통의 사진 인화지 대신 택한 한지의 물성은 이상의 실현을 가능하게 했다. 그림을 그릴 때부터 한지에 애정이 각별했던 그다. 대학 시절 한지를 소개하는 홈페이지로 공모전 대상을 수상해 벤처사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진을 시작한 후에는 직접 인화에 적합한 한지를 개발했다. 한지의 치밀한 조직은 잉크를 과장되지 않게 머금고, 특유의 종잇결은 흑과 백의 면도 질감과 깊이감을 만든다. 한지로 뽑은 그의 사진을 반드시 실물로 봐야 하는 이유다.

그의 대표작 중에는 평면의 사진뿐만 아니라 한지에 산 사진을 인화하고 손으로 구겨서 입체적으로 만든 ‘부조 사진’도 있다. 인쇄 중 프린터에 걸린 한지 사진을 구겨 버린 것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업 또한 대학 시절 작업에 뿌리를 둔다. 그때는 구겨 놓은 한지에 먹칠을 해서 산을 표현했다.

“뒤돌아보니 지금의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미 대학 시절에 만들어졌죠. 부조 사진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마음대로 구겨서 만들어요. 실제 모양을 재현하는 게 아니고요. 상식적으로 사진을 구긴다는 건 사진을 망치는 일이죠. 저는 그림도 그려 보고 사진도 찍어 봐서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인수봉’전이 인수봉의 초상, 인수봉과 사람(클라이머), 서울 도심에서 바라본 인수봉의 모습으로 인수봉을 소개한 전시였다면 ‘임공이산’전에선 본격적으로 폭넓은 그의 작품 세계에 인수봉을 담아낸다. 전시 제목처럼 인수봉을 좀더 사람들 가까이 옮겨놓겠다는 그의 포부는 ‘스마트 인수봉’에 진하게 드러난다. 인수봉 사진을 구겨서 만든 작품에 스마트 조명을 넣은 것으로 사람의 목소리나 음악에 따라 색이 반응하며 달라진다. 관객이 직접 작품의 변화를 만들고 소통하는 작품이다. 오는 9월 열리는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에도 큰 규모의 스마트 인수봉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지를 구겨 만든 대형 인수봉 작품 




마지막으로 대학 시절 곁에 있던 산이자 중학생 때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머물렀다는 관악산에 대해 물었다.

“산 하나를 작업하기 위해선 단순히 그곳을 찍는 게 아니라 그곳과 하나가 돼야 해요. 그래야 그 산의 숨겨진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거든요. 모교와 연이 닿는다면 제 작업을 통해 관악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문의: 자하미술관 02-395-3222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