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호 2012년 1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화제의 동문- 소설가 정영문, 기존 소설 서사 탈피, 독창적 화법 구사 ‘어떤 작위의 세계’로 3개 문학상 휩쓸어
화제의 동문
소설가 정영문(심리 83-91)
기존 소설 서사 탈피, 독창적 화법 구사
‘어떤 작위의 세계’로 3개 문학상 휩쓸어
올해 우리나라 문학계에는 사상 초유의 ‘그랜드슬램’을 이룬 작가가 탄생했다. 한 명의 작가가 쓴 한 편의 작품이 지난 1월 한무숙문학상, 10월의 동인문학상에 이어 대산문화재단이 선정한 대산문학상까지 모두 휩쓴 것이다. 수상작 『어떤 작위의 세계』로 우리 문학 역사상 첫 3관왕을 달성한 주인공은, 등단 이후 오랜 세월 세상의 외면을 묵묵히 감내하며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 정영문(심리 83-91) 동문이다.
정 동문은 기존 소설이 가지는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를 버리고, 간결하고 위트 있는 문장으로 삶의 궁극적 무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그는 자신에 대한 문단과 세상의 뒤늦은 관심과 호평에 대해 “너무 뒤늦었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런 감정들은 없어졌다”며 “늦게나마 지금까지 이룬 문학적 성취가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기쁘다”고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재미 추구
『어떤 작위의 세계』는 정 동문이 2010년 봄과 여름, 두 계절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면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작가 자신이면서도, 동시에 소설 속 허구적 존재로 얽히기도 한다. 이야기들은 화자의 생각과 경험에 따라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는 이 같은 독특한 구성에 대해 “전통적인 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굉장히 낯설게 여겨질 것”이라며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를 찾으려 하지 말고, 이야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한다면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산문학상 심사위원회가 “한국 소설의 진경을 보여주며 새로운 경지와 발화 지점에 이르렀다”고 평가한 것처럼, 그의 작품들은 기존 소설의 플롯을 따르지 않는다. 정 동문은 이에 대해 “세계를 어떤 총체적인 관점에서 전망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삶의 사건들은 인과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다”며 “서구 문학사에는 전통적인 서사를 해체하는 소설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전통이 아직 일천하다”고 지적했다.
정 동문은 기승전결이라는 낡은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거부한다. 카프카, 베케트, 이상, 김수영을 좋아했던 그는, 자신이 존경하던 작가들처럼 남들과는 다른 방식의 언어로 소설을 쓰고자 한다. 그는 “시장성, 즉 독자 대중의 취향 때문에 더 많은 작가들이 실험을 추구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는 계속될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대중의 구미에 맞추기 위한 소설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생계수단’ 번역이 소설 공부 도와
정 동문은 1996년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등단한 이후 16년간 총 12권의 장편과 소설집을 냈지만, 인세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오랜 기간 외국 소설 번역을 병행했고, 그 덕분에 신뢰할 수 있는 번역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그는 “생계수단으로 시작한 번역 일을 통해 자연스럽게 문장을 구사하고 다루는 법을 배웠다”며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소설을 쓰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우연히 프로이트를 읽은 뒤 심리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모교 심리학과에 진학했지만, 재학 중에는 오히려 문학에 더 큰 흥미를 느껴 문학의 길을 택했다. 그에게는 인간의 마음을 생리학적으로 탐구하는 심리학보다, 인간 내면을 이야기하는 문학이 오히려 더 ‘심리학적’이었다.
“상상력은 삶을 여는 열쇠”
어렸을 때부터 공상하기를 좋아했고,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오랜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그는 그럼에도 상상력이 주는 가능성에 대해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무맹랑하고 괜찮은 상상을 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연습을 하게 해주는 것이 문학이다.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앞서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