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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호 2023년 11월] 뉴스 기획

지식의 신세계를 열었다…국내 첫 미국도서관협회 국제혁신상


지식의 신세계를 열었다…국내 첫 미국도서관협회 국제혁신상

변화하는 중앙 도서관

도서 대출 이력 활용 LikeSNU
인물 중심 아카이브 설치 추진
일찍이 문화 예술 공간 탈바꿈



관정관 8층 대형 열람실에서 재학생들. 2015년 관정관 개관과 함께 관정미디어플렉스·관정마루·관정갤러리 등 맞춤형 공간이 조성돼 도서관은 학술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났다. 사진=모교 소통팀


지식 전달의 매체가 물리적 책에서 영상, 플랫폼, 유튜브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시대. 도서관이 책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전통적 역할에 멈춰선 ‘쓸모’를 증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장덕진 중앙도서관 관장은 “지식정보자원의 다각화 시대를 맞아 변화를 따라가기보단 혁신을 주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LikeSNU 사업은 중앙도서관이 추진하고 있는 혁신의 한 단면이다. 최근 10년간 축적된 도서 및 멀티미디어 자료 대출 이력 약 250만 건을 바탕으로 나에게 딱 맞는 책과 학문 분야를 추천해준다. 3년 동안 추진되는 사업 중 올해 2월 1차 사업이 완료됐을 뿐인데, 미국도서관협회의 국제혁신상을 받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서관 프로젝트에 주는 상이다.

LikeSNU 서비스는 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 소장 자료의 활용을 지식 세계를 조망하고 탐험하는 여정에 빗대어 지식 지도, 지식 나침반, 지식 망원경으로 메뉴를 구성했다. 중앙도서관의 도서대출 이력에 기반해 서울대 구성원은 ‘서울대답게’, 외부인도 ‘서울대처럼’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맞춤형 독서 로드맵과 학문 분야 간 연관 지도를 제공한다.

나침반은 자신이 읽은 책의 분야와 권수를, 망원경은 이를 바탕으로 한 추천 서적을 안내해주는데, 개인의 독서 이력만이 아닌 관심 분야와 독서 수준이 비슷한 서울대 구성원의 독서 패턴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모교 구성원의 도서대출 이력이라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지식 탐구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셈.

△컴퓨터 과학·정보·총류 △사회과학 △문학 △역사·지리 △예술·장식예술 △종교 △언어 △자연과학·수학 △기술과학·응용과학 △철학·심리학 등 10개 분야에서 가장 많이 빌려본 책 500권을 추린 지식 지도는 책 하나에 점 하나를 대응시키고 대출 이력을 책과 책 사이의 선으로 이어 우주 공간에 흩뿌려진 별들을 거미줄처럼 엮은 듯한 인상을 풍긴다.

지식 지도엔 500선 지도 외 연관도서 지도, 연관 분야 지도가 더 있다. 연관도서 지도는 500선 지도를 통해 책을 고르면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이전에 읽은 책과 이후에 읽은 책이 무엇인지, 또 몇 명이나 그 책을 읽었는지 표시하며, 연관 분야 지도는 자기가 관심 있게 읽었던 책의 분야와 연관이 깊은 학문 분야의 책을 추천해 준다.

내년 2월 LikeSNU 2차 사업이 완료되면 도서뿐 아니라 학술 및 학위논문, 강의계획서, 학사 데이터까지 포괄할 예정이며 10개 분야로 나뉜 경계마저도 뛰어넘을 전망이다.

장 관장은 “중앙도서관에서 독자적으로 구축한 통합토픽모델링을 적용해 정형화돼 있지 않은 새로운 연구 결과물들(논문)에서 파생된 새로운 분야가 머신러닝을 통해 유동적으로 나올 예정”이라며 “이로써 토픽과 토픽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볼 수 있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통찰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인문대 재학생이 인문학적 콘텐츠를 갖고 인공지능과 융합하고픈 욕구를 느꼈다면 과거엔 전공 간 벽에 부딪혀 현실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향후엔 타 학부 전공 지식을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끔 촘촘한 징검다리를 놔줄 수 있다는 뜻.

개인별 도서 컬렉션을 생성, 이용자 간 컬렉션을 팔로우하거나 추천할 수 있는 ‘SNU컬렉션’도 2차 사업 완료 후 기대되는 서비스. 교수·학생·직원 등 학교 구성원들의 독서 및 멀티미디어 자료 이용 이력을 본인이 원할 경우 멜론이나 유튜브 뮤직의 플레이리스트처럼 공개함으로써 서울대의 지식 자원을 학내뿐 아니라 일반인이나 학외 연구자에게도 공유할 예정. 서울대인 셀럽의 독서 이력을 좇아가면 책 읽는 재미가 더욱 쏠쏠할 듯하다.

모교 중앙도서관 혁신의 또 다른 단면은 라키비움(Larchiveum)이다. 장 관장은 “비도서 자료를 수집, 전시하는 박물관적 기능의 복원과 동시에 서울대인에 대한 도서 및 비도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하는 아카이브적 기능을 더하겠다”고 말했다.
모교 박물관을 고려해 비도서 자료를 수집, 전시하되 제작 연도를 근현대로 제한했고 모교 기록관을 고려해 서울대 ‘조직’에 대한 기록물보단 서울대 출신 ‘인물’에 초점을 두고 자료를 수집한다. 장 관장은 기본적으로 박물관, 기록관, 미술관, 규장각 등 다른 기관과 겹치지 않도록 하겠지만, 기관 간 칸막이를 넘나드는 협업도 꾸준히 시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첫 아카이브로 고 박완서(국문50입) 작가의 서재가 내년 상반기 설치된다. 중앙도서관 2층에 약 99㎡ 규모로, 박 동문이 말년을 보낸 경기도 구리시의 ‘아치울 노란집’ 서재를 재현하고 가족에게 기증받은 도서 및 비도서 자료로 꾸밀 예정. 아카이브 대상 동문은 △다양성 지수 △대출지수 △학문적 수요 등 3가지를 주요 기준으로 선정되는데, 소속 단과대학이나 신분(교수·직원·학생 등)에 상관없이 가장 많이 대출되는 분야가 문학인 점, 박완서 동문이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한국 대표 작가였던 점 등이 고려됐다.

장 관장은 “아카이브 사업 추진의 합리성 제고를 위해 전문가 자문을 거쳐 올해 8월 ‘아카이브 설치 지침’을 마련했다”며 “특정 동문에 대한 서울대인의 관심이나 축적된 연구물, 그분이 가진 가치 등이 독보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아카이브 대상으로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도서관은 다음 아카이브 설치 대상을 누구로 할지 동문을 포함한 학내외 의견을 신중히 듣고 있다고.

애초에 모교 중앙도서관은 책을 빌려 읽거나 앉아서 공부하는 곳이란 이미지를 탈피한 지 오래다. 2015년 2월 관정관이 개관하면서 기존 중앙도서관은 본관으로서 국내 최대 규모의 학술 자료 이용 공간으로 거듭났고 관정관은 대형 열람실, 그룹스터디룸, 미디어서비스센터, 관정미디어플렉스 등 이용자 맞춤형 공간의 역할을 주로 맡아 중앙도서관 전체가 학술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관정관 1층 로비 한편엔 관정갤러리가 있다. 이곳에서 신진 작가 및 단체, 모교 학생 동아리 등 구성원이 참여한 미술, 공예, 사진 등을 전시하는 ‘중앙도서관 작은 전시회’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김덕기(동양화93졸)·신수진(서양화95졸) 동문 등 굵직한 작가의 전시회가 개최됐었다.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의 관정마루엔 권영민(국문71졸) 모교 국문과 명예교수가 평생 수집한 문헌 1654점을 12월 15일까지 전시하며, 관정관 3층 양두석홀에선 저자와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연 3회, 관정관 5층 옥상정원에선 도서관 별빛 영화제가 학기마다 한 번씩 개최된다.

나경태 기자








중앙도서관의 다양한 학술문화예술 공간. 위부터 중앙도서관 전경, 도서관 별빛 영화제, XR익스페리언스센터, 창의미디어스페이스 스튜디오, 북카페, 멀티미디어 자료실.



“혁신상 반갑지만 예산 부족해 근대 문헌 21만 권 보존 어려워”

장덕진 중앙도서관장 인터뷰



도서관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LikeSNU 사업이 국내 첫 미국도서관협회 국제혁신상이란 영예를 모교에 안겼다. 중앙도서관이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큰 성과를 낸 것. 그러나 수상의 주역인 장덕진 관장은 뜻밖에도 고문헌에 대한 동문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중앙도서관이 운영 혁신 차원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 같다.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 학교운영 전반에 혁신이 이뤄지는 데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학이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부가가치는 지식이고, 그것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관이 도서관이다.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창의적 지식, 융합적 지식을 생산하고 교육하는 데 도서관의 빅데이터가 요긴할 것이다. 관장으로서 소임을 다하겠다.”

-LikeSNU에 집계되는 데이터는 객관적 수치다.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읽다 말고 반납한 책도 똑같이 반영된다. 정성적 측면의 집계도 필요하지 않을까.
“도서나 멀티미디어 자료의 대출이 단발성,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 안에선 정성적 평가도 결국 정량적 지표에 반영돼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면 관련 도서나 DVD를 빌려보는 등 어떤 식으로든 그 책과 관련된 뭔가를 하게 된다. 정성적 측면을 포착하는 게 어렵지 않다.”

-빅데이터에 기반해 강좌도 만들었다고.
“뇌 심리 창의성, 지능의 진화·인공지능과 미래, 첨단에 대한 인문과 과학의 대화, 언어와 수·인공지능을 위한 인문학과 수학 기초 등 전통적 과목 편성 방법에서 벗어난, 데이터에 기반한 새로운 강좌를 구성했다. 본부에 승인을 받으면 전혀 새로운 융합교양과목이 탄생할 것이다.”

-SNU컬렉션 공개에 보안 문제는 없나.
“없다. 다만 외부 접속이 폭주하면 시스템 과부하의 문제가 생길 순 있는데 최대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고 있어 걱정할 것 없다.”

-2025년 완료되는 3차 사업의 핵심은.
“생성형 AI의 적용이다. 지금까지 도서관 검색은 키워드가 중심이었지만, 3차 사업이 완료되면 문장으로 풀어 쓰는 것만으로 충분해진다. 도서관 시스템이 알아서 해당 분야의 책과 논문을 추천하고, 다음 학습 방향을 제시하며, 연구 결과물을 어느 학술지에 보내면 좋을지 제안한다. 일련의 학습 및 연구 과정에 동반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고 박완서 동문의 아카이브가 설치된다. 걸출한 서울대인이 부지기수인데 일일이 한 명씩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까.
“도서관 공간에 한계가 있으니 무제한 설치할 순 없지만, 박완서 작가처럼 독보적인 인물에 대해선 아카이브를 설치하는 게 후학의 연구를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도서관 내 유휴 공간을 적절히 활용하고 디지털 아카이브 형식도 고려할 생각이다.”

-동문들에게 한 말씀.
“고문헌 하면 흔히 규장각을 떠올리는데, 도서관에도 갑오경장 때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약 21만 권의 근대 문헌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엔 국보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도 있는데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 지금과 같은 인력과 예산으론 보존 사업을 하는 데 족히 890년은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동문들께서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