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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2021년 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젊은 과학자: 12억명 먹여살리는 아프리카 소 진화의 비밀 풀다

해외 화제 유전학 논문 제1저자 김권도 미국국립보건원 연구원


12억명 먹여살리는 아프리카 소 진화의 비밀 풀다

해외 화제 유전학 논문 제1저자
미국국립보건원 김권도 연구원



2018년 아프리카 소 연구를 진행하던 중 에티오피아에 방문한 김권도 동문.


국제 공동연구 모교가 주도
아프리카 토착질병 해결 도움


“축산학 전공이지만, 직항으로 12시간 떨어진 곳의 동물을 연구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유전학 학술지 ‘네이처 지네틱스’의 표지는 뿔이 거대한 소떼 사진이 차지했다. 아프리카 소 유전체(게놈) 연구가 표지논문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한국과 아프리카, 유럽 6개국 연구자가 공동 저술한 이 논문의 제1저자는 모교에서 가축 유전학을 전공한 올해 34세 김권도(식품동물생명공학06-11) 동문.

4억 마리 소는 아프리카의 살림 밑천이다. 12억 인구 3명당 1마리씩 가진 셈이다. 척박한 환경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서로 다른 두 종의 영리한 유전적 혼합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김 동문의 공동연구가 이를 밝혀냈다. 해외에서 더 크게 주목받았다. 논문 제목은 '아프리카 목축의 독특한 유전자원으로서 토착 아프리카 소의 모자이크식 유전체(The mosaic genome of indigenous African cattle as a unique genetic resource for African pastoralism)'. 네이처 리뷰 지가 ‘하이라이트 연구’로 선정했고, 영국 BBC와 프랑스, 케냐, 호주 등 20여 개국에서 보도했다. 국내 유전체 연구로는 드문 일이다. 미국에 있는 김 동문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보통 소라고 하면 갈색의 전형적인 육우를 떠올리시죠. 아프리카에는 이런 육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환경에 적응한 품종이 150종 넘게 확인됩니다. 서로 다른 한우 품종이 150종 있는 셈이죠. 오랜 시간 여러 품종이 뒤섞여서 만든 역사적인 결과입니다.”

약 8,000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 ‘타우러스’ 소가 자리 잡았다. 체체파리가 옮기는 수면병 등 토착 병에 강한 소다. 여기에 덥고 건조한 기후를 잘 견디는 아시아의 ‘인디커스’ 소가 1,300년 전 스와힐리 문명의 물결을 타고 유입됐다. 언젠가, 어느 곳에서 두 종은 유전적으로 뒤섞여 광범위하게 유목되기 시작했다. 서로의 장점이 ‘모자이크’처럼 섞인 덕에, 대륙의 다종다양한 식생과 기후에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2013년 오성종 제주대 교수와 김희발 모교 농생명공학부 교수가 여기에 주목해 국제적인 ‘아프리카 소 게놈 컨소시엄’을 시작했다. 인위적인 선택과 기후 변화로 인해 한우의 생산성이 저하되자, 다양성이 잘 보존된 아프리카 소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 것. 김 교수 연구실의 김 동문이 이듬해 합류했다. 연구를 진행하며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먼 땅에서 일어난 광대한 진화의 역사를 해독한 열쇠는 ‘집단유전학’이다. 생물 집단 간의 유전정보를 비교해서 특정 유전자가 어떻게 전달되고, 확산됐는지 파악할 수 있다. 아프리카 팀이 소 혈액 샘플을 보내오면, 모교 연구팀이 유전체 염기서열 데이터를 생산하고 분석했다. 대표 토착 16개 품종을 포함해 45개 품종, 330여 마리라는 방대한 양. 꼬박 3년이 걸려 750~1,050년 전 ‘아프리카의 뿔’(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두 품종이 처음 혼합됐음을 밝혀냈다.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는 장비와 노하우가 서울대에 있었죠. 모교 기술지주회사 ‘조앤김 지노믹스’의 분석력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프리카 팀과는 수시로 메일과 화상통화를 주고받고, 서로 방문하기도 했어요.”

한우와 돼지, 닭 등을 연구해온 김 동문에게 아프리카 소는 생소한 동물이었다. 2018년 에티오피아에 가서 상상과 다른 사육 환경에 깜짝 놀랐다. “우리처럼 우사에서 소를 집단 사육하는 게 아니라,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두고 마을이 공유하는 초지에서 방목하고 있었어요. 당연히 한 번에 소를 관리하는 시스템은 없죠. 오지에서 특정 부족만 기르는 품종, 수면병 위험을 무릅쓰고 구한 샘플도 있어요.” 그간 아프리카 소 연구가 어려웠던 이유다. “유럽이나 한국 소보다 연구 접근성은 떨어지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아프리카 소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연구를 일부 지원했다. 아프리카 소의 진화를 안다는 것이 인류에 어떤 도움이 될까. 논문 말미에 ‘아프리카의 식량 문제와 목축 생산성 개선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논문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인 수면병에 적응하며 살아온 소의 유전인자도 규명했습니다. 먼 훗날 아프리카 토착질병 문제 해결에 요긴하게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생산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현지에서 무분별한 육종이 진행되는 현실에도 경종을 울렸다. “토착 품종과 외래 품종의 교잡으로 생산성은 좋아질지 모르지만, 수천년간 자연스럽게 이뤄진 적응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리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인위적 사육이 어려운 환경인 만큼 다양한 품종의 적응 흔적을 보존하고 육종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논문의 궁극적인 메시지입니다”.

앞서 연구의 시작점인 김희발 교수에게 인터뷰를 청했을 때, ‘제1저자’라며 제자인 김 동문을 앞세웠다. 김 동문은 지도교수인 김 교수와 모교 선후배, 해외 공동연구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현재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박사후과정을 지내며 멸종한 야생 소의 흔적을 현대 소 품종에서 찾는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한 아이의 아빠가 됐다.

“집단유전체 연구를 하다 보면 내가 분석하는 집단이 걸어온 역사를 몰래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요. 과도한 해석은 금물이지만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죠. 지금까지 소 연구는 경제성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진화적인 측면에서도 가축화 과정, 종간 교잡 등 연구할 부분이 무궁무진한 동물입니다. 진화 유전체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