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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2019년 12월] 문화 신간안내

화제의 책: 세종평전 “21세기 한국은 중흥기, 창업 아닌 수성의 리더십 보여줄 때”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쓴 한영우 교수의 세종대왕 평전


“21세기 한국은 중흥기, 창업 아닌 수성의 리더십 보여줄 때”

세종평전 쓴 한영우 교수




우리나라 국사학계의 대표 학자인 한영우(사학57-62) 모교 국사학과 명예교수가 ‘세종평전 : 대왕의 진실과 비밀’(경세원)을 출간했다. 국사학자의 세종평전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동안 정치사학자, 경제사학자가 해당 분야에 초점을 맞춰 쓴 평전은 있었지만, 전체를 아우른 평전은 이 책이 유일무이하다. 그만큼 분량도 방대해 880페이지에 이른다. 세종실록을 빠짐없이 담으면서 각 분야별 주제에 맞게 정돈했다.

한영우 교수는 국사학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평전을 쓰는 학자다. 1973년 정도전을 발굴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율곡, 이수광, 유수원, 성혼, 정조 등의 평전을 집필했다. 그러나 한 동문은 평전 연구보다는 한국 통사 ‘다시 찾는 우리 역사’(경세원) 저자로 유명하다. ‘다시 찾는 우리 역사’는 1997년 초판이 발간돼 지금까지 두 번의 개정을 포함 61쇄가 발간된 한국 통사의 베스트셀러다. 수당상, 경암상을 비롯해 9개의 학술상이 그의 연구성과를 말해준다.

지난 12월 2일 서울 낙성대 개인 연구실인 호산재에서 만난 한영우 교수는 세종 평전을 출간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리더십에는 창업의 리더십과 수성의 리더십이 있다. 시기를 잘 판단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창업의 시기에는 급진적으로, 피를 무서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해야 하지만 수성의 시기에는 점진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일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300년을 주기로 중흥의 시기가 왔다. 수성의 시기라 할 수 있다. 15세기 세종, 18세기 정조 때가 그랬고 지금이 중흥의 시기다. 세종은 수성의 리더십이 뭔지를 보여준 임금이다. 훈민정음 창제로 널리 알려진 임금이지만 그 외에도 북쪽의 4군 6진을 개척해 영토를 확장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소통의 달인이었고, 대내 정치, 외교에 능수능란했다. 세종을 본받아 지금의 리더들이 급진적 개혁보다는 화합, 소통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에서 한영우 교수는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해 세종에 대해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서 붙은 부제가 ‘대왕의 진실과 비밀’. 훈민정음은 집현전 학자들과 만들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 동문은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창제 후 해례본 등을 도와준 정도이지 창제에는 참여시키지 않았고 정의공주와 광평대군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고 말했다.

“창제 당시 집현전 학자에게 시켰으면 집현전 수장인 최만리가 가만있었겠나. 비밀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명나라와 관계다. 당시 ‘차동궤 서동문(마차길 폭이 같고 글이 같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선은 명나라 제도를 그대로 썼다. 우리가 글을 만들겠다고 하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명나라 황제가 9살 아이였기 때문에 한글 창제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밖에 명에 대한 사대외교, ‘공법(貢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의 오해 등 잘 알지 못했던 세종의 업적에 대해 상세한 배경설명과 사실을 적고 있다.




한 동문은 이 책 집필에 2년을 몰두했다. 그는 “연구, 집필활동 아니면 할 게 없다. 술도 안 마시고 친구도 안 만나니 공부마저 안 하면 할 일이 없다. 새로운 것을 깨닫는 기쁨이 내겐 너무 크다”고 했다. 그렇게 36년을 서울대에서 연구하고 가르쳤고, 이후 10년간 한림대, 이화여대에서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저술한 책이 40여 권이다.
인터뷰 말미, 한 동문은 책에 저자 싸인을 해주면서 우공(愚公)이라 새겨진 도장을 찍었다. “호는 호산(湖山)인데 요즘 우공이란 말이 좋다. 자기역량에 맞게 조금씩 꾸준히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율곡, 박은식 선생이 강조한 것도 이런 정신이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