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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2019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나 같은 어려움 겪는 의뢰인, 더 도와드리고 싶죠”

올해의 장애인상 받은 최보윤 손해배상 전문변호사


“나 같은 어려움 겪는 의뢰인, 더 도와드리고 싶죠”


올해의 장애인상 받은 최보윤 변호사




사법연수원 재직 중 사고 휠체어 의지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맹활약 중

“소송하는 변호사의 역할과 장애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역할, 두 가지 다 저에겐 소중합니다.”

최보윤(법학97-02) 법무법인 태신 변호사가 환히 웃으며 말했다. 변호사로서 자신이 지닌 특장점을 명료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최 동문의 직함은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 주로 교통사고와 의료사고, 산업재해 등의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법정 바깥에서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한 활동도 열심이다. 성남시 장애인권리증진센터에서 무료 법률자문과 소송구조를 펼치고, 직장인 척수장애인을 위한 한국척수장애직장인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어렸을 적부터 법률가의 길을 꿈꿔온 그가 이런 활동을 하게 된 배경엔 뜻하지 않게 찾아온 장애가 있었다. 제51회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41기) 재직 중 당한 의료사고의 여파로 휠체어에 올라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장애인 법률 구조에 힘쓴 공로로 ‘올해의 장애인 상’을 받았다. 8월 30일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장애로 인해 오히려 법조인으로서 활동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손해배상 전문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2년간 병원 생활을 하면서 주변 환자들의 사례를 보게 됐어요. 연수원에서 배운 대로라면 그렇게 합의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불충분한 설명만 듣고 합의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웠고 그런 분들께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법리적으로 어렵거나 노력을 좀더 들여야 하는 사건을 많이 맡는 편이에요. 몸은 힘들어도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장애가 생기면 복합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법적인 도움 외에도 의뢰인 당사자의 심리적인 어려움과 가족들의 어려움까지 헤아려야 하는데, 자신이야말로 그런 ‘토털 서비스’가 가능한 것 같다는 설명. 이 또한 의료사고 피해자로서 소송을 진행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기 전 의뢰인 입장에서 소송을 준비하면서 간단한 확인서를 적어내는 것도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음을 알았다. 변호사가 된 지금은 ‘나는 무엇이 필요했더라’ 되짚어 보고 의뢰인들에게 샘플 하나라도 더 다양하게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애가 생기면 노동력 상실률이나 필요한 보장구, 치료비 등에 대한 감정을 토대로 법원이 판결을 내립니다. 조금이라도 더 세심하게 봐드리고 판사님께 어필하려 하죠. 무엇이 필요한지 제가 알고, 먹는 약과 가격도 아니까 더 꼼꼼히 챙기게 돼요. 법 관련 업무는 아니지만 얼마 전엔 의뢰인에게 필요한 보조구를 만들 수 있도록 연결해 드리기도 했어요.”

장애와 관련된 사건 진행은 의뢰인과 변호사 모두에게 쉽지 않다. 사고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의뢰인에겐 고통스럽고, 신체감정과 진료기록 감정 등의 절차가 있어 길고 지난한 소송 과정을 함께해야 한다. 그래도 힘들어하던 의뢰인의 심정에 변화가 보이고 억울한 마음이 풀려 홀가분해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판결은 경제적인 배상 면에서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풀어드린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사고를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거든요. 왜 사고가 났고 내가 정말 잘못한 것인지 납득이 돼야 하는데 법원이라는 공적인 기관의 판단을 받게 되는 거예요. 그 내용이 평생 남는 것인 만큼 후회가 없게 해드리고 싶어요.”

동료들이 “너무 힘들게 일하는 것 아니냐”며 따뜻한 걱정을 건넬 정도로 열정적인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법조인이 많은 주변에 신선한 영향을 주고 있다. “법조인인 동기들을 만나 제가 맡고 있는 특이한 사건이나 장애인 권리구제 활동, 강연 얘기를 하면 무척 흥미로워 해요. 기부를 해보자는 말도 나오고요.” 때로 사건에 깊게 감정 이입해 스트레스도 받지만 3년 전 결혼한 남편과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행복을 느낀다. 인터뷰 내내 자신의 이야기가 모교 동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심하던 최 동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울대 동문은 계획대로 인생을 살아온 분들이 많으실 거라 생각해요. 저도 법대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에 갔을 때까진 내 의지대로 결과를 이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죠. 예상치 못한 장애로 힘들기도 했지만 내 꿈과 인생에 대해 더욱 생각해보게 됐어요.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기쁨과 어려움이 있어도 그를 계기로 인생이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린다면 좋겠습니다.”

박수진 기자